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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Jan 02. 2024

암 치료 후 복직,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도 싶고, 안 하고도 싶고, 내 마음 나도 몰라.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진단 후에는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간절한 소원이었는데, 막상 밥벌이를 포함한 찐 일상으로 돌아가려니 덜컥 겁이 났다. 일터가 즐거움과 보람, 의미가 넘쳐 매일 너무나도 가고 싶은 공간이면 좋겠지만, 나는 회사덕후가 아닌지라. 


물론 암을 경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과감하게 진로를 바꾸신 분들도 있지만, 아직 그럴 용기와 재주는 없는 평범한 1인이라. 아, 첫 책을 출간하고 혹여나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상상한 적도 있다. 아직 2쇄도 찍지 못한 처지에 민망하지만. 뭐 꿈꾸는데 돈 드는 건 아니니까. 책 홍보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구매해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진단 직후 직장과 거기서 파생된 스트레스를 원망하고 분노했었다. 마치 이것 때문에 암에 걸린 것 마냥. 얌체 같고 인간미 없던 상사, 능력과 헌신에 미치지 못했던 평가, 불합리한 프로세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의사결정 구조,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소처럼 묵묵히 일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 스스로에게. 아 모든 건 절대적으로 나의 기준에서 그런 거다. 우리 회사는 좋은 곳이다. (전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어요!) 


복직이란 말에 스트레스가 연상되었다. 그러다가 재발이라도 하면 어쩌지. 먹고사는 거보다 목숨이 더 중요한데. 살면서 스트레스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고, 단지 그걸 어떻게 대하는지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현실에서 해낼 수 있을지.


마음이야 굳세어라 금순이 모드로 정신무장을 한다 쳐도, 치료 후 비루해진 체력으로 동분서주하는 워킹맘의 일상을 버틸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암경험자들끼리 찐한 동질감을 느끼는 암성피로. 예고 없이 체력이 급 0으로 수렴하는, 일명 수직낙하의 조짐이 보이면 바로 쓰러져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누가 내 몸 상태에 맞춰서 회의를 잡거나, 업무 요청이나 지시를 하지 않을 텐데. "저는 10분 후면 체력이 방전될 예정이오니 회의를 미뤄주세요" 라거나 "아, 지금은 힘들어서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혹여나 상황이 되더라도 잠시 누워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두려움, 체력에 대한 걱정. 마지막으로 복직을 망설였던 결정적인 이유는 무너진 자존감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자가 되었고, 잘 추스르고 붙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치료로 헤집어진 몸만큼 마음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 있었다. 더욱이 항암 치료로 탈모가 되었고 나의 바람과 달리 머리는 빨리 자라지 않았다. 그렇게 자란 머리도 난생처음 겪는 짧은 곱슬머리, 케모 브레인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조금 과장해서 3초만 지나면 리셋되는 기억력, 이미 손 놓은 지 꽤 오래된 업무, 암경험자로서의 낯선 포지셔닝, 내가 멈춰있는 동안 저만치 가버린 동료들. 


'돌아가서 1인분은 할 수 있을까' 2인분도 아니고 1인분인데, 이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일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밤을 새워서라도 주어진 몫은 해내던 자신감과 패기만만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었다. 더욱이 이 모든 상황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누군가가 도와줄 수도 없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가족들이 아무리 걱정해도 치료는 나의 몫이었던 것처럼.  


복직. 진단 후에는 그렇게 돌아가고 싶던 일상이더니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겁이 났다. 몸도 마음도 걱정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가고 싶었다. 단순히 돈을 벌던 곳만은 아니니까. 이제 꿈과 이상을 실현한다는 거창한 대의명분은 없지만, 그래도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니라 '나'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니까. 전작에서 밝혔듯이, 어쩌다 보니 병가 중에 승진이 되었다. 5년이 걸렸는데, 한 번 불려보지도 못하고 떠나기는 좀 아쉽다. 속물이래도 어쩔 수 없다. '부장님~'으로 불려보고 싶은 마음을. 승진된다고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그냥 마음이 그랬다. 아, 복직 전에 월급이 얼마나 오르는지 엄청 궁금했는데, 느낄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 놀라운 사실!


결혼과 상관없이 여자도 경제권이 있어야 한다는 소신과 자립심도 복직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 절대 전업주부에 대한 무시나 폄하가 아니니 오해는 금물. 가끔은 스스로도 내 신세를 내가 볶는구나 싶기도 하다. 여하튼 따박따박 꽂히던 월급에 대한 허전함은 늘어나는 병가만큼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래도 아직 사십 대 초반인데. 스물 다섯 대학 졸업 후 20년 차.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일을 놓기는 아쉽다. 꼭 복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체력도, 자신감도 바닥인 채로 갑자기 퇴사를 한다고 새로운 길이 나타날 리 만무하다. 설사 휴직을 연장하더라도 살림에 꽝인 내가 전업주부로 마냥 행복하게 살 자신도 없다. 이미 휴직 기간 동안 삼시세끼 돌밥에 노이로제가 걸리지 않았던가. 




복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수없이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차피 두 개 중 하나인데, 동전 뒤집기도 있고, 침 튀기기도 있고, 애들과 가위바위보를 해도 되고, 적당히 고르면 될걸. 암을 경험하고도 뭐가 중요한지를 모른다. 여하튼 수없이 머리를 쥐어뜯다가 어느 한순간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일단 해보자, 아니면 말고.' 왜냐면 안 하는 걸 선택하면, 해봤으면 하고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실상 꼭 이분법적으로 이거 아니면 저거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 정년까지 안 하면 큰일 난다고 하는 사람도 없고(오히려 그렇게 해 줄 리 만무하다), 반대로 사장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꼭 붙어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이 또한 바짓가랑이를 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삶이 어디 계획한 대로만 되던가. 그랬으면 암에도 안 걸렸지. 그러니 미리 지레 겁먹고 피해야 할 이유도 없다. 


한 번 해보고, 체력이 도저히 안되거나, 혹은 진상 상사나 동료가 괴롭히면 그때 뻥 하고 걷어차고 나오는 걸로! 돌아갈 곳이, 할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카드를 마음껏 써야겠다. 발을 슬쩍 걸치고 마음이 끌리는 일, 진정하고 싶은 일을 탐색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일단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면 마음의 여유가 따라와서 더 너그럽고 인자해질지도 모른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처럼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다. 한 번 이렇게 관점을 바꾸고 나니 복직에 대한 부담이 덜했다. 물론 짧은 머리는 여전히 어색했고, 마음 한편 걱정을 깨끗이 털어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힘든 기간 꿈꾸었던 소중한 나의 모습과 일상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져 가는 느낌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마치 암 진단 직후의 당혹스러움과 치료의 힘든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처럼, 복직 즈음의 긴장, 두려움, 생경함 등은 아스라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걱정했던 많은 것들은 실제로 겪어야 했던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혼자만의 외롭고 힘든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족들, 직장 동료, 선후배들, 암경험자 전우들에게도 따뜻한 응원과 긍정의 에너지를 받았다. 혹여나 내가 부담스러울까 조심스러워서 드러내거나 표현하지 않았을 뿐. 


암 진단 이전의 삶, 학교나 직장, 혹은 그 어떤 역할과 공간으로 돌아가기가 걱정되거나 망설여진다면 한 번 용기 내 보면 어떨까. 더 크고 무시무시한 암도 경험해 봤지 않은가! 일단 해보고 아니면 또 다른 길을 가는 걸로. 그렇게 조금씩, 한 번씩 시도하다 보면 진짜 길을 찾게 될 테니까.


Image by Peggy und Marco Lachmann-Ank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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