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절대적인 사랑의 비유법

전지적 아들 시점

by 집안의 불청객

연인관계 사이에서는 쉽게 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비유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사랑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다.


대부분 직설적으로 ‘언제나 네 편이다.’,‘사랑한다.’라는 말이 주로 이룬다.


왜인지 생각해 보면 피는 물보다 진하듯이 절대적인 사랑을 비유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별을 따 준다는 말도, 우주의 넓이만큼 사랑한다는 말도 혈연 사이에서는 언제나 늘 부족한 표현인 것 같다.



부모님은 말로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비유법은 바로 행동이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챙겨주는 그런 것들, 나를 나 다음 제일 잘 알기에 맞춰주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우리가 평소처럼 느끼기에 와닿지 않는 것이다. 실상은 부모님을 제외한 그 누군가가 이것을 해준다고 해도 대체 불가하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도형이 되는 것과 같이 작은 게 하나씩 모여 체감되지 않을 뿐 마주하고 쳐다보면 큰 산 하나가 높이 솟아있다.




어릴 때는 알지 못했다. 아침밥을 어떻게든 먹이려고 했는지, 남들 다 다니는 학원에 기죽지 말라고 보내려고 하는지 등등을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챙길 나이이기에 비로소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느낀 점은 나는 나를 챙기기도 힘들었고 고뇌를 해야 했다. 부모님은 자신을 챙기고 나서 나를 챙긴 것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자식이 우선이고 먼저였다. 그들은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모님이 나에게 투자를 한 것이고 그 투자한 만큼 내가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말을 아버지한테 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네가 부동산도 주식도 돈도 아닌데 투자라는 말이 어울리냐며 다그쳤다.


다그친 이유는 너를 절대적으로 사랑해서 나온 행동으로 돌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는 어린가 보다. 언제쯤이 되어서야 알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사랑을 받아보기만 했기에 그리고 어떻게 주는지 모르기에 그렇다.


늘 사랑을 받으며 자라기를 부모님은 원했다. 남한테 사랑을 주기보다 받는 모습을 원하는 그들이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줄 사랑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면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한 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성공이 그들의 기쁨일 수도 있고 그들 자체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의 비유법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됐든 나도 부모님에게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비유법을 보이고 싶다.


나에게 해줬던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 나의 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다.




갈팡질팡하다 보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부모님은 늙어간다.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을 벗어나면 그들은 더 멀리 나아가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는 걸 체감한다. 측은함, 아련함, 슬픔이 몰려오면 조급해져만 간다.


성숙에서 늙음으로 바꿔 가는 모습을 직시하는 게 싫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절로만 남고 싶다.

물론, 세월이 지난다고 사랑이 적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표현의 방식이 줄어들거나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표현이 줄어들지 않을 때가 딱 지금이지 않나 싶다. 같이 어디를 놀러 가고 무엇을 주고받고 하는 날들의 연속이 말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서로 조금이라도 무엇을 해주려는 마음은 굴뚝과도 같다.


하지만, 할머니가 표현할 방법은 적어지고 어머니는 많아진다.


그런 것처럼 나와 부모님의 관계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조금 서럽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한다. 그릇이 넘치도록 사랑하는데, 거기에 그릇에 넘치는 것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을 만큼 표현하고 싶은데.




이제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야겠다. 나의 절대적인 사랑의 비유법을 알아야겠다.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 바로 하는 게 조금이라도 더 낫다.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부모님과 받기만 하는 나이가 지난 나는 오늘도 서로를 비유법이라는 줄에 사랑을 살포시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