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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Feb 18. 2024

병가복귀자에서 직장인 1로 변신하기

달리지 않아도, 크지 않아도 괜찮아!

복직 직후 극한 긴장감과 출퇴근만으로도 바닥나는 체력. 그 덕에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좌우로 재고 고민하고 걱정할 틈도 없이. 그러던 게 한 달 쯤 지나니 살살 몸이 적응을 하고, 마음도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좋아지는 일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좀 편해지고, 긴장이 풀리니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똑같이 사무실에 있지만, 이방인처럼 느껴지던 방황기가 무사히 지나갔다.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로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감사함으로만 쭈욱 채워갔으면 좋으련만, 마음의 공백,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인간 본연의 감정인 '질투와 시기'가 득달같이 찾아왔다. 


휴직 중에는 '뭣이 중하냐고',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딨 냐고 소리 높였지만, 막상 회사라는 공간에 놓이니 마음이 흔들렸다. 누가 중요한 업무를 하는지, 누가 고과를 더 잘 받는지, 누가 주재원이나 양성의 기회를 갖는지, 누가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지 온통 '내'가 아닌 '외부'의 시선과 평가로 가득한 곳. 무엇보다 이제는 그런 기준들과 철저하게 무관해진 듯한 이질감. 


누렁소처럼 묵묵하고 성실했고, 한편으로 치열했던 워킹맘으로서의 삶. 회사에서 소위 '제일 잘 나가는' 무리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인정받았고,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때 맞춰 진급도 했고, 연차를 쌓아가며 중간 관리자의 순번을 기다릴 무렵, 암환자가 되었다. 2년이 흘렀고, 나는 그냥 복귀자도 아니라 '병가 복귀자'가 되었다. 


복직 초반 정신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이전과 비슷해 보였지만, 내가 '암환자'로 지내는 동안, 동료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냈을 테니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내가 알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아 더듬더듬 검색도 했다. 아... 친했던 선배는 임원이 되고,  동기들은 별이 되기 위한 레이스를 달리고 있고, 똑똑한 후배들은 주재원을 나가거나 중간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 


나만 멈추어졌던 시간인 건가.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부러웠다. 단순히 그들의 지금의 위치와 결과가 아니라, 강제로 멈추어지지 않고 마음껏 달릴 수 있었던 시간이. 동시에 예전이라면 '질투는 나의 힘' 모드로 어떻게든 역전해 보려고 이를 악물고 달려볼 텐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 잉여 내지 무용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실은 복직 전에는 나름 자신감을 장착했었다. 비록 암에 걸렸지만 그걸 계기로 글을 쓰고, 출간 작가가 되었다. 다양한 환우들과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도 갖게 되었다. 직장이라는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처럼. 하지만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열심히 준비한 시험인데 알고 보니 시험범위를 잘못 알았던 것처럼. 움츠러든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차곡차곡 둘렀던 보호막들이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암진단 후 성취지향적인 마인드를 바꾸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마음은 그렇지 못했나 보다. 어쩌면 글을 쓰고, 책을 낸 것도 그런 오기와 성취를 향한 욕망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걱정한 상사의 배려로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작은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분명 감사해야 할 일이 맞고, 고마운데 기분은 이상했다. 보통 경험이 많지 않은 신입이나 처음 부서에 온 전입 인력이 담당하는 업무였으니까. 그렇다고 덥석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할 자신이 없는 스스로가 민망하다. '1인분은 할는지, 월급 받는 게 미안하지는 않을까'했던 막연한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쉬운 업무조차 헷갈리고 어려웠다. 졸지에 바보가 된 듯한 자괴감.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그저 몫을 적당히 하면서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였던가. 누군가는 엄청 오래 다닌 직장이고, 짬밥이 있으니 빼고 적당히 하면 된다는데, 짬밥은 웬걸 나이만 많신입사원이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스스로 파놓은 수렁에서 헤맸다. 그랬는데 역시나 이것도 시간이 약이다. 힘든 순간에는 어김없이 시간이 나오는 걸 보면 만병통치약이다. 그러고 보니 암도 싹 없앨 수 있는 약은 없으려나. 기승전암, 난 암경험자니까. 여하튼 시간은 지났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여전히 잘 나가는 선후배, 동기들이 우사인볼트 저리 가라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나의 업무는 자라지 않고, 늘 그렇듯 작고 귀엽다. 가끔 지금 무슨 업무를 하냐는 질문에 대답하면 당황스러워할 만큼. 혹 누군가는 돌직구로 묻기도 한다. 이제 적응도 됐을 텐데 왜 다른 일을 하지 않냐고. 아, 최근 면담 때는 '언제든 일을 더 하고 싶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얘기해 주세요'라는 과분한 멘트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직장 생활에 대한 마인드는 암과 무관하게, 그 이전에 방향을 수정했었다. 정상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는, 내 역할만큼 하면서 일 말고 다른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겠노라고. 나의 삶이 회사인간 백 퍼센트 일리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딴짓에 한창 재미를 붙일 무렵 암환자가 되었을 뿐, 암으로 인해 커리어의 방향이 바뀐 건 아니었다. 


모든 상황은 병가복귀자로 조금 일찍 찾아왔을 뿐,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 괜히 암핑계 대면서 약한 척하지 않기. 모든 건 내 선택이었으니까.  


이제는 질투 제로/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으로 힘껏 달리는 동료들을 응원할 수 있다. 조만간 겪게 되겠지만, 후배가 상사가 되더라도, 좋은 매너와 성실한 태도로 마주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막상 말은 이렇게 하는데 겪어보면 또 징징 거릴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시간이 약이 되어 줄 거니까!


업무는 아무리 작고 귀여워도, 그 안에 얽힌 무수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그 일을 주업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덜 중요하다고, 비중이 크지 않다고 소홀히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게다가 규모가 작다 보니 전적인 재량권을 갖게 되었고, 요리조리 고민하고 궁리하면서 계획한 대로 꾸려가는 맛이 있다. 보통 크고 중요한 일들은 상사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니까. 무엇보다 작은 범위에서 사람들과 맺는 밀도 있는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조금은 생소하고, 어려웠던 병가복귀자로서의 적응 기간. 적당히 무탈하게 넘어간 것에 감사하다. 아마 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병가복귀자의 꼬리표는 찾을 수 없다. 왜 나한테만 이렇게 어려운 거냐고 속상해했던 보통의 월급쟁이, 직장인 1의 삶으로 슬그머니 스며들었다. 앞으로의 삶도 주변을 응원하며, 나 또한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야지. 


Pixabay, StartupStock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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