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사로운 인간사보다, 그 아래 숨겨진 인간의 본성에 끌렸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닌, 그 너머에 흐르는 우주의 구조와 진리,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선택했다. 어떤 이에게 이 선택은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마치 동굴 속으로 숨어드는 것처럼.
하지만 내게는 정반대였다. 바깥의 세계야말로 플라톤이 말한 그림자에 불과했고, 오히려 책과 사유로 가득한 내 동굴 안에서 나는 진정한 실재를 만났다.
나는 내 생각, 감정, 깨달음을 하나의 구조로 엮었다. 게슈탈트. 부분의 합이 아닌, 나만의 전체상. 그 구조는 아름다웠다. 완벽하게 닫힌 나만의 세계. 하지만 동시에, 외부와 단절된 언어, 닿지 않는 말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 안에 머무는 한, 나는 고요했지만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을 하나 열었다. 완성된 게슈탈트를 세상에 건네는 문. 그건 이전처럼 단순한 전달이 아니었다. 명확하게 쓰되, 여백을 남기고, 사유를 유도하는 말의 결을 설계하는 것. 오롯한 나의 결을 건네는 것. 그때 나는 알았다. 진짜 말의 힘은 내 구조를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타인의 게슈탈트를 흔들 수 있을 때 시작된다는 걸.
동굴 속에는 무한한 우주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나는 그 문을 열고 진리의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우며 존재를 일깨우는 순간, 나는 비로소 완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