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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유방암이라고? 내가?

마흔 살의 어느 날, 유방암 환자가 되다.

by 타샤 용석경
진단 D-5 (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일요일 저녁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는데, 순간 가슴에 멍울이 만져진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조금 딱딱하고 아프다.

‘어랏, 뭐지?’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평소 워낙에 건강한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진단 D-4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항상 반복되는 워킹맘의 정신없는 월요일. 아침 회의와 밀린 업무 메일들을 확인했다. 무언가 찜찜한 마음에 점심시간에 집 근처 여성병원에 전화했다. 이럴 수가. 초음파 검사 예약이 한 달 대기란다. 나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유방 초음파를 받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유방 멍울은 증상이 있을 때 바로 진료를 보는 게 좋다며 다른 데라도 얼른 예약을 잡으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병원에 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어느 병원으로 가야 되나요? 산부인과? 외과?"


정답은 유방외과!

‘에? 그런 과도 있었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방외과’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실은 집 앞 대형 마트에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유방외과 광고를 진단 후에야 발견했다. 그전에도 있었겠지만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겠지.

다행히 다음날 오후 4시 반에 예약이 가능하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들에게 멍울에 대해 이야기하니, 아프면 암이 아니니까 오버하지 말라며 쿠사리를 준다. 멍울 한두 개 정도는 다들 있다며.


진단 D-3 (2020년 10월 13일 화요일)

검사 때문에 일찍 퇴근해야 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갑자기 생기는 급한 업무들. 평소라면 아마도 예약을 미루고 미련하게 일을 했을 텐데. 그날따라 왠지 컴퓨터를 끄고 냅다 병원으로 향했다.

접수 후 유방 엑스레이부터 찍었다. 가슴이 작아서 그런지 고통스럽다. 당기기도 힘들 정도로 빈약한 사이즈. 옆에서 도와주시는 간호사분이 더 힘들어 보인다. 당기고 누르고, 촬영하고. 엑스레이 촬영 결과 멍울이 보인다고 초음파를 하자고 한다.

‘찰칵찰칵’

잠시 뒤 초음파 사진을 보며 설명을 하는 의사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초음파상 크기는 2.3센티미터. 모양이 너무 좋지 않아 바로 조직 검사를 하자고 한다.

“조직검사요? 물혹이 아니고요?”

내가 아는 그 조직검사? 드라마에서나 보아왔던 그것? 그렇게 삽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조직검사를 하게 됐다. 그 와중에도 마취라는 말에 겁에 질린 눈빛으로 엄청나게 떨면서 간호사 선생님께 물었다.

“이거 안 아파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지만, 당시에는 내가 암환자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니 심각한 조직검사의 순간에도 마취 주사가 더 무서웠다.

탕- 탕-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바로 유방암 진단에 많이 쓰이는 총검사였다.)

결과는 빠르면 금요일. 수납을 기다리는데 간호사선생님이 유방암 책자를 내 손에 쥐여 준다.

'어? 이걸 왜 나한테 주지? 난 그냥 검사만 한 건대.'

그제야 내가 처한 상황이 인식되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왈칵 눈물이 났다. 차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래도 단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별일 아닐 거라며, 다 괜찮을 거라며 다시 태연하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불과 한 시간 사이에 나의 인생이 뒤바뀌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진단 D-1 (2020년 10월 15일 목요일)

회사에서는 여전히 정신이 없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다급한 업무 속에 스트레스는 쌓이고, 휴대폰 진동이 울렸는데 받지 못했다. 부재중 통화에 찍힌 번호는 유방외과 병원. 이미 오후 6시 5분. 저녁 8시 어둑어둑한 퇴근길, 주차장으로 가는데 놓친 전화가 계속 생각난다.

‘빨라야 금요일이라고 했는데, 왜 굳이 5시 50분에 전화를?’

불안함이 커진다.


진단 D-0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혹시 모를 불안함에 아침 일찍 휴가를 냈다. 전날 급하게 마무리한 업무로 분명 아침부터 시끄럽겠지만, 생전 느껴보지 못한 불안함이 나를 잡아끌었다. 8시 50분 병원에 연락하니 결과가 좋지 않아 예약 없이 바로 내원을 하라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왜 가족과 같이 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조직검사 결과 암입니다. 당황스럽고 힘드시겠지만, 치료받으실 병원을 고르면 첫 예약은 도와 드릴게요."

고통스러운 소식을 전달하는 게 몹시 힘들고 난처한 듯, 나보다 더 긴장한 표정의 의사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야기한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암이라고? 가족력도 없고, 건강검진도 꼬박꼬박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고, 1년씩 모유 수유도 하고, 체중은 20년 전부터 똑같고, 매일 엄마와 영양사가 관리해주는 건강한 밥을 먹었는데, 도대체 내가 왜?

병원을 선택하라고? 어디를? 누구를? 내가 어떻게 알고?

순식간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생각들.


정작 그 앞에서는 놀라지 않은 척, 태연하게 1년 전 시어머님이 유방암 진단을 받으셔서 절차는 알고 있고, 병원을 정해서 연락을 하겠다고 쿨하게 말하고 병원을 나섰다.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절친 HJ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담히 전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터지는 울음. 서로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전 근무시간에는 연락을 잘 하지 않는 남편이 계속 전화를 하는데 받을 수가 없었다. 잠잠하던 호수에 돌이 던져진 것처럼, 돌아오는 길 나의 머리는 온통 새하얘졌다. 집에는 엄마가 아이들을 돌보러 와계시고, 오후에는 두 달을 대기한 딸아이의 성장 클리닉 예약이 잡혀 있다. 아직은 암환자이기 이전에 엄마니까 정신을 차려야 했다.


흐르는 눈물을 참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평소처럼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했다. 쿵닥쿵닥. 몸과 마음이 분리된 듯 몸은 태연하게 일상인 척하는데, 마음은 온통 어느 병원에 가야하나 고민에 사로잡혔다. 딱 1년 전 시어머님의 유방암 진단으로 가족들과 같은 고민을 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어 결정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 일시에 머릿속을 파고들면서 마음이 휘청거렸다.


통원 횟수가 많으니 교통이 편해야 하고, 혹시나 기수가 높아 치료가 복잡해질 수 있으니 대형 병원이면 좋다. 최초 진단을 받은 곳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이 협력 병원이라는데 집에서는 교통이 너무 좋지 않다. 서울대는 더 멀고, 분당서울대병원은 분원인데 괜찮을까.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본다. 시어머니는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와 외에도 검사와 진료를 위해 수시로 병원에 가셔야 했다. 우선 집에서 통원이 용이한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예약을 부탁했다. 진료 일정은 일주일 뒤인 10월 23일.


암 진단을 받은 날 오후 1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산정 특례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카카오톡이 왔다. 끊임없이 부인하고 싶었던 사실이 명확해졌다.


암환자가 되었다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삶이 바뀌지는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일상은 흘러갔다. 딸아이 진료를 보면서, HJ와 함께 정신없이 다른 병원 예약을 알아보았다. 혼란 그 자체. 이유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온다. 억울함, 두려움, 서러움, 당황스러움.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병원 예약 전화는 항상 대기 중이다. 10분을 기다려도 통화가 안 되고, 결국은 콜백을 남기라고 하고는 ‘툭’ 끊어졌다. 친구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예약을 마쳤다.


평소에는 둔감한 남편이 무슨 느낌이 있었는지 계속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마주한 남편. 담담하게 말을 꺼내려 했는데 속이 타들어 간 정신없는 하루 때문인지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다. 암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남편에게 안겨 엉엉 울었다.


1년 전 이맘 때 어머니가 아팠고, 이제 막 치료를 마쳤는데 다시 아내가 아픈 남편.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던 두 여자가 같은 병을 겪게 된 이 상황을 어떻게 느꼈을지. 나는 아직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당황스러움, 놀람, 미안함, 무기력함, 죄책감.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아이들을 쳐다만 보아도 눈물이 나왔다. 아이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참고 또 참았지만, 눈물은 불쑥불쑥 터져 나왔다. 이렇게 순식간에 ‘암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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