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증

단편소설집

by 집안의 불청객

눈을 떴을 때는 커튼이 쳐져 있는 병실이었다.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기억은 흐릿하게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커튼이 걷히고 간호사 한 명이 내게 말했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난 괜찮은 건가 싶었다. 기억을 되살려보려 해도 내 이름 석 자 이동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잠시만요. 의사 선생님 모시고 올게요.”


의사가 오기도 전에 한 여성이 내게 숨이 가파르도록 달려왔다. 그 여자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지만, 나를 부르며 말했다.


“동건아! 괜찮아?”


“죄송하지만, 누구세요?”


그 말을 뱉는 순간 여자는 얼어붙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 보였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도 못해 보였다. 그 사이 의사가 왔고 여자는 당황하며 남편이 기억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의사는 내게 마지막 기억과 이름, 주거지, 태어난 년도 등을 물었다. 그중에서 이름만 말할 수 있었다. 뇌진탕으로 쓰러져 기절한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커튼이 쳐지며 여자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는 울고 있었다. 동시에 의사는 뇌 CT를 찍어봐야할 것 같다고 얘기했고 그녀는 알겠다고 말했다.


시간을 확인하자 저녁 일곱 시였다. 커튼이 걷히고 그녀가 다시 내게 눈을 마주쳤다. 머리가 지끈거려 쉬고 싶었지만,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 모르겠어?”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였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물어볼 것이 많았다.


“네. 전혀 모르겠어요. 제가 누구죠?”


아내라고 말하는 그녀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내 손을 잡으려고 하기에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 거부감을 느끼는 내 모습이 더욱 싫었는지 자기 얼굴을 두 손을 감쌌다. 그리고 이 상황을 버티지 못하겠는지 밖으로 나갔다.


다음 날 아침 바로 뇌 CT를 찍었다. 나와 아내로 추정되는 그녀가 의사 앞에 나란히 앉았다. 의사는 뇌 사진을 보고 말했다.


“CT 결과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뇌진탕으로 기억을 잃었다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절과 연관된 것 같은데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아내께서 계속해서 도와주시면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기억도 없는 것도 있지만,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존댓말로 그녀에게 물었다.


“제 아내시라고요?”


“응. 하나은. 진짜 모르겠어?”


“네.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아요.”


“일단 이상 없다니까. 집으로 돌아가자.”


기억이 없기에 운전은 그녀가 도맡아서 했다. 가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물었다. 나이, 집안의 풍경,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질문할 것이 생겼다.


“제 부모님은 어디 계시나요?”


그 말에 그녀는 답하기가 조금 힘들어 보였다. 잠시 차를 갓길에 멈춰 세우고 말했다.


“사실, 일주일 전에 시부모님 두 분 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제일 슬퍼한 건 당신이었어.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어.”


슬프지 않았다. 부모님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사이코패스가 된 것 같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당신은 일을 그만뒀어. 내가 밖에 나갔다 들어왔을 때는 기절한 채로 있었어. 그 이후는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 전부야.”


마음속에 죄책감이 생겼다. 부모님을 잃고도 멀쩡한 지금의 나와 기억을 잃어 하나뿐인 아내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괜찮아. 기억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압박감이 찾아왔다. 기억을 꼭 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내게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고 더 나아가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내가 물었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나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없어.”


“알겠습니다.”


그녀는 다시 운전하기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짓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처럼 보였다. 주차한 뒤 엘리베이터에서 맨 꼭대기인 이십칠 층에 내렸다. 나는 내가 이상함을 못 느낄 정도로 자연스럽게 도어락에 지문을 가져다 대서 열자, 그녀가 놀랐다.


“이건 어떻게 기억해?”


“그냥 손이 갔어요.”


집 안은 깨끗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레스룸 하나와 안방과 컴퓨터 두 대가 놓여있는 방 그리고 화장실 두 개가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나를 그녀는 내버려두었다. 그녀에게 계속 묻고 둘만 있자 너무 어색했다. 안방에 달린 화장실에 그녀가 들어가 샤워했다. 드레스룸에 들어가 어디 있을지 모르는 갈아입을 옷을 뒤적거리다 겨우 찾아 거실 화장실에서 씻었다.


샤워 후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안방에 누워있었다. 내가 다가가 문턱을 밟고 말했다.


“저도 여기서 자나요?”


그녀는 대답 대신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어 거실에 펼쳤다. 그리고 두 가지 선택을 내밀었다.


“여기서 잘래. 아니면 안방에서 잘래?”


아까의 죄책감 때문인지 안방에서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거실에서 잔다고 말했다. 사실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밤새 나를 간호하느라 지쳤을 거로 예상하고 나도 졸음이 쏠려왔다. 딱딱한 바닥 위에 눕자, 허리가 조금 아팠으나, 이내 잠이 들었다.

평소에도 잠이 이리 많은 건지 아니면 후유증 때문인지 일어났을 때는 정오였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들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일하는 중이지.”


“아 제가 말씀을 못 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통화가 끝났다. 부부가 아닌 아주 간단하게 용건만 물어보는 사이처럼 말이다. 입맛이 없었지만,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는 버리지 않은 채 쉬어버린 반찬들밖에 없었다. 그것들을 모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전부 버렸다.


그리고 찻장을 뒤지자, 라면 다섯 묶음 한 봉지가 보였다. 인덕션을 이용해 하나를 끓여 먹었다. 목이 말랐다. 정수기에 앞에 서서 물을 내렸으나, 곧 마음이 바뀌어 냉장고를 다시 열었다. 병으로 된 오렌지 주스 하나가 있어 그것을 마셨다.


시계는 오후 두 시를 가리켰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몸을 감쌌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집 안을 서성이던 끝에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로 바닥을 훑고 빨래를 갰다.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그녀는 집에 들어왔다. 나는 강아지라도 된 듯이 그녀를 마중 나갔다.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까지도 어색해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응시했다. 포옹을 먼저 한 건 그녀였다. 무언가의 불편함에 나는 손으로 그녀의 등을 감쌀 수 없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바로 샤워했다. 속옷과 잠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TV를 켜고 뉴스를 틀며 말했다.


“나 요구할 게 있어.”


“뭔데요?”


“일단 말부터 편하게 하고 매일 나를 처음으로 볼 때 사랑한다고 말해줘.”


이러니 권태기 찾아와 이혼을 앞두고 마지막을 회생시키려는 부부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 그런 행동을 보였을 수도 있다. 과연 내가 그녀를 사랑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짤막하게 답했다.

“알았어. 그렇게 할 게.”


저녁을 먹지 않고 들어왔기에 그녀가 냉장고를 열었다.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 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의문을 토해냈다.


“어? 어? 다 어디 갔지?”


“혹시 쉬어버린 반찬 얘기하는 거야? 내가 다 버렸는데.”


“그게. 사실 당신이 버리지 말라고 한 거야. 시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인데 도저히 못 버리겠다고 했거든. 그리고 음료수도 마셨네.”


불효자로 인식된 기분이었다. 부모님의 얼굴은 흐릿하게 떠올랐으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효심이라는 개념이 나에게 이상하게 잡혔다.


“괜찮아. 어차피 기억도 잘 안 나고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애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


그녀는 그 말을 모두에게 적용이라도 한 듯했다. 아마 자신에게도 애정이 그다지 크지 않을 거로 예상했고 서운함이 묻어난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녀도 나랑 똑같이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 후 소파에 앉아 다시 TV를 틀었다. 둘만 있는 순간이 너무 어색했다. 그녀도 그랬는지 분위기를 바꾸려 예능 프로그램을 틀었다.


그건 성공적이었다. 개그 요소가 나오면 서로 웃었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게 됐다. 하지만, 중간에 광고가 나올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런 패턴을 네 번 정도 이어졌다.


저녁 열 시가 되고 잠이 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야 한다고 했다. 내일 아침 서로 얼굴을 보며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게 이유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불을 거실에 깔려고 옮기는 중이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 돼?”


그녀는 나의 기억을 끌어당기려고 하기보다 뭔가 서로 결별의 위기에 놓인 사랑을 부여잡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팔을 펼치더니 베개처럼 배고 몸을 옆으로 누워 달라붙었다. 따뜻한 가슴의 온기가 시린 옆구리를 달래주었다. 그렇지만, 약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식은땀이 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몸이 약간 뻣뻣했다. 불을 끄고 한 팔을 그녀에게 내어주었기에 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이 지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기억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뇌에 좋다는 건강보조제, 견과류, 차까지 하루에 하나씩 꼭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말을 따라 매일 챙겼다. 하지만, 큰 진전은 그다지 없었다.


다만, 변화한 게 있다면 사랑한다고 매일 말하는 것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감정이 생겼다. 적어도,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은 맞다는 점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었다.


집에서 간단한 집안일과 요리 정도를 맡았다. 기억이 완전히 회복 될 때까지는 쉬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고 따로 큰돈이 들 때도 없으니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기억이 회복된다기보다 알아가는 게 점점 많아졌다. 대부분 집안에서 일과 그녀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나에 관한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친구랑 가장 가까운지 부모님과의 사이가 어땠는지 이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하나씩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사소한 것까지도 말이다. 예시로 정수기에서 미지근한 물만 나온다는 것, 그녀의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것 등을 적었다.


작은 수첩이지만, 오십 페이지가 넘는데도 그것을 다 채우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빼곡하게 적힌 글씨는 깜지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미 외운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다른 수첩을 사서 잊을 만한 것들만 다시 적고 새로운 걸 썼다.


그녀는 장기 휴가를 냈다. 잠깐이면 돌아올 줄 알았던 나의 기억이 진전이 없기 때문이었다. 첫날 우리는 시 월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기 바로 전인 정원에 갔다. 분홍색과 자주색 그 사이의 색감이 예쁜 꽃들이 널려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뇌 속에 스쳐 지나갔다.


“혹시 우리가 여기 온 적이 있나?”


그 말을 뱉자, 일부로 감추었던 비밀이라도 되듯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여기 작년에도 왔어. 기억나?”


기억이 난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호했다. 왜냐하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처럼 모자이크된 단편적인 장면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말했다.


“조금 기억나는 것 같아. 익숙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아.”


“그래도 그게 어디야.”


비포장 된 길을 따라 걸었다. 어제 비가 온 덕인지 흙먼지가 일어나지 않아 공기가 깔끔했다. 아침 일찍 간 턱인지 사람도 없어 고요했다. 우리의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토 존에서 서로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둘 다 나오게 찍고 싶었으나 우리밖에 없어 그러지 못했다. 대신 사진을 보며 어떤 것이 제일 잘 찍혔는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 쌈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신혼부부처럼 밥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녀는 아까의 일 때문인지 이번에는 물었다.


“여기는 기억 안 나?”


혀에 감도는 맛은 특별하진 않았다. 미친 듯이 맛있다거나 개성이 있기 보다 평범함에서 조금 더 맛있는 정도였다.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여기는 잘 모르겠어.”


“그래. 오늘 하나라도 건졌으면 됐어.”


장기 휴가를 낸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기에 바빴다. 새로운 곳을 가기보다 우리의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를 많이 다녔다. 자주 가던 밥집, 술집, 거리, 카페, 빵집 등 걸어왔던 발자국을 다시 디뎠다.


나는 갈 때마다 기억이 흐릿하게 뒤섞이는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으나, 최선을 다하는 그녀 앞에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새로운 기억을 가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기억은 사라졌지만, 마음속에 녹아 있는 감정은 되찾았으니까.


기억은 실패한 낚시와도 같았다.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할 때 줄을 당겨 확인하면 미끼만 사라졌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말했다.


“나은아. 이제 갔던 곳 안 가도 될 것 같아.”


그녀는 그 말이 기억이 돌아왔나 싶은 답을 내놓았다.


“기억이 다 돌아온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앞으로 새로운 추억을 쌓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기억에 연연하며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도 좋지만, 나는 지금 깔끔한 도화지 상태다. 그 여백을 채워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그녀도 나의 말이 마치 고백하려는 사람 같았는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