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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Feb 04. 2024

복직, 새로운 일상과의 도킹

낯선 이방인이 아닌 우주여행 경험자로

도킹(Docking). 인공위성, 우주선 따위가 우주 공간에서 서로 결합하는 것. 


암경험자로서의 복직은 육아 휴직 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도킹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를 만큼. 긴 시간 우주 여행을 하고 지구에 돌아온 느낌이 이럴까. 주위 사람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늘상 그렇게 지내 왔는데, 나는 낯선 외계인이 되어 은하계를 떠돌다 온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공간이고, 대부분은 익숙한 사람들인데. 긴 휴직으로 인한 공백 때문인지, 암경험자라는 신분 상승 때문인지 왠지 낯설다. 긴장과 어색함을 감추려고 얼굴은 웃고 있지만, 머릿 속은 혼란스러웠다. 진단을 기점으로 나의 삶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다. 그랬는데 사무실에서 다시 마주한 동료들은 너무 편안해보였다. 물론 그들도 복작거리는 삶이 있었겠지만 그것까지 헤아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참전했던 군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마을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이런 느낌일까. 잘 치료 받고, 잘 회복해서 일상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직장에도 잘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강제로 멈추어져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들 이렇게 평화롭게 지냈구나. 딱히 탓할 대상도 없는데 괜히 억울했다. 암환자임을 받아들인 뒤로 좀처럼 하지 않았던 '왜 하필 나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단 후 한동안 나의 생활 반경과 인연들은 모두 암과 연결되었다. 병원을 내 집 드나들듯 했고, 인생의 극적 경험이라는 공통 분모 덕분에 쉽게 친해지고 공감했던 인연들. 특별 훈련처럼 함께 치료를 받으며 전우애를 키웠고, 자조 모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오프라인 외에도 블로그를 통해 다른 암종이나, 다양한 연령대, 전국 각지의 환우분들과 소통했다. 푸근한 울타리 안에서 상처받고 힘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할 수 있었다. 치료를 마친 후에도 종종 함께하며 암경험자끼리만 알 수 있는 찐한 감정을 공유하고는 했다. 


그렇기에 복직은 단순히 다시 일을 시작하는게 아니라, 모든 환경과 만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을 의미했다. 마이너(소수)로 느껴지지 않았던 우리만의 둥지를 떠나는 느낌.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이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걸, 소중한 인연들과 영영 이별하는 게 아니라, 각자 제자리를 찾아가는 거라는 걸. 다만 암 경험자가 되는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복직에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조금 천천히 쉬면서, 가끔 멈춰서 뒤도 돌아보겠다고 다짐했었다. 백미터 트랙을 전력 질주하는 것만이 행복한 길은 아니라고, 마라톤도 있고, 경보도 있고, 혹은 꼭 달리기 선수여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고, 트랙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왠걸. 다시 운동장에 놓여진 순간 '예전처럼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패배감과 자격지심, 소외감, 열등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세트로 몰려왔다. 


거기에 손에 익지 않은 업무에 마음은 더욱 위축됐다. 업무 변경으로 10년만에 다시 접하는 시스템은 낯설었고, 매뉴얼은 친절하지 못했다. 정상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권한을 받는데만 2주 가까이 걸렸다. 내가 아니라, 신입사원이나 새로온 누구라도 겪을 일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낮아진 자존감은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이런 상태로 1인분은 커녕 0.5인분은 하겠니, 무슨 일을 하겠어'


몸은 몸대로 고단했다. 근무 시간에는 쉬어야 하는 타이밍에 쉬지 못하니 피로가 쌓였다. 에너지를 마이너스로 끌어써서 버티기.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대로 좀비처럼 쓰러져 퍼졌다. 마이너스 상태에서 에너지를 채우는 건 일반적인 피로감과 달랐다. 몸과 마음은 같은 싸이클로 움직이는데... 몸이 힘들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우울하면 또 다시 몸도 쳐지는 악순환. 암 치료 중 경험했던 그 상황을 다시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 상황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이게 맞는 선택이었는지,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음 한켠에서는 슬그머니 익숙하고 편안했던 공간과 사람들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만 이방인인 듯한 이 곳이 아니라. 


그렇게 정작 월급값도 못하고 어리바리 그저 아침 저녁 출퇴근만 겨우 하는데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 암을 겪었지만, 잘 견디고 '사회복귀'까지 기특하고 장하다고. 지금 치료 중인, 혹은 복직을 앞두고 힘들어하는 환우들에게 힘이 될 거라고. 다시 복직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뛰어난 성과를 이룬 것도,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작은 노력일 뿐인데 그저 황송하고 고마웠다. 마치 아기들이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쑥쑥 잘 크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받는 것처럼. 확신하지 못했던 나의 선택에 의미를 갖게 되었고, 잠시 힘들지만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동굴 속에서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조금씩 펴기 시작했다. 나만 이방인이라 느꼈을 뿐, 동료들은 다시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평화롭기만 해보였던 나의 부재 기간 동안, 나름의 사정과 사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업무는 '모르면 물어보자'는 마음으로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 모르는 건 나쁜 것도 아니고, 10년만에 하는데 시스템도, 프로세스도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그럴 때마다 동료들은 기꺼이 알려주고, 때로는 그 이상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잘 나가는 선배는 아니지만, 인생 경험 많은 좋은 선배는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출퇴근만으로도 방전되던 체력도 시간이 걸렸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마치 항호르몬약 복용 초기에 부작용인 관절통으로 손가락도,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었지만 조금씩 나아졌던 것처럼.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몸은 알아서 달라진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제 복직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직장을 포함한 암경험자로서의 새로운 일상과의 도킹을 마쳤다. 훌륭하게인지는 모르지만, 어딘가가 어그러져서 이탈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됐다. 우주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색다른 우주여행을 경험한 특별한 사람인 걸로. 덕분에 들려줄 이야기도 많고,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도 가졌다. 우주여행의 기억은 우리 몸 깊이 각인되어, 이후의 삶을 좀 더 즐겁고, 행복하고, 의미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미션 컴플리트! 


                    

Image by 8385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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