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나는 방목의 자유와 구속의 족쇄를 모두 경험했다. 그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는 너무나도 넓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고 선택한다 해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개가 되고 싶었지만, 실상은 울타리에 갇혀있는 강아지였다.
아직 선과 악의 개념이 잘 잡히지 않고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라는 밧줄과 아버지라는 방목에 길들여져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앞에서 그렇게 행동해야 했다.
두 분 다 일을 하셨지만, 나에 관한 관심은 작지 않았다. 특히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친구들과 놀때면 누구는 어울려도 되는지 누구하고는 어울리면 안 되는지 기준을 세워 나에게 가르쳤다.
집에 친구들을 자주 데려오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많은 친구들이 놀러 왔으나 그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기준에 따라야 착한 어린이가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나를 가끔 데리러 올 때 이 친구 저 친구를 구별하지 않고 밥을 자주 사주며 용돈을 건네주었다. 어떤 친구든지 선입견을 품고 바라보면 안 된다고 했고 직접 경험해 스스로 판별해야 한다고 했다.
부모님의 말씀은 각자 들었을 때는 쉬웠으나 의견을 합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거짓말이었다. 어머니 앞에서는 어머니에게 맞게 아버지 앞에서는 아버지에게 맞게 행동하는 게 결론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보지 않기에 여러 친구와 함께 놀이터에 있었다. 아버지는 곧 차를 타고 데리러 온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지금 나오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도 거리낌 없이 친구들을 데리고 아버지 차 앞에 멈춰 섰다. 그런데 조수석에서 창문이 열렸다.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친구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약간의 찡그린 표정과 어색한 미소가 상황을 알게 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이번에도 용돈을 건네주며 가게에서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그날 친구들과 밥을 먹었다. 단 한 명도 어머니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가 부럽다고 치켜세우는 말을 연이었다. 그들의 칭찬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할 때까지 인사를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밖에서 들렸던 시끄러운 말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신발을 벗고 샤워 후 밖으로 나오자, 어머니는 명령조에 가깝게 의자에 앉으라고 말했다. 어머니 옆에는 내가, 맞은편에는 아버지가 앉았다.
“너 엄마가 애들 가려서 만나라고 했어?”
“가려서라니. 화연이한테 좋은 친구들만 기억에 남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때 상황 파악이 됐다. 나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둘의 눈을 교차하며 바라봤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눈은 자신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을 선사했다.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선택하는 문제보다 더욱 어려웠다. 어느 타이밍에 말해야 할지 모를 때 어머니가 독촉했다.
“김화연. 말해 봐.”
“그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좋았으면 해서….”
그저 상황이 무서웠다. 울음을 터뜨리자, 아버지는 어머니가 안기 전에 나를 안았다. 어머니는 나를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의자에 앉아 변하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지켜봤다.
울음이 그치자, 아버지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방에 들여보냈다. 밖에서는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더 공포감이 있는 조용한 말소리가 오고 갔다. 중간에 섞이는 한숨이 내 탓인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모든 면에서 중심이 되었다. 부모님은 여태까지 어떻게 참아왔는지 아니면 억눌러왔는지 모를 교육관들을 서로에게 내뱉었다. 대부분 맞지 않았고 의견 차이가 점점 심해졌다. 극에 달할수록 둘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보기에도 멀어진 사이가 되어버린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셋에게 이제 집은 안락하지 않았다. 휴전상태의 얼어붙은 겨울과도 같았다. 공동체도 아니었다. 각자의 빨래, 각자의 설거지, 각자의 식사를 이어 나갔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부모님은 번갈아 가며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이 몸이 배겼다. 아버지의 손길이 마지막인지 몰라 다음에는 언제냐며 물었을 때부터 말이다. 아버지는 말에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말했다.
“다음에도 또 보면 돼. 화연아.”
그 이후로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어디를 갔냐고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앞으로 볼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이유를 물으면 그렇게 됐다고만 할 뿐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사 학년이 되어서야 이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위해 살아갔다. 회식에 덜 참여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자신의 식비, 교통비를 아껴갔다. 학원에 다니게 하고 성적에 신경 썼으며 대외 활동, 봉사도 일일이 일정을 짜왔다.
나는 로봇처럼 짜놓은 대로 움직였다. 잠시 쉬고 싶다고 말하면 어머니는 지금 열심히 해야 나중에 편히 쉴 수 있다며 달랬다.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대외 활동으로 글쓰기 백일장이 열렸다. 나는 어쩌면,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봉사에 집중하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함임을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날 어머니는 입력한 프로그램대로 행동하지 않는 로봇을 대하는 것처럼 말했다.
“화연아. 필요 없는 건 앞으로 도움 되지 않아. 알겠지?”
몇 년간 보지 못했고 여태까지 죽을 만큼 보고 싶지 않던 아버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흙투성이로 함께 놀던 친구들, 그리고 용돈을 주며 원하는 곳에 가서 밥을 먹으라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진정한 친구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빡빡한 학원으로 인한 공부, 대외 활동과 봉사 활동으로 인해서 누군가와 놀기가 어려웠다. 학교 수업 시간이 끝나고 친구들은 축구공 하나를 들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나를 데려가려고도 했지만, 이제는 대신 다른 말을 남기며 떠났다.
“어차피 쟤 학원 가느라 우리랑 못 놀잖아. 물어봐서 뭐 해.”
선택권조차 없어졌다. 그들이 가볍게 뱉은 문장은 마음속에 뼈가 시리도록 새겨졌다. 어머니가 미웠다.
친한 친구 없이 초등학교를 보내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어머니의 모든 말이 짜증이 났다. 나를 통제하고 제어하려는 말들. 자기 손바닥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강요가 말이다. 그 강요를 이제는 더 버틸 수 없었다.
입학식 첫날에 애들에게 친해지려고 들이댔다. 애들과 우정이라는 연결고리가 생기게 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같이 어울려주고 같이 행동하면 그뿐이니까. 나를 지지하는 이들을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난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어도 괜찮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학원을 계속 빠졌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지만, 나는 반항했다. 결국, 여태까지 다니던 여러 학원을 모두 재등록하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지 않자, 시간이 남았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피시방이나 당구장, 노래방으로 향했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양아치도 아니었다. 여태까지 이것을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싶을 정도로 자유로웠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예전에 없어진 아버지 탓을 했다. 그 말을 들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아버지를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곧장 그 길로 갈 확신이 있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오히려 좋았다. 남들이 성적에 관한 압박을 받을 때 일찍 끝난 시간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고민도 하지않고 친구들과 함께 당구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아버지가 친구들과 당구를 치고 있었다. 애들은 내게 왜 들어오지 않냐고 물었고 아버지의 시선이 나로 향하기 직전에 급하고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인지 아버지는 단숨에 나를 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내가 왜 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부탁이 아니었어도 애초에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각각의 친구들에게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본다고 말했다. 우리는 곧바로 식사하러 갔다. 무엇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예전에 자주 사주셨던 분식집이 떠올랐다. 그곳으로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정말로 괜찮냐는 듯이 말했다.
라면 정식 두 개를 시켰다. 초등학교 근처 건물이다 보니 중학생이 되어서는 오지 않은 지, 꽤 되었지만, 학교의 정문을 보자 예전의 기억들이 생각났다. 라면을 먹으면서 몇 년 만에 보는 우리는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알지 못해 그릇에 시선을 고정하고 먹었다.
다 먹은 후에는 아버지는 계산한 후에 골목길로 들어가 담배를 태우셨다. 원래 피우시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아마도, 나와 헤어진 후에 태우기 시작한 것 같았다. 조용히 옆에 서서 기다렸다. 저 담배가 짧아지기 시작하자 마음속이 초조해졌다. 저 담배를 다 태우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아빠. 안 가면 안 돼요?”
“아들. 아빠 핸드폰 번호 알려줄게.”
번호를 교환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떠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 앞에 나를 내려주고 용돈을 이십 만원을 쥐여 주었다. 떠나가는 자동차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시간은 아직 오후 두 시도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퇴근하기에는 한참 이른 시간이었다. 낮잠을 자려 눕는 순간 무언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편 후 서랍장 제일 깊숙한 곳에 넣었다.
낮잠에서 일어났을 때는 저녁 여섯 시였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어머니는 나의 안부보다 시험에 관해 물었다.
“오늘 시험 잘 봤어?”
말투는 나긋했으나, 그 이외에 모든 것은 마음에 턱하고 걸렸다. 그래서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그럭저럭.”
“아들. 이제 초등학생도 아닌데 열심히 해야지.”
말에 어폐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인제 와서 그걸 없던 것으로 치워버리고 핑계를 삼았다. 오늘 아버지를 만났을 때 따라가 버려야 했나 싶었다. 그래서 일부로 상처 주는 말을 했다.
“아빠 따라갈걸 그랬어.”
“뭐?”
어머니는 못 들었는지 아니면 부정하고 싶었는지 한 번 더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확신을 주기 위해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따라갈걸 그랬다고!”
“그럼 나가! 아빠 찾아서 가!”
마치 아버지 전화번호도 있고 감정적으로 흥분해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짐도 챙기지 않은 채 외투 하나만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진짜로 아버지를 찾아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얼마 가지 않아 받았다.
“화연이니?”
나의 번호를 알지 못했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네. 아빠.”
나의 답변이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지만, 기운 떨어지는 말투와 걱정거리가 담긴 대답에 아버지는 곧장 물었다.
“지금 어디야? 아빠가 데리러 갈 게.”
아버지는 이유도 묻지 않았다. 그저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데려온다고 말했다. 목에 메인 밧줄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와 같이 살던 아파트 앞 놀이터에 있다고 했다.
밖은 추웠다. 하얀 입김이 서리고 내가 나왔던 아파트 건물 창문은 모두 답답하게 닫혀있었다. 그 누구도 문을 열지 않았다. 따뜻한 방에 누워 그저 조금 쉬고 싶었다.
삼십 분 정도 그네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쌓인 눈을 바라봤다. 그때 놀이터 앞에 차가 한 대 멈춰 섰다. 검게 선팅된 창문이 스르르 열리자, 아버지가 해맑게 웃으며 손 인사를 건넸다. 곧장 일어나 달려가 차에 탔다.
차를 타고 갑작스럽게 만난 저번과 달리 이번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됐다.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할 수도 복잡해져 버린 가정사를 꺼낼 수도 없었다. 그가 말했다.
“밥은 먹었어?”
“아니요.”
“일단 밥부터 먹자.”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으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가니 식장 아주머니가 넉살을 지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부대찌개 이 인분과 라면 사리를 시켰다. 위 속에 따뜻한 것이 들어가니 삼십 분 동안 눈 맞은 보람이 있었다.
밥을 다 먹고 아버지는 일단 자신의 집으로 향하자고 했다. 어머니랑은 아직 같이 있고 싶지 않았기에 그 말에 동의했다. 아버지의 집은 원래 살던 곳보다 더 넓고 깔끔했다. 이방 저 방을 들락날락하며 구경했다. 새것 같은 가구와 정돈된 배치에 반해 방바닥은 차가웠다.
그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벨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끊어버리고 전원도 꺼버렸다.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당분간 여기 지내고 싶었다. 아버지는 짐작했는지 내게 말했다.
“엄마니?”
거짓말을 할 마음은 없었으나, 입이 먼저 벌어졌다.
“아니요. 그냥 친구예요.”
“그래. 오늘 여기서 하루 자고 가. 춥지? 보일러 틀어줄게.”
“어느 방에서 자면 돼요?”
그러자, 아버지는 싱글 킹 사이즈의 침대가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손수 전기장판까지 틀어주고 문을 닫으며 말했다.
“잘 자.”
“아빠도요.”
열기가 따뜻하게 올라와 몸을 덥혔다. 그 열기는 물리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심적으로도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에 몸이 더욱 늘어졌다. 아직 저녁 여덟 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졸음이 쏟아졌다.
일어나자마자 샤워 후 옷을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고 있던 아버지는 어느새 출근 준비를 마쳤는지 정장을 입고 나를 기다렸다.
“학교까지 태워다 줄 게.”
“고마워요. 아빠.”
아버지랑 살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자유롭지 않았을까, 보통의 애들처럼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다시 밧줄에 메일 시간이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조례가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이유는 우리 어머니가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아들이 실종된 줄 알았다는 둥 가출했다는 둥 그런 쓸데없는 말까지 붙여 연락한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계속해서 나를 추궁했다. 아버지랑 있는 게 잘못된 것처럼 계속해서 답을 회피했고 결국, 나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자 나를 한 번 더 불렀다. 교무실로 따라가자,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털어냈다.
“엄마가 너 없어진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어?”
이곳에서까지 짜증 내고 싶지 않았다. 보는 눈들도 많고 우리의 가정사가 여기 있는 모두에게 알려지기도 싫었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계속해서 질문하는 어머니를 외면했다.
그날 학교가 끝나자, 어머니는 나를 데리러 왔다. 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차에 얼른 타라고 하는 엄마가 괜히 창피했다. 주변을 몇 번이나 둘러보고 나서야 조수석에 타서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집과 아버지의 집은 많이 다르다는 걸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넓이도 청결도 부족했다. 미운 마음은 점점 속에서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너 어디 갔다 왔어.”
“알아서 뭐 하게.”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나는 방문을 굳게 잠그고 닫았다.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에게 계속 가는 건 법적으로 아버지를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머니와 같이 있기 싫었고 아버지가 계속해서 그리웠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절대적인 사랑이 무한하게 되뇌었다. 몇 년 만에 보지만, 잠깐 사이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나에게 그런 행동을 보였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나가서 허기를 때우기 위해 밥을 급하게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이 와 있었다. 무슨 말 할지 기대를 걸며 연락했다.
아버지는 양육권에 대해 재소송을 했다. 어머니는 지금 와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냐고 노발대발했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결국, 양육권에서 패소한 엄마는 나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말이 넘겨지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게 되었다.
짐을 챙기러 어머니 집에 아버지와 내가 왔을 때 서로 모르는 체했다. 최대한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챙겨야 할 것만 처리한 후 아버지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자 그제야 둘 다 긴장이 풀렸는지 우리는 서로 안으며 미소를 지었다. 짐을 풀기도 그 따뜻한 품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들. 이제 진짜 안아보자.”
우리는 이제 진짜로 가족이 되었다. 어머니라는 밧줄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고 다시는 잡힐 일 없이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