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리품으로 수류탄 2개를 획득하다.
전날 밤, 수술에 대한 긴장과 다인실의 소음으로 밤새 뒤척거렸다. 자정에는 혈압 체크, 새벽 5시에는 링거 때문에 다시 일어나야 했다. 낯선 잠자리에 긴장감과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이를 느낄 새도 없이 아침 7시 이송 요원분이 이름을 부른다. 내 발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이송 베드에 누우려니 기분이 참 묘했다. 마음은 수술장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누워서 보는 세상은 서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냥 천천히 걸어가는 건데도, 천장만 보고 있노라니 엄청나게 빨리 가는 것 같다. 나의 몸을 온전히 내어 맡긴 채로 빙글빙글. 처음에는 조금 무섭고 긴장이 됐는데, 순간 과거의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중국 만리장성에서 내리막길에 설치된 불법 썰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20대의 나에게는 재밌고 스릴 넘치기만 했다. 즐거운 기억이 오버랩 되면서 긴장이 풀렸다. 봅슬레이 선수들도 이런 기분일까 싶다.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펴는 나와 달리, 이동하는 내내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하는 남편.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아서 그런지 나보다도 더 긴장한 게 느껴졌다.
7시 30분, 핵의학실에서 림프절에 위치 표시 주사를 맞고 대망의 수술장으로 이동했다. 수술장으로 들어가기 전 마취 휴식실에서 약 복용과 관련된 사항을 체크하고, 머리에 비닐까지 쓰니 진짜 수술하는 느낌이 훅 느껴진다. 드디어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 수술실로 이동!
헛, 그런데 기대했던 중후하고 비장한 느낌과는 왠지 거리가 멀다. 수술 공장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면서, 방마다 번호가 붙어 있다. 그 와중에 정신없이 눈을 돌려 확인한 가장 높은 숫자는 35번. 헉, 35명이 동시에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의미? 수술장 입구에서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나의 수술방은 28번. 이미 준비 중인 의료진만 해도 6명이나 된다. 눈이 부실 정도의 밝은 조명이 곳곳에 보인다.
보통 마취 선생님의 ‘하나, 둘~’ 멘트와 동시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수술이 끝나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 단계까지 버티지 못했다. 전날 잠을 설쳐서인지 마취 전 안정제를 맞으면서 동시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설마 수술 중에 코를 골지는 않았을는지.
정신이 들면서 눈을 뜨니 회복실. 수면내시경을 마쳤을 때와 비슷했지만, 왼쪽 가슴부터 겨드랑이까지 뻐근하고 묵직한 느낌이 몰려왔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전신 마취에서 빨리 깨고, 폐 기능 손상을 막으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심호흡. 수술 직후라 욱신거리고, 졸리고, 정신도 없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수술장에 들어갈 때는 봅슬레이 타령을 했건만, 돌아오는 길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병실에 들어서니 마음 졸이며 기다렸을 남편이 후다닥 달려왔다. 그의 뜀박질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벤트인데, 놀릴 수가 없으니 아쉽다.
비스듬히 앉아서 정신없이 계속 심호흡했다. 졸음은 참을 만했는데 수술실이 추웠는지 발이 시려서 찜질팩을 부탁해서 발을 감쌌다. 수술 부위 통증 자체는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 덜한 것 같았는데 느낌이 좀 달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수술 직후에는 마취 기운이 남아 있어서 통증을 덜 느끼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 무뚝뚝한 남편은 표현도 못 하고 연실 내 손을 주무르며,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고생했어. 이만해서 다행이야.”
수술 후 6시간 금식. 보통 링거를 맞으면 배가 안 고프다던데 난 왜 이렇게 허기가 몰려오는지. 저녁으로 나온 죽식을 깨끗이 싹 비웠다. 배가 안 고프니 살만해지나 싶었는데, 서서히 통증이 올라왔다. 먹는 진통제 외에도, 통증이 심하면 무통 주사도 맞을 수 있다. 가끔 약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아프면 이야기하고 처치를 받아서 몸과 마음을 덜 힘들게 하기를 추천한다. 수술만으로도 우리 몸은 이미 너무 힘들고 지쳐있으니까.
저녁 8시경 회신을 오신 교수님, 아침 8시부터 12시간 내내 수술로 힘드실 텐데도 에너지 가득한 목소리로 선물을 주셨다.
“림프절 전이 없고 깨끗해요! 최대한 이쁘게 해주려고 노력했는데 가슴에 지방이 너~~무 없어서 좀.”
“부분 절제에 림프 전이 없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림프절 전이 여부는 수술실에서 열어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는 터라 내심 걱정했는데, 마음이 놓였다. 가슴 작은 거야 교수님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괜찮다. 기쁜 마음과는 달리 수술 당일 통증과 소음에 뒤척거리며 연이틀 잠을 설쳤다.
부분절제여도 생살을 짼 거니 어찌 안 아플까. 진단을 받고 5개월간 마음 졸이며 가슴에 품고 있던 암순이와 영영 작별을 한 거니, 이별의 아픔이라 생각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긴 치료의 첫 단계를 잘 마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픔을 감싸본다.
퇴원, 전리품은 수류탄 2개
부분 절제로 입원 기간은 2박 3일. 수술 바로 다음 날 퇴원을 했다. 수술한 왼팔을 베개에 올리고 잤는데도, 마취를 한 듯 얼얼하고 욱신거렸다. 얼굴과 몸은 아이를 났을 때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그래도 다행히 혼자 걷고, 움직이는 건 가능했다.
가슴보다 겨드랑이 쪽 통증이 너무 심해서 여쭤보니, 림프절을 떼면서 생긴 상처이고, 겨드랑이 살이 연하다 보니 더 아플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의 건강한 위는 배고픔을 호소했고, 강한 생존 본능으로 아침 식판도 깨끗이 비웠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병원 밥에서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먹어야 힘을 낼 수 있으니까.
보험과 요양병원 입원 관련 서류는 미리 요청했더니 퇴원 수속이 좀 더 빨랐다. 오전 10시경 수납을 하고 짐을 챙겼다. 부분절제 통합병동 5인실 2박 3일 입원비는 97만 원. 중증 산정 특례 혜택으로 예상보다 적게 나온 치료비. 월급쟁이라 매달 떼어 가는 건강보험료가 항상 아깝더니만, 정작 아파보니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퇴원 마지막 코스 배액관 관리 배우기. 일명 피 주머니라 불리지만 실제 피는 아니고, 수술 후 배액을 바깥으로 배출하기 위해 몸에 주렁주렁 달아 놓는 통이다. 빨간 피 같은 액체가 든 통이 몸에 매달려 있으니 보기에는 안쓰럽고 무서운데, 막상 해보면 불편한 거 외에는 크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다.
배액관도 모양이 다양한데, 나는 멋진 수류탄 모양의 배액관 두 개를 전리품으로 획득했다. 하하! 다만 남들 보기가 민망해서 남방으로 살짝 가렸다. 매일 배액관을 비우고, 기록지에 양을 체크하고, 입구를 소독해야 한다. 통 안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요령이 필요하다. 퇴원 후 집으로 갔으면? 아마도 피만 보면 기겁하는 남편을 타박하며, 혼자 아픈 왼팔을 들고 끙끙거리며 씨름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역시 요양병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와서 바깥바람을 쐬니 다시 일반인이 된 듯하다. 다만 걸리적거리는 배액관과 팔과 가슴의 욱신거림이 수술로 달라진 내 몸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래도 이렇게 수술을 잘 마치고, 암순이와 작별하고, 두 발로 걷고, 뺨으로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음이 감사하다.
* 위 글은 21년 유방암 치료를 받으면서 쓴 글을 토대로 한
책 <유방암이지만 괜찮아>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