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춘기, 열여섯의 시작 그리고 양쪽의 실수

전지적 아들 시점

by 집안의 불청객

나는 사춘기가 늦게 온 편이었다.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보다 친구의 우정을 중요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의 사랑을 너무도 안일하게 여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주기만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에 반해 친구들은 언제 잃을지 몰라서 그랬다.



열여섯이 되고 사춘기가 오면서 학교를 빼먹거나 수업 중 이탈하거나 그런 일들이 많았다.


부모님은 크게 걱정하였고 나는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일관했다.


걱정하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 마음 깊이서 오는 근원을 느껴야 했다.


그때는 지금과 다른 마음이 앞섰다. 나에게 신경 쓰지 말라며 말했고 남들과 다르면 어떠냐고 했다.


신경 쓰지 말라는 그 말이 부모님에게는 단절로 들렸을 것이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서 남으로 이탈하는 그러니까, 벗어나려는 관계로 느꼈을 것이다.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 실수는 아직 부모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낙서로 남았다.


진로에 관해서 문제도 엇갈렸다. 부모님은 일반 고등학교 가기를 원했고 나는 공고를 원했다.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작정 공고를 졸업 후 바로 일하겠다며 사회에 뛰어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때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 공고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내가 그곳에 과연 적응해 남들보다 사회로 빨리 나갈 수 있을지를 미지수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 생각은 적중했다. 담임선생님과의 마찰로 인해 자퇴했고 적응하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미리 앞을 내다본 것처럼 내게 쓴소리를 뱉어냈다.


자퇴할 당시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엄마는 그대로 따라 하며 내뱉었다.


“자퇴하면 이제 나는 손 쓸 구석이 없어. 너한테 손 뗄게.”


처지를 바꿔서 당해 보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내가 뱉은 말의 무게감을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는지를 말이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엄마를 원망했다. 내 엄마인데 저럴 수 있냐고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냐고.


그러나, 지금 떠올리면 엄마가 저 말을 내뱉기 전까지 얼마나 깊게 고민했을까. 오죽하면 저런 모진 말을 내게 말했을까 싶었다.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반항적이고 이기적이고 일방적이었다. 대화의 단절과 자기주장만 내세웠다.


내 말이 다 맞다는 듯이 행동했고 앞에 있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봤다.


부모님은 숲을 바라보길 원했고 그렇게 인도하도록 노력했으나 나의 거센 반항이 문제였다.



그 반항은 열아홉이 되어서야 멈추었다. 대학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고 부모님의 큰 지지를 받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지지에는 금전적인 것도 내면적인 것도 있었다. 무려 한 달에 백오십만 원이 넘는 학원에 다니게 해주었으며, 밤늦게 집에 들어가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냈다.


나는 학원에 들어가며 마음을 굳게 먹었고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수능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원래는 일 등급 맞던 과목을 사 등급을 맞아버렸다.


내 정신은 당시에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무너져버렸다. 부모님에게 위로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집에 들어가자, 엄마는 잘 봤냐며 말했고 나는 못 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위로, 공감, 걱정, 안정을 원한 나와 다르게 엄마는 격양된 표정으로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


“학원에서 멍이나 때렸겠지.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이번엔 엄마가 내 마음에 찢어진 상처를 냈다. 그 상처는 지금도 봉합되지 않은 채로 머릿속에 박혀 가끔 실패에 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때부터였다.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은. 도전이라는 단어에는 실패라는 결과부터 생각했다. 모험이라는 단어에는 불완전성만을 생각했다. 사소한 것에도 염려했으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도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가에 관한 의문점을 달고 살았고 실패를 하면 자신을 혐오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나는 남들과 달라서, 남만큼 하지 못해서, 애초에 나는 실패자라서라는 생각이 앞섰다.



우리는 모두 실수했다.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줬고 불행이 행복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 만큼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이제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대화를 시도하며 가까이 지내려 한다.


열여섯의 사춘기의 시작 그 자체는 불행이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불행이 있기에 지금 행복을 찾아 노력하는 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