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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nt kim Feb 13. 2024

돈이 없을 때 아프지 않아서 고마워

그 대신 더 많은 사랑을 줄게!


일 년에 한 번 정기 검진은 필수!


유일한 공주 야옹이 여름이는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운 길생활의 고됨을 몸에 간직한 것인지 잇몸이 굉장히 약하다. 우리가 처음에 병원을 데려갔을 때도 이가 많이 빠져서 없었다. 이로 오도독 씹어먹어야 하는 딱딱하거나 큰 간식을 통째로 삼킬 수밖에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가 빠지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전발치만은 피해야 한다. 남은 이라도 건강하게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양치질을 잘해야 하고 컨디션 관리도 잘해주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 스스로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지만 우리 집 냥이들은 정기 검진을 꼬박꼬박 받아야 한다. 나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유산균도 먹이고 오메가 쓰리도 먹인다.







여름이가 다섯 살 정도가 되었을 때 눈 가까이에 있는 이마 쪽에 제법 크고 물렁한 혹이 생겼다. 병원에 가서 혹의 형태가 나빠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혹이 갑자기 커진 상태였기 때문에 미루지 않고 곧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 당일, 수술이 가능한 컨디션인지 피를 뽑아서 확인을 하고 동시에 건강검진도 진행했다. 다른 건강지표들은 상당히 양호해서 다행히도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여름이 얼굴 크기에 비해 혹이 너무 크고 하필이면 살이 많지 않은 이마에 난 혹이라 눈모양이나 얼굴형태 변형이 있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수술 후에 여름이가 거울을 보고 얼굴이 찌그러졌다고 우울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무해한 혹일 수도 있다는 ‘혹시나’에 기대는 것은 너무 큰 도박이었다. 제거하지 않는다면 혹의 크기는 계속해서 커질 것이고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에는 암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제거해야만 했다. 우리 여름이를 오래 봐오신 선생님께서 공주님 얼굴이 찌그러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제거 수술을 해주셨다. 덕분에 원래의 여름이 얼굴이 되어 눈도 잘 깜빡거리고 생활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아서 안심했다. 이제는 하나만 신경 쓰면 된다. 떼어낸 혹으로 조직검사를 진행하는 것.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2주간의 시간을 기다리며 부디 아무 일이 아니기를 바라고 바랐다. 감사하게도 암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언제든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혹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눈여겨보기로 했다. 이 이후로는 수시로 몸을 수색하듯 쓰다듬으며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은지 챙겨보고 있다. 다소 거칠 수 있는 손길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받는 기분에 휩싸여 행복해지는 귀여운 고양이들이다.






우울증으로 인해 2년간을 쉬어가는 시간이 생기며 긴축재정에 돌입하게 되었다. 고양이들에게 쏟을 수 있는 돈도 한정적으로 되었다. 어쩔 수 없이 2년간 정기 검진도 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여름이의 새끼들도 다섯 살이 넘었으니 정기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큰 일이었다.





다행히도 돈이 없는 시기에 고양이들은 짧은 설사나 가벼운 눈병 정도만 치르며 비교적 무탈하게 지나가 주었다. 심지어 이제 막 어린이 냥이가 된 솜솜이는 얼마나 건강체질인지 예삐와 간식창고를 동반 습격하여 밤새도록 간식파티를 했던 딱 한 번을 제하고는 건강상의 문제로 병원을 간 적이 없다. 작년까지는 ‘막내였던’ 아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꼬리나 뒷다리 털을 심하게 뜯어 기어코 피를 본다. 솜솜이를 품기로 하고 가장 먼저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역시나 처음에 아리는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몇 주간 우울해하고 솜솜이 엄마가 된 우리를 멀리서만 지켜보기만 했다. 일부러 새벽이나 아침 일찍 일어나 우뚝 앉아있는 아리에게 다가가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엄청난 사랑을 쏟았다. 이 마음이 전해져서 솜솜이가 괴롭힐 때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쳤고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으면 “꽤액-”하고 일부러 더 큰 소리를 내어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한걸음 어른스러워져 단단해진 아리는 더 이상 문제행동을 하지 않는다.



고양이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쓸데없이 바쁘게 살며 불안정함을 자초했던 작년 상반기까지는 고양이들도 우왕좌왕, 마음 둘 곳을 잃고 곁을 맴돌기만 하며 칭얼거렸다. 서로 나의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기까지 했다. 특히 감정적 유착이 심했던 여름이는 일상에서의 미묘한 불완전함을 느끼고 불안장애가 생겼다. 자신의 등을 물어뜯고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며칠 동안 밤만 되면 이 모습이 반복되어 고양이 치매 증상을 의심하고 모든 커뮤니티를 탈탈 털었다. 사람엄마와 감정유대가 잘 되는 고양이들은 불안함마저도 옮겨 가진다고 한다. 고양이들도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올 수 있기에 감정 케어를 잘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굳이 덜어주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었는데, 나의 우울감이 심한 날에는 밤새도록 붙어서 그루밍을 해주는 여름이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워커홀릭이라고 말할 정도로 하루종일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개인적인 시간은 일체 보내지 않은 채 7년을 보냈다. 1인기업일수록 더더욱 업무시간을 설정하고 지켜야 하는데 업무와 관련된 생각들을 놓지 않고 하나라도 더 시행하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인 줄 알았다. 언제든 같이 있을 수 있다고 믿고 고양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희생시킨 나의 큰 잘못으로 여름이 마음이 아파졌다.





 


우선순위를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성과나 미래에 두지 않고 바로 옆에서 나를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는 고양이들로 두었다. P의 성향이 짙은 무계획적인 내가 조금 더 빠른 하루를 시작하고 시간을 알뜰하게 잘 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나의 고양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사랑하기 위해서 일하는 시간을 정해두고 집중해서 빠르게 마무리하기. 그 외의 시간에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고양이들을 낮잠을 재우고 그 시간에 내 생활도 돌보는 것. 고양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요가 매트를 펴놓고 함께 요가를 하는 것.


그러다 보니 삶의 질이 조금은 나아졌다.



알고 보면 나를 치유해 주려고 네 발로 콩콩콩콩 뛰어온 여름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려고 고양이들이 찾아왔나 보다.

그래서 일곱 마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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