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샤 Dec 23. 2023

암경험자의 사회복귀, 혼돈과 적응의 시간

한 번은 겪어야 할,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니

암 진단 직후 그저 '살고 싶다'는 본능으로 가득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오늘부터 암환자라니. 하루아침에 신분상승(이라 믿고 싶다)되어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과 달랐다. 진단 후 진료와 검사를 기다리며 피말리던 시간, 온통 암에 사로잡혀 책과 식이, 운동에 집착했다. 그렇게 불안함을 눌러가던 중 눈에 띈 단어.


'암경험자의 사회복귀'

어라, 이건 또 뭐지? 당시에는 치료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암 걸렸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그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기에 비중 있게 다뤄졌으리라. 진단 직후 휴직계를 날리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직장이 떠올랐다. 17년간 매일 출퇴근을 하던 평범한 일상이 암 진단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처음에는 치료를 잘 받고 복직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적당히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이제는 사회적으로 꽤 익숙해진 육아휴직을 다녀온 것처럼. 이전과는 조금 다르지만 적당히 '나의 자리'로 돌아갈 거라고. 그러나 이후 치료방법과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보고 듣고 알게 되면서 아뿔싸.


'이건 감기가 아니었지. 그래 암이라고! 아무리 치료법이 좋아졌어도 암은 암인 거야!

한 순간 모든 걸 뺏겨버린 듯한 상실감과 원망이 두려움에 얹혔다. 하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 하기에 힘든 치료가 우선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버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지났다. 길고 긴 고난의 끝에 금의환향 내지 마라톤 결승점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시간이 흘렀고 치료는 마쳤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마치 학수고대하며 제대를 기다리지만, 사회에 나오면 어리바리한 군인처럼.


물론 암을 경험하고 더 멋지게, 더 의미 있게 사는 분들도 많다. 난소암 치료 후 사업가로 예능인으로 활약 중인 홍진경 님, 서른 살 난소암 진단 후에 30년 넘게 활동 중인 가수 양희은 님, 유방암 선배인 배우 이경진 님, 한창 인기를 얻을 무렵 비인두암 진단을 받았지만, 복귀해서 많은 작품에 출연 중인 배우 우빈 님 등등. 암을 경험한 모든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밝고 찬란한 모습으로.


하지만 치료 직후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안정을 찾기까지는 나름의 힘듦이 있지 않았을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감기처럼 앓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으니까.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사춘기처럼, 암경험자에게 통과의례 같은 과정, 사회복귀. 직장이나 학교, 지역 공동체, 혹은 가족들과 관계 등 많은 부분을 재설정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당사자도, 가족들도, 주변인들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지도 모른다. 1년 전 잔뜩 긴장해서 복직 후 첫 출근을 하던 내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다만 암경험자로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거나, 그저 외면하고 미루고 싶거나, 혹은 이 모든 게 외롭고 억울한 분들께 이야기하고 싶다. 여러분만 그런 건 아니라고. 너무 당연한 거라고. 다만, 더 큰 삶의 위기도 슬기롭게 헤쳐낸 우리니까 잘 해낼 거라고. 이 또한 지나갈 거니까...


앞으로의 이야기는 암 치료를 마치고 복직 후 지난 1년간 롤러코스터를 탄 듯 오락가락하는 감정의 기복, 그 속에 좌충우돌했던 에피소드들이다. 잠시나마 걱정을 덜고, 한 번이라도 웃고,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허 : Pixabay



 

이전 05화 첫 번째보다 어려웠던 두 번째 암밍아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