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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Jan 06. 2024

암경험자의 직장생활&치료 병행 분투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까지는 아니지만, 빡세서 아름다운 이야기

복직을 고민하며 신경이 쓰였고, 또 실제 복직 후 힘들었던 치료와 직장 생활의 병행. 수술/항암/방사 3종 풀 세트 완수 후 마음은 만기제대지만, 그 뒤에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예비군 느낌이랄까. 나의 암타입은 호르몬과 암세포가 반응했는데, 호르몬이 매우 강한 강양성이라 예방적 치료가 이어졌다. 몸의 주인인 나를 닮은 건지 호르몬도 세다니.


재발률을 낮추기 위해 항호르몬 치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치료 방법은 호르몬이 생성되지 않게 막고(난소 억제 주사 졸라덱스), 그 와중에도 생성된 호르몬이 암과 결합하지 못하도록 약을 먹는다(페마라 또는 타목시펜). 주사는 4주마다, 약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1회.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5년간 항호르몬 치료를 명 받고, 열심히 미션을 수행 중인 암경험자다. 생각난 김에 계산해 보니 현재 진척률이 무려 50 퍼센트다. 감동의 도가니~ 


매일 먹는 약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되는데라고 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매일 까먹지 않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복직으로 매인 몸이 되니 4주마다 병원 방문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주기가 유동적이거나,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당기거나 밀 수 없다. 몇 달에 한 번도 아니고, 4주마다 꼬박꼬박 날짜를 맞춰야 하니 다른 중요한 일정(이 딱히 없긴 하지만), 출장이나 여행을 계획할 때도 감안해야 했다. 무엇보다 연차 빵개라는 충격적 진실을 접한 뒤로 심리적인 부담이 더해졌다. 마치 배수의 진을 친 느낌. 


실제 주사치료는 30분 안쪽이지만, 회사에서 병원까지 한 시간, 보너스로 주차장은 거의 항상 난리부르스라. 

고맙게도 자율출근제로 치료로 빠진 시간을 다른 날에 보충했다.(우리 회사 좋은 회사, 사랑해요!) 일반적인 근무 체계라면 일과 치료의 병행은 힘들었을 것 같다. 어쩌다 한 두 번이야 배려받을 수 있다고 쳐도, 4주마다 5년 동안은 쉽지 않다. 대학병원에서 야간에 항암 주사를 놔줄 리도 만무하다. (오후 3~4시경이면 주사 시간이 긴 경우 접수가 마감된다. 저 멀리 제주에서 왔든, 부산에서 왔든 예외는 없다.)


주사 치료만 회사 근처로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낯선 병원에 또 가야 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 지금 치료 병원이 '제2의 고향'처럼, 수도 없이 들락날락 거리며 희로애락(?)을 함께 해서인지. 차가 막히는 걸 감안하니 이동시간도 큰 차이가 없었다. 


'통제불가능한 상황(타이트한 후속 치료)은 막을 수는 없지만 대응할 수는 있다'는 정신에 입각하여 이런저런 잔머리를 굴렸다. 혹시나 4주인 주사 간격을 3개월로 바꿀 수는 없는지 슬쩍 질척거려 보았으나, 단호박 츤데레 주치의 샘은 말 떨어지기 무섭게 'NO'를 외쳤다. 오랜 공부와 풍부함 임상경험을 갖춘 의느님의 분부를 거스르려 했다니 반성합니다! 


후속 치료가 힘들다고 징징거리지만, 암경험자는 안다. 쓸 약이 있다는 게, 치료법이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특히 호르몬 양성 타입 유방암은 일반적인 완치 기준인 5년 이후에 재발하기도 한다. 긴 시간 혼자 불안에 떨지 않도록 이렇게 장기간 케어받는다니, 그것도 상급병원에서 감사할 따름이다. 비록 대바늘 같은 주삿바늘로 배에 숑숑 구멍이 뚫리지만, 영광의 상처다. 마치 가슴에 남은 수술 자국처럼. 항호르몬약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지만(전작에서 매우 심하게 징징거렸다. 홍보는 아니지만 제목은 <유방암이지만 괜찮아>입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힘든 만큼 그 이상의 효과가 있기에 일반적으로 시행된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주사 치료가 있는 날은 일찍 출근해서 오후에 병원에 가는 루틴을 찾았다. 다만 하필 이 날 급한 일들이 몰릴 때가 있다. 하루 미룬다고 큰 일이라도 날 까만은, 모르겠다고 냅다 덮어놓고 가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타고난 누렁 소의 근성은 암에 걸리고도 당최 바뀌질 않는다. '이것만 마무리하고 가야지'. 째깍째깍, 이때까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 마지노선의 시간이 다가온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초조함이 증폭되면서 화가 난다. 허겁지겁 주차장으로 뛰어가서, 레이싱을 하고(아, 제 마음만 그렇다고요), 하필 바닥난 기름도 채우고. 세상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나. 하하하. 그래도 아슬아슬 도착, 세이프! 시간에 쫓기며 서러웠던 마음은 잠시, 그 어려운 걸 해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샘솟는다. 한편으로는 다음번에는 조금 여유 있게 나오려고 다짐하지만, 종종 반복되는 레퍼토리.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다 보니, 검사/진료/주사 트리플 3종 세트가 같은 달에 일정이 잡힌 적이 있다.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예약 일정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복직 초반이라 괜히 눈치도 보이고, 아직 업무가 익숙지 않아 일도 서투른데, 시간을 어떻게 채우지 오만걱정이 둥둥. 난이도 최상급 미션. 하지만 결국 일도, 진료도 펑크 내지 않고 깨끗하게 클리어했고, 성공적인 미션 수행에 대한 자부심만 남았다.


세상 많은 일이 그렇듯, 걱정하는 대부분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이렇게 배운다. 워킹맘으로 퇴근 후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야간 진료 소아과를 찾아 헤매고, 학부모 상담, 참관 수업, 졸업, 입학 등 행사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기억. 정신없고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지나왔고,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다. 종종 눈물 바람이었던 초보 워킹맘의 기억은 가물가물해졌다. 


치료받을 수 있음에, 일을 할 수 있음에, 또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두 가지 모두 버티면서 해나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비 포옹으로 셀프로 토닥토닥 안아주며 스스로 응원해야지. 장하다고, 잘하고 있다고. "암을 경험했지만, 이렇게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돼요"라고 이야기해 준 암경험자 후배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지금의 이 시간은 치열했던 만큼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테니까. 


Image by Alex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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