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진단 후 검사 결과를 듣기까지 3주.
3년 차인 지금까지를 통틀어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시간이다. 처음에는 내가 유방암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그 뒤에는 제발 다른 곳으로 전이만 없었으면 하고 마음을 졸였다. 원래는 무디기가 그지없는데, 이 3주 동안은 온몸이 예민해졌다. 어디가 조금만 불편해도 본능적으로 전이가 아닌가 걱정이 떠올랐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마음을 수없이 다 잡아봤지만, 작은 몸의 느낌에도 마음은 흐트러졌다. 뼈에서 소리가 나면 뼈전이가 아닌지, 속이 좀 이상하면 장기 전이가 아닌지, 초음파 검사에서는 놓친 더 큰 암덩이가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널뛰기를 했다.
돌이켜보면 진단을 받고 겉으로는 씩씩한 척했지만, 한 달 가까이 억울함, 분노, 서러움, 불안함, 걱정, 두려움이 오락가락했다. 정신차리고 힘을 내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눈물이 불쑥 터져 나왔다. 아직 어린 두 아이가 해맑게 웃으면 노는 걸 볼 때, 내 팔을 붙잡고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볼 때, 때로는 홀로 멍하니 앉아 있을 때도. 마치 나와 연결된 모든 것들이 일시에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더 길게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내 몸을 아끼고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모든 게 다 멈추어야 할 이유는 없는데. 쉽게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그때 그나마 흔들리던 나를 잡아준 것 중 하나는 걱정을 미리 당겨서 하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도 재발, 전이에 대한 두려움은 이성적으로는 덮어지지 않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더욱이 암 진단에 이은 휴직, 죽음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인 문제 등 세상 걱정거리는 모두 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걱정했던 것들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았고, 걱정을 곱빼기로 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걱정과 두려움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긴 한데~’라고 다시 차분하게 생각하도록 자신을 다독이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진단 후 접한 명상에서도 부정적인 감정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암 진단 이전에도 좋아했던 말 -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 외부에서 주어진 문제나 환경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유방암 환자가 된 건 아무리 싫고 억울해도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
나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유방암 환자로서 어떻게 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가령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거나,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열심히 병원 진료 받는 것 등.
이즈음 읽은 책 <숨결이 바람 될 때>.
암진단을 받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의사였던 저자에게서, 삶에 대한 마음과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이 남았는지 명확하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할 것이다. 석 달이라면 나는 가족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내리라. 1년이 남았다면 늘 쓰고 싶었던 책을 쓰리라. 10년이라면 병원으로 복귀하여 환자들을 치료할 것이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나는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내게 생각지 못한 시련이 주어졌지만, 이후 시간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든 죽음을 맞게 된다. 단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뿐. 그 시점이 남들보다 조금 이르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