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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치료 종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낯설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지만 새로운 나다움으로 한걸음

by 타샤 용석경

수술, 항암, 방사의 긴 치료. 이것만 마치면, 이것만 견뎌내면 마치 저 너머에 파랑새가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암환자가 되기 전의 내 모습으로, 내 몸으로 돌아가리라 기대하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재투성이 아가씨가 멋진 공주로 변하는 신데렐라의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치료를 마쳤어도 몸은 여전히 힘들었고, 일상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하나도 멀쩡하지 않은 몸 상태. 치료는 끝났지만, 부작용은 꽤 오래 지속됐다. 조금씩 들뜨던 손톱은 층이 지고 갈라져서 밴드를 붙이고 장갑을 껴야 했다.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멍이 들어 검사해보니 혈소판도, 호중구 수치도 낮게 나왔다.


항암과 호르몬 약 때문인지 허리와 다리 통증이 심해서 움직일 때마다 신음 소리가 났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지는 몸으로 아이와 긴 나들이를 즐기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치매를 의심할 만한 기억력 감퇴에 당황하기도 했다. 예전에 농담 삼아 말하던 비루한 몸뚱이가 현실이 된 것이다. 모자를 푹 눌러써서 가려야 하는 까까머리, 덥기도 하고, 시야가 가려지는 만큼 마음도 움츠러들었다. 열감과 더운 날씨는 피부 트러블로 이어졌다.


방사 치료를 끝내고도 몇 개월간 이렇게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나름 잘 견뎠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암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거라고 한 걸까? 처음에는 무조건 떼고 없애버려야지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암을 없애는 과정에서 내 몸에 남은 흔적과 달라진 나의 마음. 이게 다시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테니까 함께 살아간다고 하는 건지.


예전에 표준치료를 마치면 만기 제대하는 군인 느낌일 것 같았는데, 진짜 말년 병장 같다. 비록 군대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군인들도 제대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막상 전역 날짜가 다가올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고 한다. 군대라는 환경에 익숙해졌는데 사회로 돌아가면 다시 적응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과 막막함이 든다고. 치료를 마치고 이제 다시 소중한 가족의 품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환자로 너무 멀리 와버린 느낌.


요양병원 퇴원 전날, 밤 10시가 넘어 바람을 쐬러 옥상에 올랐었다. 해 질 무렵 노을과 구름이 참 예쁜 곳. 항암 중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나서 옥상을 걷고 또 걸었었다.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아무도 없는 컴컴한 옥상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니 힘들었던 시간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암진단으로 갑자기 달라진 나의 삶. 이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힘든 시간을 잘 견뎌냈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힘을 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온 뒤 전과는 다르지만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좋아하던 공부도 다시 하고, 책도 읽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가고. 다만 잠시 동안은 무얼 하고 싶은 욕구도, 해야 하는 많은 일들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그대로 멈춰서서 이 상태에 적응하며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기. 암진단을 받은 지 1년이 되었어도 가끔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지만 알고 있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예전처럼 빠르게, 효율적으로, 에너지 넘치게, 스마트하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괜찮다. 예전과 같지 않아도 된다. 조금씩 천천히 그렇게 달라질 일상을 준비해 본다. 가다 보면 어느새 또 새로운 길이 보이고 달라진 환경에서 다시 새로운 나다움을 찾게 될 거니까.


* 이 글은 22년 출간된 <유방암이지만 괜찮아>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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