단편소설집
미친 듯이 눈이 오는 날이었다. 옷장에서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 신발은 샌들, 슬리퍼를 제외한 아무거나 신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식 구식 아파트였다. 창문에는 눈이 부딪혔다. 가운데 호수에 살았기에 엘리베이터까지는 조금 긴 시간이 걸렸다. 버튼을 누르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무도 타지 않기를 바랐지만 중간중간마다 타는 이들이 있었다. 일 층에 도착하고 제일 먼저 내렸다. 오일장이 서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눈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어정쩡한 걸음으로 다녔다. 그곳을 나와서 아무도 없는 놀이터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놀이기구를 탔다. 이름은 알 수 없었다. 그것에 관한 추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발끝이 시렸다.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눈이 쌓여 있는 나무 의자로 향해 눈을 치우고 앉았다. 담배를 한 대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눈이 담뱃불에 지져져 꺼졌다. 짜증 나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좋았다. 담배를 대충 던지고 외투를 벗었다. 찬 기운이 몸으로 퍼졌다. 몸이 약간 떨리자 그제야 외투를 입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중 한 명은 나에게 괜찮냐고 일으켜 주었다.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눈이 좋거든요.”
무릎이 많이 까졌다. 옷 위로 붉은색이 물들기 시작했다. 피는 점점 흘러나와 양말까지 젖혔다. 아프고 쓰라렸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자 조금 우울해졌다. 벌써 눈과의 이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밖에 더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무릎의 까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옷을 너무 적셨다.
집으로 들어갔다. 옷을 하나씩 벗어 장롱 옷걸이에 걸었다. 물론 바지는 바로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속옷만 입은 채로 소파에 앉아 소독제와 연고를 무릎에 발랐다. 심하게 따끔거렸지만 표정이나 몸짓은 따로 없었다.
샤워하고 나와 한 번 더 바른 후에 베란다로 향했다. 아까보다 눈이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었고 속옷만 입은 채로 추위에 떨며 다시 담배를 태웠다. 추워도 무릎이 까져 피가 흘러도 남들이 싫어해도 나는 눈이 내리는 폭설이 좋다
뜨거운 여름 비가 내리는 날 아버지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 이유는 다름 아닌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울지도 슬픈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그저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그저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뺨이 뜨겁게 부풀어 오를 때 아버지는 그 짓을 멈추었다. 매일 처맞았던 어머니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뒤로는 부엌에 놓인 소주를 병째로 마셨다.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고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를 때 그제야 방에 들어가 잠을 이뤘다. 그가 들어가자 라면 한 봉지를 꺼내 조심스럽게 물을 올리고 끓였다. 뜨거운 김이 볼을 어루만질 때마다 쓰라렸다. 내 방이라는 공간은 없었다. 거실에서 그가 방에 나오지 않기만을 빌며 멍을 때리거나 졸리면 잠을 잤다. 유치원이라는 곳은 재택교육을 핑계 삼아 가지 못했다. 친구도 내 편도 없었다. 떠나간 어머니만을 원망할 뿐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가 그를 떠난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계속된 가정폭력 그리고 가부장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떠나고나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대물림되어 내가 고통을 겪는 중이었다. 서린 달이 뜨던 밤 여름이었기에 추위 떨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했다.
아버지는 매일 밖을 나갔다. 아마도 일을 하러 가는 것 같았다. 일요일만 나가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부녀 관계에 대화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일을 나간 후의 몇 시간은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다. 퀭한 눈으로 밖을 응시하며 다른 세계를 공상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기 몇십 분 전부터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약간의 공포 약간의 허망 약간의 괴리감이 덮쳤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 티를 낼 수 없었다. 반응을 보이는 순간 그것은 반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다.
여덟 시간 후 아버지가 돌아왔다. 그는 이번에도 검은 봉투에 소주 몇 병을 담아 가져왔다.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술을 들이켰다. 두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도 내게 다가왔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내 몸에 처음 닿은 것은 발등이었다. 그 후에는 담배꽁초를 짓이기듯이 밟았다. 몸을 웅크리고 신음하나 내지 않은 채로 눈을 감았다.
추위에 떨며 거실의 난방 온도계를 확인했다. 십오 도였다. 겨울이 찾아왔다. 나는 눈이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하루하루가 간절한 희망에 차 있었다. 신이 있다면 내 기도를 들어주기 바랐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지났다. 눈이 오지 않았고 집에 쌓이는 것은 소주병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폭력은 덤이었다. 하늘이 심심하지 않아야 했다. 무언가 균열이 있어야 했고 그 균열 사이로는 어떠한 것이 내려야 했다.
나흘이 되는 날 일이 터졌다. 눈이 내리는 것이었다. 이제는 오늘 하루는 해방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눈이 내리기만 하면 그날은 늦게 들어오셨다. 자정이 넘어가서도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기분이 좋은 채로 들어와 폭력 또한 없었다.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을 꺼내왔다. 김밥처럼 둥글게 몸을 말은 후 베개를 머리 끝에 놓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발끝은 여전히 시렸지만 괜찮았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밖은 어두워졌다. 시계를 확인하니 저녁 여덟 시였다. 배가 고파 찬장을 뒤져보니 통조림 햄이 하나 있었다. 역시 눈이 오는 날은 운이 좋았다. 라면을 끓이고 햄을 얇게 썰어 구웠다. 감칠맛이 혀를 돌았다.
밥을 다 먹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폭설이었으면 했다. 그러면 운도 좋고 내 몸도 안전할 텐데 말이다. 사계절이 미웠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미웠다. 오직 겨울만이 나를 구원해 주었다.
아버지는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적당히 기분 좋게 술에 취한채로 들어왔다. 그날은 폭력 대신에 샤워 후 바로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무관심이 나에겐 득이었다.
새벽 여섯 시 남들과 똑같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운 후 샤워했다.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 겨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밖은 영하 팔 도였다. 검은 바지 검은 상의 검은 외투를 입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의 기분을 대변한 것 같았다.
통근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이 어제의 폭설로 인해 겪은 고생을 얘기했지만 그것에 동의하지 못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는 둥 도움되는 거 하나 없다는 둥 그렇게 말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사회 부적응자라고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스스로 방어하는 법이었다. 남들과 말을 섞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어야 했으며 생각에도 없는 말을 내뱉어야 했기 때문이다.
공장에 도착 후 내 자리를 찾아간다. 김치를 버무리는 일이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똑같은 반복 행동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공장의 기계를 건드리지도 않았고 그저 절인 배추와 김칫소를 적당한 비율로 만지기만 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일이 끝난 후에는 고무장갑을 껴도 손에서 약간의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각자 인사를 나누는 대신 고개만 끄덕이고 통근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렸다.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눈이 조금씩 내렸다.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쳐졌다. 집에 가까이 도착할수록 눈발은 더욱 거세졌다. 도로 위를 덮었고 건물을 덮었고 사람들의 머리를 덮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눈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최대한 느리게 마셨다. 지나가는 이 순간이 싫으면서도 좋았다. 눈은 금세 발목까지 쌓였다. 쌓이는 눈만큼 기분도 올라갔다. 어느새 마감 시간이 되었는지 종업원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저희가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요.”
나긋하고 조용한 어투로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밖을 나가 뽀득거리는 눈을 밟았다. 소리의 묵직함이 귀를 때려 박았다.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일부로 발자국이 나지 않은 눈밭을 걸어가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고 어느새 차가워진 손과 발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녹였다. 자욱한 수증기가 찰 때까지 화장실에서 머무르다가 정신이 아늑해질 때 나왔다. 그리고 베란다로 나가 다시 담배를 피웠다. 재떨이에는 어느새 눈이 장식되어 있었다.
덟 살이 되자 학교라는 곳에 의무적으로 가야 했다. 그로 인해 아버지의 폭력을 줄기 시작했다. 얼굴이나 팔과 다리에 멍이라도 들면 무슨 상황이 올지 알기 때문이었다. 입학식에는 당연히 오지 않았다.
학교는 내게 어려웠다. 말할 줄은 알았지만 읽고 쓰기를 하지 못하는 탓이 컸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고 방과 후 시간에 한글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선생님과는 점점 더 깊은 인연을 한 층씩 쌓아갔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정신적 지주가 된 선생님은 나에게 있어서 구원해 줄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믿었다. 그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열심히 했다. 물론 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와 더욱 가까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과 선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선을 그는 그으려고 했다. 학교에 다닌 지 이 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금요일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여태까지 일어나지 않은 아버지의 폭력에 무뎌져 있어서인지 그날도 아무 일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집이 좋아진 것은 절대 아니다. 공허한 무언가가 그러니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집에서 배회했다.
집에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자 아버지는 바로 내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흠칫했고 약간의 준비되지 않음이 들켜졌다. 그가 물었다.
“내일 무슨 요일이지?”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모호하게 답변했다.
“토요일.”
아버지는 손짓으로 내게 다가오라고 했다. 신발을 벗고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로 그에게 다가가 앞에 섰다. 그러자 바로 귀싸대기를 때리며 말했다.
“시발련아. 요새 안 때리니까. 만만해?”
무슨 잘못을 했을까 알 수 없었다. 존댓말을 하지 않은 게 유일한 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폭행은 계속되었다. 몸을 둥글게 말기도 하고 구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머리에 뭔가가 깨졌따. 내가 왜 맞고만 있어야 하는지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의 폭행이 잠시 멈췄다. 거친 숨소리가 양쪽 귀에 들려왔다. 내가 서서히 일어났다. 원래라면 생각지도 못할 행동이었다.
“내가 왜 맞아야 하는데요! 왜!”
그는 잠시 당황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뭐…. 뭐…? 학교가 애 다 망쳐놨네! 너 내일부터 가지 마라. 알겠어?”
그곳에는 가야 했다. 거기는 따뜻한 공기 맛있는 식사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주병을 집어 바닥에 던졌다. 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파편 조각들이 우리의 다리에 박혔다.
“싫어요!”
그는 소주병을 집더니 내 머리에 내려치려고 했다.
“이 미친년이!”
바닥에 유리 조각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 몸을 움직여 옆으로 피했다. 싱크대에 병이 부딪쳤다. 다시 파편들이 튀었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떳을 때 그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지만 유리 조각들이 그의 뒤통수에 박혔고 피가 흘러나왔다. 무서운 상황에 집을 나가 근처를 계속해서 달렸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정이 될 때까지 집 밖을 배회했다. 그러던 중 삼 월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내렸다. 온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외투하나 걸치지 않았기에 추위에 몸이 떨렸다. 그러던 중 과연 이 떨림이 정말 추위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마지막에 아버지의 대가리에서 피가 흘러나온 장면이 연상되서 일 수도 있다.
거리를 배회하던 중 경찰서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해야 할 줄 몰랐기에 일단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횡설수설했다. 경찰은 어린아이인 나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었다. 곧이어 큰일이 났다는 것도 인지했다. 주소를 물어봤지만 알지 못해 같이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눈길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했따. 집에는 경찰차 두 대와 구급차 한 대가 도착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중 아버지가 실려 나와 구급차 안으로 향했다. 그곳에 나도 탑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는 상태를 보더니 과개를 좌우로 약간 흔들었다. 그날 아버지에게서 해방되었다.
그 누구도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결국, 보육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은 하나의 감옥 같았다. 엄한 규칙이 있었으며 그에 응답하지 않으면 벌이 있었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곳이라고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적어도 따뜻한 집과 매 끼니 나오는 음식이 있었기에 엄한 규칙에도 최대한 따르려고 노력했다.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나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상담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상담의 내용은 대체로 부적응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와의 교류는 아버지와 약간의 선생님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고아라는 이유 하나로 나와 어울려주지 않았다.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혼자 옥상에 올라가 사계절을 구분 짓지 않고 눈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 확인했다. 오지 않는 날에는 눈빛은 공허했고 눈이 오는 날에는 차가운 촉감이 몸에 닿는 전율을 느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생리를 경험하고 가슴의 몽우리가 뭉치며 젖가슴이 나왔다. 그렇지만 그것에 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생리대를 차고 브래지어를 입는 것을 배웠다. 가르쳐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봉사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전에는 왜 옷을 입으면 가끔식 성기 부분에 피가 비치는지 윗옷을 입으면 젖꼭지가 튀어나오는지 관심이 없었다.
봉사자들은 언제나 오면 다른 아이들에게 보내는 눈빛과 나를 보는 눈빛이 달랐다. 그 눈빛은 독한 연민과 불쌍함이었다. 원장은 봉사자가 오는 날만 되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들은 내게 다가왔고 이것저것 물었다. 그 물음에 필요한 것만 대답했다. 그러면 그들은 내게 좋은 것만을 알려주고 반응이 없어지면 떠나기 마련이었다. 내가 반응이 좋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반복적으로 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보육원 원장은 어느 날부터 술을 즐겨 마셨다. 그 모습이 약간 두려웠다. 아버지의 모습과 매우 겹쳤기 때문이다. 그는 독한 양주를 마셨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따로 나를 불렀다. 방에 들어가자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시 예전의 기억이 살아났다. 불안했고 초조했고 몸은 굳었다. 맞은편 의자에 나를 앉히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를 응시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던 건지 내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제야 눈치챘지만 그때 본 것은 밖의 하늘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원장의 말이 끝맺음을 이룬 후였다. 그제야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점점 내려갔다. 손길은 아래턱을 지나고 목선을 쓰다듬었다. 마지막으로 머무른 곳은 내 젖가슴이었다. 그는 둥글게 튀어나온 내 가슴을 계속해서 주무르거나 젖꼭지를 만졌다.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몇십 초가 지나자 다시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반응이 없어. 재미없게. 가 봐.”
대답도 하지 않고 방 밖으로 나왔다. 알코올 냄새 때문인지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다.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세상과 단절됨을 느끼듯이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 그는 나를 따로 부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그의 방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나와 같이 행동을 당하는 줄 알았고 그것이 잘못됨을 어느 정도 인지했지만 나는 회피를 선택했다.
중학교로 올라가고 달라진 점은 내가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이었다. 여태까지는 사람마다 형용할 수 없는 느낌 같은 게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어서인지 몰라도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입학식이 끝나고 다음 날이 되자 반에 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미 알던 사이인지 무리를 지어 들어오기도 했다. 사춘기여서 그런지 몰라도 무언가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건 아니었따. 그러나 이것을 타개할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맨 앞자리에 교복을 입고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오는 이가 하나 있었다. 그는 교복을 입었지만 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다. 나와는 정반대의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 같았따. 특히 두꺼운 외투가 딱 보아도 값이 꽤 나가 보였다. 그는 옆에 앉아 말했다.
“난 이재성이야.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을 스스로 말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내가 답했다.
“주윤하. 주유하야.”
“그렇구나. 넌 어디 살아?”
그 질문에 어떤 답을 내려야 할지 고민되었다. 초등학교에서 고아라는 이유로 어울려주지 않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고민 끝에 어차피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제대로 얘기했다.
“보육원에서 살아.”
“진짜? 신기하다. 거긴 어때?”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지 않아 다행임과 동시에 이런 성숙한 애도 있구나 싶었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성적인 매력을 느꼈다. 육체적이 아닌 정신적으로 말이다. 그와 나의 대화는 이어질 수 있었다. 보육원에 대한 점을 늘어놓을 때마다 그는 신기한 존재를 보는 눈빛을 띠었다. 그 눈빛은 혐오가 아닌 순수함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살아온 고독함과 외로움이 그를 그렇게 보이게 할 수도 있었따. 다만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싶었을 뿐이다.
그와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가끔 다른 무리에 가서 어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와 최대한 붙어있으려 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내 처지에서는 평범한 가정이 어떤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슨 존재인지 단체 생활이 아닌 혼자서 머무를 수 있는 방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투성이였다. 그의 처지에서는 반대로 단체 생활은 어떤지 자신이 가본 적 없는 공간의 환경과 식사 수준을 물었다.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달랐다. 그렇지만 친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에 대한 의문이었따. 그 의문 덕분에 관계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관계였던 것만큼 걱정에 휩싸였다. 만약에 그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면 버려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사소한 거짓말로 답변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거짓말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그에게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고 그것은 성숙함을 대체하기에 충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말하는 어투 행동 성격에서 아이 같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을지 모른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어느 빈 교실 그가 나를 불렀다. 손을 잡고 급하게 달려갔다. 빈 교실에는 꾸민 것 하나 없이 양쪽으로 의자와 책상이 쏠려 있었고 불이 들어온 조명 하나 없었다. 커튼이 쳐져 있어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창문이 열린 탓에 여름의 뜨거운 바람이 볼에 맞닿았다. 그때 그가 말했다.
“나 너 좋아해. 우리 만날래?”
열네 살이라는 적은 나이에 첫사랑을 그렇게 시작했다. 그 이후로 그는 나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였다. 최초로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저마 모든 것을 주기 시작했다. 보육원을 몰래 구경시켜 주기도 하고 그가 권하는 담배도 피웠다. 또한 빈 교실에서 이뤄지는 적당한 신체접촉도 맞춰주었다. 그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맹목적인 존재에 대한 따름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친한 형으로부터 방을 하나 빌려 그곳에서 쉬자고 말했다. 당연히 수긍했고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그는 여태까지 본 모습과 다르게 짐승처럼 섹스를 요구했다. 폭력적인 일방적인 관계는 그의 질외 사정으로 끝났다. 처음 한 경험 그리고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 끝나자 그는 바지를 올려 입으며 말했다.
“이제 나가자.”
머리에 전구가 깨진다면 이런걸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여태까지의 모든 신체접촉은 성적인 매력으로 저장되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프고 쓰라리고 머리가 온통 하얗게 질렸다. 그에게 말했다.
“나 아픈데. 좀만 쉬자.”
그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하던 도중 눈물이 흘렀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어찌해야 할 줄 몰라서 샤워기를 더욱 강하게 틀고 세찬 물소리 속에 슬픔을 묻었다. 그렇게 이십 분이 지나고 내가 나오자 그는 깨어나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래 씻었어?”
“그게….”
짐승 같던 모습은 어디가고 어느새 그는 다시 내가 알던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는 말을 이었다.
“처음이라 많이 아프지? 원래 그래. 약국에서 진통제 하나 사다 줄까?”
호구같이 그 모습에 다시 한번 푹 빠졌다. 잠깐 다른 생각 했다고 믿었다. 아까의 생각은 접고 기쁜 모습을 내비치며 말했다.
“고마워. 배려해 줘서.”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던 사이 그는 약을 사 왔고 방에 비치된 물과 함께 두 알을 삼켰다. 방 밖으로 나가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잡담하며 길거리를 걸었다.
곧 있으면 다시 겨울이 돌아오는 계절이 다가왔다. 그 사이 그는 많이 변했다. 점점 나와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말을 섞지 않았다. 육체적인 관계만을 요구해 왔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거라는 믿음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는 약을 사 오지도 안부를 묻지도 궁금한 것도 없었다. 서로에 대해 끝났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진 날 폭설이 내려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날은 온종일 울기만 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필요없는 것을 잃어버렸다. 다시 한 번 그렇게 버림받았다.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왔다. 폭설은 아니지만 눈이 내렸다. 혼자 사진을 찍고 있던 순간 그가 내게 찾아와 말했다.
“미안해.”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그가 싫었다. 억울하고 원망했다. 그래서 독설을 내뱉었다.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망치게 해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쓰레기 같은 경험 많이 했어.”
그러자 그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의 ‘미안해’ 한마디가 여태까지 내게 했던 죄를 씻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 독설을 내뱉었다. 헤어지던 그날 폭설이 내린 이유는 어쩌면 해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취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내게 대학은 사치였다.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서 악착같이 실습과 공부를 열심히 병행했다. 그렇지만 특출난 애들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중간만 가기로 했다. 고등학교 이 학년이 됐을 때는 열정과 패기는 더욱 사그라들었다. 남들은 노력보다 성과를 원했고 그 성과에 미치지 못하는 나였다.
친구들이 몇몇 있었지만 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들어주는 쪽에 가까웠다. 가끔 질문이 오면 최대한 단답식으로 대답했다. 이미 한번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었던 아픔은 독이 되었기에 얕은 관계가 더욱 편했다. 어차피 졸업하면 멀어질 사이로 치부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 약간의 씁쓸한 맛과 매캐한 목 넘김이 달콤하지 않은 내 인생을 대변했다. 공장에 들어가고 지긋지긋한 보육원에서 나왔으며 보증금 대출을 해서 월세방을 구했다.
지금 생활에 충분히 만족했다. 과거는 아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궁금했다. 내가 지금 세상에 살아갈 이유가 충분한지 말이다. 진심으로 마음을 준 사람에게 버림 받았고 언제나 내 편이어야 했던 가족에게도 버림받았다. 보육원에서는 성추행을 당했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로 두어야 했다.
내 친구는 늘 눈이었다. 사람의 눈이 아닌 한겨울 구름에서 내리는 하얀 눈 말이다. 눈은 언제나 내게 희소식만을 주었다. 많이 내리면 많이 내릴수록 기쁨은 더했다.
오늘도 공장 일을 끝내고 통근버스를 타기 전 직장동료들과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오늘의 일에 관해 얘기했다. 대부분 비전 없는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얘기였다. 별다른 이야기에도 웃으며 바닥에 침을 뱉는다. 통근버스를 타고 역에 내린 다음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했다.
껌껌한 어둠이 내린 집안이 적적했다. 고양이나 강아지라도 키워야 하나 싶었지만 나의 고독을 그들에게 얹게 할 수는 없었다. 불을 켜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 후 옷을 갈아입었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TV를 틀고 마시기 시작했다. 내일은 토요일이어서 출근하지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가스라이팅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었다. 한때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나였기에 맥주 한 캔만 마셔도 볼이 빨갛게 변하며 열이 올랐다. 베란다 커튼이 유독 답답한 날이었다. 커튼을 치자 밖에서 눈송이가 보였다. 바로 베란다로 나가 의자에 앉고 찬바람을 견디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눈은 점점 많이 내렸다. 마치 나의 퇴근을 축하하고 내일의 휴식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뱉었다. 하늘에서 흩어지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바람은 멎기 시작했고 눈은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 느낌을 말로 다 표현 할 수는 없었다. 담배를 한 대 다 태우자마자 다시 한 개비를 태우기 시작했다. 재떨이에 재를 터는 순간 눈이 쌓여 있음을 발견했다. 그 눈에 담배를 지졌다. 치익하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그 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다시 냉장고로 향해 찬 맥주를 가져와 베란다 탁자에 두고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의 눈은 내 눈과 닮아있다. 허공을 가르며 한없이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이 그랬다. 그 추락의 과정은 힘들었지만 땅에 닿아 얼며 단단해질 때 비로소 그제야 나를 찾을 수 있었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이제는 그만 들어가야 했다. 감기에 걸려 괜히 고생하기는 싫으니 말이다. 베란다 문을 열고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어깨까지 덮고 자려고하는 순간 재난문자로 인해 핸드폰이 울렸다.
‘폭설이 내리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폭설. 폭설. 그래. 나는 폭설이 좋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언제나 좋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