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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D-7.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암밍아웃

엄마는 언제나 최고야!

by 타샤 용석경

진단받던 그 순간부터 마음 한편에서 항상 놓지 못했던 생각.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지?’


처음에는 항암만 아니면 적당히 둘러대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 후 체력 저하, 피로감, 팔 사용을 주의해야 하고,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예민해지면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있을 테니. 예측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혼자 삭여낼 자신이 없었다. 가족과의 대화법이나 자녀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았다. 고백하고 바로 수술 때문에 사라지면 아이들이 놀랄까 봐 일주일 전을 디데이로 잡았다.


붙어 있으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장난꾸러기 초등 남매.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나의 말에 두 녀석의 호기심 어린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또 장난을 치는 건가 반신반의하는 눈빛.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남편에게 배턴을 넘겼다. 갑작스러운 나의 배턴터치에 그도 당황했다.


“얘들아, 엄마가 가슴이 많이 아파. 지금도 치료받고 있는데 곧 수술할 거고, 열흘 정도 입원을 해야 해. 앞으로도 엄마가 회사를 안 가고 집에 있는 건 치료를 위해서야. 수술 후에는 엄마가 힘들 거니까 우리가 다 같이 도와야 해. 그럴 수 있지?”


다행히도 생각보다 담담한 아이들의 반응.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런 상황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한 엄마, 아프지 않은 엄마였다면 좋았을 텐데.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냥 넘어진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한없이 약해졌다. 한동안 잊고 있던 원망, 아쉬움이 떠오른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연습한 것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수술을 할 거고, 이후에 어떻게 치료하는지 결정이 되면 알려줄게. 지금은 엄마가 슈퍼우먼 같지만, 수술 후에는 잘 쉬어야 회복을 빨리할 수 있어. 너희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잘 도와줄 수 있지? 엄마는 아프지만 아빠도 있고 할머니도 너희들을 돌봐주시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야.”




자료에서 본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담아내려고 노력했지만, 한 가지는 말하지 못했다. ‘암’이라고. 어른들에게도 두려운 단어인데, 굳이 아이들에게 과도한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눈치가 빨랐다면 집안 곳곳에 있는 흔적들, 유방암 책, 브로슈어, 전화 통화 등을 보고 알았을 수도 있는데, 마냥 해맑은 아이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긴장했던 고백을 마치고 손을 모아서 다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다행히 수월하게 암밍아웃을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눈치가 없는 건 나였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는데 둘째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근데 엄마 어디가 아픈 거야?”

“응, 엄마 가슴에 나쁜 세균이 생겼데.”

“아~ 나쁜 세균. 왜 우리 엄마 몸에 생긴 거야!”

“의사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고, 엄마도 열심히 노력하면 치료할 수 있어.”

“그래서 엄마가 1일 1운동하고, 토마토도 먹는 거구나?”


아마도 아이도 당황스러워서 다 표현하지 못했을 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나 보다. 맨날 엄마는 아빠보다도 힘이 세다고 하던 아이들인데, 그런 엄마가 아프다니 놀라고 당황스러웠을 텐데. 이렇게 의젓하게 들어주고 궁금한 걸 물어주는 게 기특하고 대견하다.


항상 내가 아이들을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나에게 위로와 힘이 된다. 때로는 속 깊은 말로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기도 한다. 실은 한참 후 표준치료를 마친 뒤 딸아이가 나에게 고백했다. 나의 병에 대해 듣고 엄마가 죽는 건 아닐까 무서워서 혼자 책상에 엎드려 울었었다고. 마음이 아프지만 잘 견뎌 준 아이가 고맙다.


아이가 있는 유방암 환우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나 또한 머리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친한 언니의 조언.



엄마는 그냥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야.
아파도, 아프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널 사랑해.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네가 건강해서 오래오래 아이들 곁에서 힘이 되어주면 돼!
넌 아이들에게 최고의 엄마야.
엄마는 언제나 최고니까!


다시 건강한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기 위해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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