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통지서, 그리고 달콤한 휴가
요양병원에서 퇴원하며 언니들과 인사를 했다. 흔한 만남이나 헤어짐처럼 ‘우리 곧 다시 만나요!’라는 평범한 인사를 나눌 수 없는 아이러니함. 대신에 ‘회복 잘하시고 건강하세요!’라는 서로를 위한 덕담을 나누었다. 수술 전에는 겨울 느낌을 채 벗지 못했는데, 어느새 길가에는 벚꽃, 개나리꽃, 목련이 화사하다. 내 몸도 저렇게 얼른 회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술 후 첫 외래 진료, 수술도 그렇지만 혹시나 항암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실로 향했다. 선생님은 수술 부위보다 겨드랑이 림프 쪽을 주의 깊게 보셨다. 초음파로 꾸욱 누르는데 너무 아파서 눈을 질끈 감았다.
수술 결과는 2기 초반(2A), 수술 전 MRI 검사로는 1.4센티미터였지만, 실제 2.2센티미터. 진단시 MRI는 3.2센티미터로 1센티미터만 줄은 건가 싶지만, 애초에 3.2센티미터보다 더 컸을 가능성도 있다. 항상 진실은 수술실에 있고, 최종 암 타입과 병기도 수술시 뗀 조직으로 결정된다. 그러니 수술 전 MRI나 초음파 검사결과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초음파에서 크게 보였지만, 열어보니 암은 없어지고 허물만 남은 거라 완전관해가 된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MRI가 초음파보다 정확하지만 나처럼 암세포의 모양에 따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기도 한다.
수술시 암덩이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퍼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좀 더 넓은 범위로 절제를 하고 바로 조직 검사를 한다. 나의 경우, 암덩이 주변에 도넛처럼 1차, 2차 테두리를 절제했는데, 1차 테두리에서 암세포가 나왔다. 다행히 2차 테두리에서는 나오지 않아 재수술을 면했다. 만일 재수술을 했다면 마음이 또 한 번 흔들렸을 것 같다. 한 번도 힘든데 두 번이나 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통상 5~10퍼센트 정도 발생한다고 하니 이 또한 운이다. 선행 치료가 효과가 있는 경우 암세포가 작아지는데, 가장 좋은 건 그 상태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면서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부분으로 쪼개져서 줄어들면 마치 모래알처럼 흩뿌려서 흔적이 남는다는데 내가 그 케이스였던 것 같다.
놀란 마음을 쓸어안고 집으로 향했다. 엄마와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는 다르게 급 피로감이 몰려왔다. 일단 잠시 얼굴만 보고, 집으로 와서 두 시간 넘게 혼절하듯 쓰러져 잤다. 요양병원에서 혼자만의 공간도 좋았지만, 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익숙함과 편안함, 드디어 나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비록 싱크대와 화장실의 물때가 단번에 눈에 띄었지만 그러면 어떠랴. 남편 혼자 2주를 지낸 것 치고는 집 상태가 양호하다.
나름 청소도 해 놓고, 아예 어지르지를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이 그간 혼자 아침, 점심을 먹다가 마주 보고 함께 저녁을 먹으니 좋단다. 나도 화답하듯 드라마 보면서 혼밥을 하다가 우리 집에서 이렇게 같이 먹으니 좋다고 했다. 그런데 예리한 남편이 말한다.
“음. 왠지 드라마 보고 싶은 거 같은데.”
헉. 드라마를 다 보지 못한 걸 들킨 듯하다. 2주 만에 감격적인 첫 샤워도 하고, 나의 지정석인 식탁 벤치에서 글을 쓰노라니 일상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태어나서 첫 수술과 입원, 수술 후유증과 배액관으로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회복을 위해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누가 보면 여행 간 줄. 가족들은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고 오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무언가를 하면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인지 짬짬이 무언가를 하게 됐다. 일상에서 워킹맘이었다면 버거웠겠지만, 24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주어졌기에 자도 푹 자고 쉬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이런 가벼운 마음과 달리 통증은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지속되었다. 욱신거리다가 가끔 전기가 오는 것처럼 저렸다. 왼쪽 가슴이 전체적으로 단단하게 붓고 얼얼해서 손으로 만지거나 눌러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마치 충치 치료를 위해 마취를 한 것처럼. 한참 뒤 얼얼함이 풀리고 나서는 또 다른 느낌의 통증이 나타났다.
수술 부위 통증은 길게는 1년 이상도 간다고 하니, 그냥 조금씩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암순이가 강력했던 만큼, 이별의 상처도 큰 거로 생각해야지. 그래도 이제 단추 달린 셔츠가 아니라 헐렁한 후드티도 입을 수 있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자연스럽게 만세도 할 수 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게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보통 수술 2주 차 외래 진료 때 항암 여부가 결정되거나, 추가 검사를 진행한다. 나는 임상이라 조금 다른 일정으로 4주 차 때 엔도프레딕트 검사 결과로 항암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혈종과 교수님이 진즉부터 교육을 잘 해주신 덕에 ‘항암은 너무 젊어서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에 항암을 안 한 경우가 꽤 많다는 걸 알게 되니 스멀스멀 욕심이 생겼다. 혹시나 나도 패스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걱정한다고 혹은 기대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잊고 그 시간까지 즐겁게 보내야지!
문득, 지금의 내 상태가 휴가 나온 군인과 비슷한 듯 하다. 지금 만기 제대라면 딱 좋을 텐데.
암 진단 = 입영 통지서
진단 후 검사 = 신체검사
호르몬 양성, 허투 음성 = 육군(가장 머릿수가 많다.)
호르몬 음성, 허투 양성 = 해군/공군
삼중음성 = 해병대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 = 특수 훈련
치료 중 대기 시간 = 일반 훈련 및 휴가
표준치료 완료 = 만기 제대
표준치료 후 호르몬 치료 및 관리 = 예비군 및 민방위 (단, 평생 민방위)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시간이 약이다’
치료도, 군대도 그 시간을 잘 견디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니까.
집에 돌아와 신난 마음이 무한한 상상력 가동 중.
하여튼 그래서 오늘도 너무나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 이 글은 22년 출간된 책 <유방암이지만 괜찮아>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