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발자취를 남긴 그들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에 너의 인상을 그리고 처음에 네가 뱉은 말을.
부담스러울 정도의 큰 눈동자, 손목에 있는 점, 웃을 때 올라가는 입꼬리, 눈웃음, 여리여리한 몸,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너에게 중세시대처럼 첫눈에 반했다. 그래서 네 주위의 사람들과 친해졌고 너와의 접점을 찾았다.
하지만, 너는 이상하게도 내게 거리를 주지 않았다. 조별과제에서도 같은 동아리에서도 대학교 학과 생활에서도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접점을 내가 만들고자 했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슬펐던 것 같다. 나는 최대한 노력을 하지만, 따라주지 않는 상황 때문에 말이다.
일 학년을 마치고 이 학년이 되어도 우리는 친구라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네가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나와 말을 나누었을 때도 똑같았다.
달래줘야만 하는 나와 그런 나를 언제나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네가 있었다.
친구로 남고 싶지 않았다. 헤어짐이 있더라고 만남을 갈구할 정도로 깊은 마음이 남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네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였다.
그 소식을 누구에게 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이 매우 원망스러웠다.
결국, 친구로도 남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계속 너를 생각한다.
연락이 안 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그런데도 너의 인상과 목소리가 내 마음에 녹아있다.
녹아있기에 떨칠 수가 없다. 마음을 전부 뜯어내 버릴 수는 없듯이 그저 한구석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웅크려 있는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대부분을 독차지하고 있다.
무엇을 해도 쉽게 잊히지 않고 불현듯이 네가 스쳐 지나가며 집중을 방해한다.
나는 네게 어떤 사람이었을까도 싶다. 정말로 친구로만 생각했을까. 아니면 순간이라도 나를 이성으로 본 적은 없을까.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하나하나를 각자의 머릿속에 추억으로 상기시키고 있지 않을까.
여태까지 했던 사랑 중에서 너와 나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제일 깊은 사랑을 했다.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모든 걸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제일 큰 행복을 얻을 수 있겠다는 희망도 뒀다.
그 희망이 차츰차츰 사라질 때는 좌절과 불안을 겪어야 했지만, 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만의 생각을 너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나를 하루도 사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와 반대로 나는 너를 하루라도 사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작다. 아니, 없다고 해야겠다.
네가 연락을 끊은 이유가 나의 희망을 고문하는 듯한 죄책감에 억눌려서 그런 것은 아닐까도 싶다.
만약에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주면 좋겠다. 희망이 없는 것보다는 희망의 고문이 나으니까.
그냥 카페에서 맞은편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보고 커피를 홀짝이며 일상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만큼 나는 너에게 스며들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보이지 않아도 보이고 들리지 않아도 들린다.
그게 내가 느끼는 너였다. 작은 몸집에 나를 보고 달려와 춥다며 겉옷을 달라고 했고 그 겉옷에 너의 온기가 묻어있다.
정말로 진심으로 제일 사랑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둘만의 기억은 없지만, 둘만의 추억은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언제 만날지 모르지만, 그것에 기대하며 가끔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봄이 오면 너는 어떻게 지낼까, 여름이 오면 덥진 않을까, 가을이 오면 외롭진 않을까, 겨울이 오면 춥진 않을까.
사계절 전부가 네 생각으로 가득 찼다. 봄은 궁금증을 여름은 뜨거운 마음을 가을은 외로운 나날을 겨울은 차가운 심정을 대변했다.
초가 지날수록 분이 지날수록 시가 지날수록 하루가 끝나도록 네 생각을 지치도록 하는 날이 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잊히길 바라면서도 이어져 있으면 좋겠다.
무엇이라고 확정 지을 수 없는 이 감정이 진짜 사랑인 것 같다. 고마웠고, 미안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