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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nt kim Feb 16. 2024

다묘가정이라서 항상 미안해

외동냥이로 자랐다면 한 집안의 예쁨과 사랑을 독차지했을 텐데.

예삐가 심통이 났다.

요즘 예삐가 심통이 났다. 솜솜이가 자라서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하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역을 내어놓아야 하는 신세가 된 박힌 돌 예삐.


겨우 한 번 입혀본 수면 잠옷!






아리는 엄마가 길냥이에게 밥을 주는 장소에서 밥을 먹으러 오던 삼색이의 아들이었다. 삼색이는 경계가 심해서 사람의 손을 타지는 않았지만 우리 엄마를 조금은 믿었는지 1개월가량이 된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밥을 먹는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엄마는 밥을 먹는 귀여운 아기들의 상태가 그리 양호하지는 않은 것을 알고부터는 매일 걱정을 했다. 그중 치즈냥이는 눈에 눈곱이 잔뜩 끼고 코까지 모두 막혀버려서 살아가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사람 냄새가 아기에게 묻지 않도록 손에 장갑을 끼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조심히 닦여놓았더니 눈을 뜬 치즈냥이가 “야옹-”하고 소리 내며 엄마 발 뒤를 쫓아다녔다. 엄마는 고마운 마음은 잘 알았으니 앞으로는 엄마냥이랑 잘 살라고 아기냥이에게 말해주었다. 그날 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밤새 쏟아진 비에 퉁퉁 불어버렸을 사료를 바꿔주기 위해 길냥이들 급식소로 향했는데 어제 얼굴을 살뜰히 닦여놓았던 치즈냥이가 물웅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죽었나 싶어서 들어 올렸더니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힘이 모두 빠져있어서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주위를 돌아보니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가기를 바라는 듯 지켜보고 있는 삼색이가 있었다. 자신의 아기를 살려주기 바라는 마음이 읽혀서 모르는 척할 수 없었던 엄마는 나와 동생까지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바뀌어버린 낯선 공기를 느낀 것인지 “애-”하고 얕게 울었다. 이름을 붙여주면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 붙어있을까 해서 차로 이동하는 사이에 이름을 만들었다.



병아리같이 노랗고 작은 우리 ‘아리’



한여름에도 추워서 양말옷입고 잠든 아리



새끼고양이가 갈비뼈가 모두 보일 정도로 작아서 아무것도 해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수의사선생님들께서 애를 많이 써주셨다. 35도까지 떨어진 아기의 체온을 높이기 위해서 핫팩으로 감싼 수건에 돌돌 말아 계속해서 몸을 비벼주었다. 그리고 수시로 온도체크를 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점점 체온이 높아졌다. 탈수증상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피하수액도 놓아주셨다.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따뜻하게 데운 초유를 먹이려고 했지만 먹을 힘조차 없었던 치즈냥이는 입을 절대로 벌리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먹여야 살릴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머리에 떠올리며 아기의 입을 적시듯이 촉촉하게 초유를 발라두었다. 그리고 먹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칠 때 조금이라도 입을 벌리면 우유 한 방울을 톡 떨어뜨렸다. 워낙 먹은 것이 없던 몸이라서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와 졸려했다. 잠이 보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조금이라도 푹 자게끔 두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누어서 1시간에서 1시간 반가량의 텀을 두고 인공 수유를 반복했다. 때마침 일이 그리 바쁘진 않아서 엄마와 동생, 내가 번갈아가며 수유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우리 아리는 살아날 운명이었다.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좋은 시기도 만났다. 그렇게 지독스럽게 수유를 이어가면서 병원을 다닌 지 3일 정도가 되자 아리가 약간의 기운을 차리고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큰 고비는 넘겼다.



쌍둥이들, 콩이 배찌



일주일이 지나자 우리를 엄마로 생각하고 같이 있자고 밤새 울기 시작했고 격리해 둔 방에 들어가면 야옹하면서 따라다니기 바빴다. 이 때는 살아만 준다면 좋은 가정을 찾아줄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아기’라고 생각지 않고 애써 정을 덜 주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번씩은 같이 잘 껄 3개월도 안된 아기에게 너무 매몰차게 대했다고 후회한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던 아리는 어떻게 해서든 격리해 둔 방을 뚫고 나왔고 갑자기 합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 다섯 냥이들이 잘 받아주었다. 그러나 아리가 5~6개월가량 접어들자 원래도 겁이 많아서 예민한 심바가 급격하게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심바로부터 아리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예삐가 몸으로 막아서며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길생활도 해본 적이 없던 아이들이 길냥이들 싸움을 보고 배운 것 마냥 피를 철철 흘리며 싸우기 시작했다. 커진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배찌까지 심바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예삐의 얼굴에 손톱자국이 크게 생긴 이후 고양이들의 개인공간을 넓혀주기 위해 독립을 했고 집을 반으로 가로질러 심바구역과 나머지 아이들의 구역으로 나누었다. 심바구역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고양이는 콩이와 여름이가 있다. 콩이는 성격이 순해서 심바에게 얻어맞으면서도 같이 자주는 유일한 친구이다.






어느새 옆자리를 차지한 솜솜이


그리고 작년에 내가 사기꾼에게 속아 막냇동생을 억지로 밀어 넣어 다니게 만들었던 지방의 캠핑장에서 솜솜이가 발견되었다. 눈을 갓 떠서 파란 눈을 가진 치즈냥이 었다. 앞서 말했던 사기꾼은 캠핑장을 운영하면서도 자연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은 되어있지 않아서 자신의 캠핑장이라고 일컫는 장소에서 고양이가 발견되면 뜰채로 고양이를 잡아다가 다른 지역에 버리고 왔다. 그래서 이 새끼 고양이를 그곳에 둘 순 없어서 다시 임보를 하게 되었다. 절대로 일곱 마리를 키우는 일은 없다고 뻥뻥 소리쳤다. 솜솜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넘어간 어느 날 밤 스스로 우리 동생의 침대까지 기어 올라가 머리맡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보내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니 가여워졌다.

아직까지는 인공수유를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출장을 가야 했던 어느 날, 엄마에게 솜솜이를 맡겼다. 솜솜이가 우리를 찾는 소리를 내었다고 하는 것을 듣고 우리가 키워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솜솜이까지 합류하게 되어 일곱 냥 이가 되었다. 아리가 아기였을 때는 항상 마음을 졸였는데 솜솜이를 키우면서는 걱정하지 않고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혼을 내기까지 하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아직까지 크게 아픈 일이 없어서 정말 고맙지만 다른 고양이들과 다르게 아무것이나 다 주워 먹으니까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아기이기 때문에 솜솜이를 신경 쓰게 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나머지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시간이 줄어들었다. 우리 집 대장냥이 예삐는 아무래도 이 점이 못마땅한 것 같다. 엄마들이 모두 굴러들어 온 돌 솜솜이만 예뻐하는 것처럼 느끼지 않을까.



잠잘 때 심바 이름을 부르면, 기지개를 쭈욱!


어느 가정에 가서든 예쁨 받았을 우리 집 일곱냥이들인데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요즘에는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각자만의 방식을 찾았다.

심바는 잠자리에 들기 전 충분히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면 되고 콩이는 글 쓰는 시간에 붙어 앉아서 눈을 마주치고 등을 쓸어주면서 궁둥이를 토닥거려 주면 된다. 예삐는 오후 4시 또는 7시에 큰 방 침대에 누워 “이리로 와”라고 반갑게 말해주면 내 옆구리에 콕 박혀 배를 까고 눕는다. 그때 배를 열심히 조물조물해 주면 숙면을 취한다. 배찌는 자신만의 패턴이 있다. 숙면을 취하고 난 뒤에 일어나 “앙 “하고 작게 소리 내면, 언제든 벌떡 일어나 안아주고 얼굴을 부비부비해주면 나중에 소파에 가서 배를 까고 누워있다. 여름이는 “여름아-”라고 작게 속삭이듯 부르면 “엄망”하고 답하며 비밀스럽게 뛰어온다. 그때 품에 안고 얼굴을 비비면서 뽀뽀해 주면 아주 좋아한다. 아리는 솜솜이가 자는 시간에 방문을 닫아두고 장난감놀이 시간을 가지기 한 번, 새벽에 일어나서 뽀뽀타임 10분간 한 번 이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곤 한다. 솜솜이는 아직까지는 뭐니 뭐니 해도 노는 시간이 최고다! 충분히 놀아주면 어디서든 행복한 꿈나라로 직행이다.


놀이천으로 처음 놀고 기절한 솜솜이 이 때까지는 너무 아기라서 내복을 입었는데.


여름이와 네 쌍둥이 냥이들을 공동육아할 때는 고양이를 잘 몰라서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고 아리가 왔을 때는 나도, 아리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 여기서만 끝이 났다면 스스로 고양이들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갈 뻔하였다.


천방지축 솜솜이는 ‘형아냥이들과 이모냥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세요!’하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솜솜이도 참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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