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우리 가족은 무언가 결핍되었다. 맞벌이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부모님, 각자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와 여동생만 보아도 가족들의 연대감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던 도중 동생의 생일이 다가오는 시점에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와 나는 반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의 의견에 뜻을 따른 것이었다. 어머니는 한 소중한 생명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강조했다. 그에 반해 동생은 키울 수 있다며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동생은 자신의 생일날 아버지와 함께 유독 늦었다. 어머니와 내가 연락해도 그냥 밥을 먹고 돌아온다는 말뿐이었다. 저녁 열 시가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 아버지 손에는 정말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있었다. 동생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어왔고 어머니는 가져다 버리기 전에 치우라고 말했다. 나는 첫눈에 반한 것처럼 강아지를 보자마자 곧장 태도를 바꿔 동생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많이 바뀌었다. 맞벌이를 끝내고 돌아온 부모님에게 먼저 달려가는 것은 우리가 아닌 별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부모님은 별이를 품에 안고 웃었다. 어머니는 삼일 정도만 싫어하는 척을 한 것인지 아버지와 같은 태도로 바뀌었다.
별이는 너무나도 흔한 강아지 이름이기에 아버지 성을 따서 이별이라고 부르려 했으나 뜻이 그다지 좋지 않기에 어머니 성을 따서 최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별이는 아직 무척 작았다. 내 손 크기 하나 정도였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조심히 움직여야 했다. 특히 보이지 않을 때가 가장 무서웠다. 혹여나 이불이나 사각지대에 있어 밟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이기 때문이다.
***
삼 개월이 지나자 그새 별이가 많이 컸다. 손바닥에 올리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성화 수술할 시기가 다가왔다. 가족들 모두 동물병원으로 갔다. 중성화 수술에 관해 상담을 받던 도중 별이는 고환이 밖이 아닌 안에 있는 특수한 경우라 수술비가 많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맞벌이였던 우리 가족이기에 수술비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았다. 수술 날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토요일로 잡았다.
토요일이 되고 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수의사는 약간의 상담 후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이가 깔때기 쓰고 나왔다. 수술 부위의 상처를 핥지 못하기 위함이었다. 별이는 깔때기를 거부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소독약과 연고를 자주 바르고 며칠 뒤 실밥을 푸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중성화 수술을 다행히 마쳤다는 게 체감됐다. 동생은 마치 큰 수술이라도 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
***
우리 가족 중에서 별이를 제일 아끼는 사람은 아버지와 동생이었다. 하지만 그 둘의 방식은 너무나도 달라 자주 다투었다. 밥을 먹을 때 별이는 자신도 사람 음식을 먹고 싶었는지 아버지의 다리를 긁으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에 식탁 위에 있는 고기를 물로 씻어 주려고 했다. 동생은 이를 보자마자 안된다고 화를 내며 별이 입안에 있는 고기를 빼서 버렸다. 둘의 갈등은 점점 심각해지고 어느 날 크게 싸우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삼겹살을 성인 남자 세입 크기로 잘라 별이에게 몰래 주었고 그것을 토했다. 동생은 누가 그랬냐며 따지기 시작했고 범인은 아버지 밖에 없었다.
“별이 그런 거 먹으면 토하고 건강 나빠진다고! 나중에 죽으면 다 아빠 탓이야.”
아버지는 토한 것도 별거 아닌 듯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대답했다.
“안 죽어. 괜찮아.”
그러자 동생은 더욱 화냈다.
“앞으로 이러면 이럴 때마다 집 나가 버릴 거야.”
“그딴 말 할 거면 그냥 지금 나가.”
“어 나갈 게 별이 데리고.”
“별이는 여기 있을 거야. 왜 데리고 나가?”
“아빠가 하는 게 별이한테는 독이 될 테니까.”
“조용히 해.”
“내가 왜 조용히 해? 지금 조용해야 할 건 아빠 아니야?”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고 말없이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쉬었다. 연기가 유난히 많이 나와 보였다. 동생도 별이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함께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
별이는 분리불안증이 생겼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웃이 참다 참다 말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나와 동생이 가고 부모님이 일을 하러 가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계속 짖어 소음이 발생했다. 그래서 별이에게 짖음 방지기를 착용시켰다. 짖을 시에 약간의 전기 충격이 발생한다. 물론 아프지는 않고 살짝 따가운 정도였다. 그런데도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학대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짖음 방지기를 사용하자 며칠 가지 않아 우리가 없을 때도 짖지 않았다. 그러나 짖지만 않을 뿐 불안해하는 모습이 웹캠에 찍혔다. 짖지 않고 낑낑거리기만 했고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
별이와 함께 산책하러 자주 나가는 것은 동생과 아버지였다. 이것도 둘의 방식은 달랐다. 여태까지는 큰 위험이 없기에 서로 잔소리만 놓을 뿐 건드리지 않았다. 동생은 목줄을 꼭 하고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서 산책을 시켰고 그에 반해 아버지는 뒷산 같은 곳에서 목줄을 채우지 않았다.
그날은 아버지가 산책을 시키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 산소에 간다며 나와 별이를 태우고 갔다. 별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좋다며 뛰놀았다. 그곳에 진돗개 몇 마리가 목줄에 묶여 있었는데 별이는 유심히 지켜보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때 진돗개가 목줄을 끊고 별이에게 달려갔다. 몸통이 물렸고 엄청난 신음이 들렸다. 아버지는 당장 달려가 진돗개를 발로 차버렸고 별이는 풀려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 산소고 뭐고, 당장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수의사는 별이의 상태를 보더니 큰 부상은 아니지만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으나 별이의 몸통에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집에 도착해 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산책 갔다 왔다고만 했다. 씻기는 것은 동생 몫이었다. 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순간 문이 닫혀 있음에도 큰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거!”
아버지는 자리를 회피하기 위해 바로 당구를 치러 재빠르게 나갔다. 자연스럽게 화살은 내게 돌아왔고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내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별이 몸통에 상처 뭐야!”
“아…. 산책하다가 다른 개한테 물렸어.”
“뭐?”
“병원 갔다 왔어. 엑스레이도 찍었고 별 이상 없고 약만 잘 발라주래.”
동생은 그제야 급하게 아버지 방문을 열었다. 텅 빈 방을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긴장될 정도였다. 전화는 곧 연결됐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 내가 산책할 때 꼭 목줄 하라고 했잖아! 그게 힘들어?”
“산인데 뭐 어때.”
“그래서 다른 개한테 물렸어?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빠 친구들이랑 있으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 사태를 알게 된 엄마는 우리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동생과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비판을 했다. 병원에 한 번 더 가봐야겠다고 하자 내가 말렸다.
***
어머니는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봤다. 거의 십 년 전 사진이었다. 오래되었다며 다시 찍고 싶다고 말했고 동생이 거들었다.
“별이 데리고 한 번 더 찍는 거 어때?”
“그럴까? 당신 생각은?”
“나야 좋지요.”
그날 이후로 시간을 조정해서 이번 주 일요일에 사진관을 예약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들떠 있었다.
일요일이 되고 아침 여덟 시 분주하게 준비 후 아버지 차를 타고 사진관으로 향했다. 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헥헥거리며 아버지와 동생의 무릎을 번갈아 가며 올라갔다. 십오 분 정도 가자 도착했다. 주위에는 사진관 하나밖에 없는 시골이었다.
사진관으로 들어가자, 사진사가 예약에 관해 물었고 어머니는 이름을 대며 확인했다. 그 후 탈의실에 들어가서 옷을 계속해서 번갈아 입으며 어떤 게 잘 어울리는지 보았다. 옷을 선택하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어색하다며 싫어했지만, 나의 부탁으로 겨우겨우 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여자가 좀 더 오래 걸리는지 우리는 끝나고 소파에서 기다렸다. 이십 분이 추가로 더 흐르고 우리 가족은 모였다. 서로의 얼굴이 보는데 적응의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모두 준비가 끝나고 동생이 별이를 안자마자 사진사가 말했다.
“강아지 옷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어요. 한 번 보시고 입혀주시면 될 것 같아요.”
동생은 그때 무척 행복해 보였다. 별이를 안고 사진사가 안내한 길을 따라가며 말했다.
“아 그래요? 어디에 있어요?”
동생은 옷을 꺼내 별이를 안고 이 옷 저 옷을 입혀보다가 노란색 강아지용 후드티를 입혔다.
스튜디오에 들어가고 사진사가 말하는 대로 자세를 잡았다. 자세를 다 잡자, 사진사는 갑자기 이러면 찍을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당황해 묻자, 그가 답했다.
“표정들이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찍어요. 자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각자 바라보세요.”
동생은 별이를 안고 나를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려고 했다. 사진사는 셔터를 많이 누르더니 이번에는 별이를 다른 사람이 안고 있으라고 말했다. 별이는 셔터의 빛이 적응되지 않는지 정면은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웃고 있었다. 사진을 다 찍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밖으로 나가자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카페라도 가자고 했다. 동생은 핸드폰으로 검색 좀 하더니 근처 애견 카페에 가자고 했다. 바로 그곳으로 핸들을 돌려 향했다.
도착하자 수많은 강아지가 있었다. 다만 대형 개는 위험 요소가 있기에 분리해 두었다. 카페 메뉴 중 멍푸치노라는 것이 있어 궁금해 물어봤다.
“멍푸치노는 뭐에요?”
“아 강아지들이 먹는 커피에요. 물론, 카페인이나 설탕 그런 것들은 당연히 없어요.”
동생은 무조건 시켜서 별이에게 주자고 했다.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 아이스티 두 잔, 멍푸치노 한 잔을 시켰다.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커피가 나왔다. 멍푸치노가 뜨거울까 봐 식혀야 하나 고민했던 우리의 우려와 다르게 미지근한 온도로 나왔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별이의 반응을 보기로 했다. 맛있는지 계속해서 혀로 할짝거렸다. 아버지는 궁금했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사람이 마셔도 돼요?”
“상관은 없는데 맛은 없을 거예요.”
별이가 배가 부른지 멍푸치노에 관심이 없을 때 우리는 돌려가며 조금씩 맛만 보았다. 역시 강아지의 미각과 사람의 미각은 매우 달랐다. 자극적인 맛에 찌들어서 인지는 몰라도 맛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사진관을 들렀다. 사십 장이 넘는 사진이 대형 스크린에 띄워졌다. 먼저 배경을 고르기로 했다.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무난한 흰색을 선택했다. 자세는 처음에 찍었던 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골랐다. 그리고 별이의 시선 처리에 따라 몇 장을 더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선택된 사진은 흰색 배경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아버지 품에 안긴 별이가 동생을 바라보는 것으로 골랐다. 액자의 크기는 벽에 걸 수 있는 큰 것이 아닌 책상이나 탁자에 놓을 만한 작은 액자를 선택하고 총 네 장을 뽑았다.
사진사는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곧이어 액자 하나와 사진 네 개를 주었다. 별이에게 보여주자, 냄새를 맡으면서 발을 올렸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
전의 집보다 열다섯 평이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거나 가난해졌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새로운 아파트에 이사하기 위해 지금 원래 있었던 집을 비싸게 팔고 잠시 지낼 곳이라고 했다. 내 방도 매우 작아졌다. 별이는 새로운 집에 금방 적응했다. 첫날에는 집안 곳곳을 온종일 냄새를 맡으며 경계했지만, 이틀도 가지 않았다. 또한 산책도 전보다 더 자주 나갔다. 아파트 뒤에 뒷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내가 산책을 시켜주고 돌아왔다. 목욕을 시키고 드라이기로 털을 다 말리고 품 안에서 놓아주었을 때 갑자기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모든 생각을 동원했지만,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었다. 동생도 이를 목격했고 당장 병원에 데려갔다.
수의사는 엑스레이를 찍고 말했다. 별이는 서 있는 게 불편한지 계속해서 낑낑거리며 신음을 뱉었다. 큰일이 아니길 바랐다. 수의사는 별이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라고 했다.
“양쪽 슬개골 탈구에요. 소형 개한테는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큰 수술인가요?”
“아뇨. 너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술은 이른 시일 내에 하는 게 좋다고 해서 바로 그날 진행했다. 수술하고 나온 별이는 초췌해 보였다. 다섯 살인데 마치 열다섯 살인 늙은 개처럼 말이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끝나서 다행이었다. 수의사는 집에 미끄럼 방지 패드를 설치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어머니에게 전하자마자 바로 패드를 주문했다.
물건이 도착한 것은 오후 한 시였다. 부모님은 일을 나갔고 우리는 방학 기간이어서 설명서를 보며 패드를 하나씩 깔았다. 그전에는 몰랐지만 깔고 나서야 별이가 약간의 미끄럼과 함께 밀리는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오고 별이는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안겼다. 바닥에 깔린 패드를 보고 우리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별이의 꼬리가 유독 거세게 흔들렸다.
***
별이는 언제부턴가 사료를 잘 먹지 않았다. 아픈 것은 아니었으나 아버지가 자꾸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어서였다. 그로 인해 알레르기가 생겼고 귀에 피가 날 때까지 긁는 바람에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은 전부 아버지 탓을 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수의사는 사람이 먹는 음식은 절대 주지 말고 귀 소독약과 알레르기약 그리고 전용 사료를 주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귀를 긁는 별이에게 깔때기를 씌웠다.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고 동생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음식 절대 주지 마. 절대로.”
아버지의 대답은 한결같았지만, 바뀌는 행동은 전혀 없었다.
“알겠어.”
그동안 아버지가 준 음식으로 길들여져 있어서인지 사료를 통 먹지 않았다. 식사만 시작하면 별이는 아버지 다리를 긁으며 낑낑거렸고 그 모습이 언제나 져주며 음식을 주었다. 동생과의 분쟁은 점점 심해졌다.
사료를 먹지 않은 지 삼 일이 되었고 계속해서 귀를 긁으려고 시도했다. 동생은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얘기하다가 나왔다.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전쟁의 선전포고 같았다. 그 이후로 동생과 아버지는 말을 거의 섞지 않았다. 또한 별이에게 음식을 주는 횟수가 줄었다. 별이가 사료를 먹기 시작하자 제일 좋아하는 것은 동생이었다. 사료를 다 먹으면 보상으로 간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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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고 동생은 고등학교 삼 학년이 되었다. 집과 거리가 있었기에 기숙사를 써야 했다. 주말마다 집에 가서 별이를 보았지만, 돌본다는 개념과는 달랐다. 동생은 아직 성적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공부보다는 별이를 돌보았다.
동생은 아버지를 더 싫어하게 됐다. 옛날에도 자주 씻기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아예 산책만 시키고 씻기지 않았다. 결국 진드기에게 물렸고 그 진드기 때문에 병원을 가서 다 제거하고 주사도 맞아야 했다. 수의사가 말했다.
“자주 안 봐야 좋을 텐데. 자주 보게 되네요.”
“그러게요. 저희도 그러고 싶어요.”
그날부터 동생은 아버지에게 별이를 산책시키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누가 시키냐고 아버지는 반문했지만, 동생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면 된다고 했다. 할 말이 없던 아버지는 알겠다며 손을 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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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학업 활동과 대외 활동이 맞물려 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집에 가면 별이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두 달이 넘는 동안에도 못 가지 못했음에도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별이를 키우기 전에는 강아지도 그냥 동물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편견을 깨주었다.
동생도 점점 바빠졌다. 고등학교 삼 학년 초반에는 별생각이 없었으나 오월이 되면서 생각이 바뀐 듯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여전히 유지해서 집에 늦게 들어왔고 동생도 늦게까지 독서실에 있었다. 나는 집에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별이는 그렇게 점점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별이의 고통을 당연하게도 이해하지 못하고 심려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바쁜 인생을 핑계로 별이를 그저 행복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쯤부터 산책도 원래는 이틀에 한 번은 갔으나 일주일 중 주말인 일요일 한 번으로 줄여졌다.
***
그리고 방학이 찾아왔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동생은 여전히 학업에 몰두했다. 그래서 내가 산책을 시키고 씻기고 알레르기약을 먹이고 귀 소독을 했다. 귀찮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어느 날 아버지는 별이를 산책 시켜준다고 했다. 동생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방 밖으로 나와 목줄과 풀숲에 절대 가지 말라고 크게 강조했다. 아버지는 목줄을 챙기고 알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두 시간이 지나고 늦게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도 걸어보라고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것 같았다.
세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다시 걸자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게…. 사고가 나서 지금 동물병원이야.”
그 작은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동생은 바로 방 밖으로 나와 핸드폰 뺏으며 말했다.
“무슨 사고? 많이 다쳤어?”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입이 열 개라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무슨 사고냐고!”
“병원으로 와서 얘기하자.”
그 자리에서 우리는 바로 차를 타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아버지는 계속해서 병원 안을 맴돌고 있었다. 제일 먼저 동생이 물었다.
“큰 사고야? 별이는 어디 있어?”
“수술 중이래.”
동생은 아빠의 가슴팍을 치며 오열하며 말했다.
“별이 잘못되면 어떡해! 내가 그러니까 목줄 제대로 하고 다니라고 했잖아!”
아버지는 동생은 안으며 말하려고 했지만, 차디찬 손길로 그 손을 뿌리쳤다. 그때 수의사가 나왔다. 동생은 제일 먼저 달려가서 말했다.
“제발 저희 별이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수의사는 동생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시선을 아래로 고정하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별이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고가 너무 크게 났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별이가 왜 죽어요!”
어머니는 동생의 어깨를 잡고 말렸다. 아버지는 퀭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
별이가 죽고 나서 아버지와 동생은 일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가가는 아버지를 완강히 거부하고 밀어냈다. 별이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집에 들어와도 반기는 누구 하나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은 공부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표정은 시체와 다름없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말이다.
아버지는 피우시는 담배가 늘었다. 베란다를 보면 언제나 고개를 밖으로 돌리고 연기를 내뱉는 척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는 별이가 죽고 매일 불쌍한 별이라며 나에게 말했다.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더욱 그리울 것 같아서 더욱 힘들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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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지나자, 우리 가족은 그나마 조금 회복했다. 아버지와 동생 사이도 예전보다 나아졌고 어머니의 입에서도 별이라는 말도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이의 장난감, 배게, 그릇을 버리지 않고 한쪽 구석에 놔두었다.
산책하다가 가끔 강아지가 보이면 별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면 생각이 많아져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별이는 우리가 없을 때마다 얼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불쌍한 별이 행복했으면 하는 별이.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더 행복한 주인 만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