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부작용, 무거워지는 마음
3차 항암. 이제 나름 두 번이나 해봤다고 조금 익숙해진 느낌. 그래도 진료 때는 열심히 부작용을 호소하고 하나라도 약을 더 타기 위해 노력했다. 감격스럽게도 마지막 항암 치료 뒤에 바로 방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4차 항암 날짜에 방사과 진료가 잡혔다. ‘막항’이라는 말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텐션이 업되면서 주사쯤이야 가뿐하게(?) 잘 맞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이런 마음과 다르게 부작용은 여전했다. 2일 차부터 열감과 부기가 심해졌다. 얼굴은 땡글 땡글 호빵맨이 되었고, 팔, 다리, 몸통 온몸이 부어올랐다. 입안은 마치 커다랗게 부풀린 풍선껌을 한가득 물고 있는 느낌. 호빵맨 같은 나를 보고 볼 터치 같다며 귀엽다는 찬사를 날려주는 병동의 언니들. 요런 몰골로도 이렇게 사랑받으니 기쁘고 행복할 따름이다.
가장 힘들었던 건 먹는 것. 입이 쓴 건 알고 있었지만, 냄새에도 민감해졌다. 삼시세끼 잘 차려진 밥상인데, 그릇 뚜껑을 여는 게 이렇게 두려운 일이 될 줄이야. 음식 냄새에 오심이 심해져서 한 번에 열지 못했다. 어느 음식이 맛있는 걸까 유심히 살펴보다가 한 개씩 열어보고, 젓가락으로 찍어서 살짝 맛을 보았다. 현대판 기미상궁이 따로 없다. 똑같이 입이 썼던 룸메이트 언니와 번갈아 맛을 본다.
맛을 보자마자 뚜껑을 덮어버리거나, 반가운 눈빛으로 끄덕끄덕. 그렇게 우리는 매끼 기미상궁 놀이를 했다. 그래도 고맙게도 슴슴한 감자와 고구마가 아직까지는 먹혔다. 진정한 구황작물이다. ‘불량이’이긴 하지만 항암 특권으로 먹는 아이스크림은 꿀맛. 특히 애정하는 빵빠레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차마 자주는 못 먹어도, 참고 아끼다가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감이란.
실은 항암 치료 중 힘든 것 중 하나는 컨디션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훅 피곤해지고, 열감이 나고, 아프고, 다시 멀쩡해지고. 그전까지는 정상 컨디션에 맞추려고 했다면, 이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를 기준으로 두니 수월해졌다. 조금이라도 조짐이 보이면 바로 누워 쉬고, 자면서, 에너지가 바닥나기 전에 충전하려고 노력했다.
일주일의 기적을 살짝 기대했는데, 8일 차에 피부발진과 근육통이 심해졌다. 피부는 연고를 발랐지만, 게릴라전처럼 목 뒤, 엉덩이, 허리, 다리에 발진이 도드라졌고, 특히 면역력이 떨어지는 밤에 기습 공격을 펼쳤다. 사라진 줄 알았던 근육통이 더 세게 나타났고, 질세라 더 센 진통제를 먹었지만 눌러지지 않았다. 병동에는 피부 발진이 오는 경우는 없었는데, 항암 부작용은 사람마다, 차수마다 달라지는 걸 실감하게 된다. ‘어떤 분이 오든 당황하지 않고 경건하게 받아들이기’ 항암 치료 중 득도하는 마음으로 되새기던 마인드.
피부 발진으로 꼬빡 고생한 다음 날, 미리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약을 먹고, 아이스팩을 대령하고, 샤워 후 연고를 바르고 경건하게 ‘그분’을 맞을 준비를 했다. ‘굳~이 안 오셔도 되는데, 온다는 걸 말릴 수도 없고, 차마 반기지는 못해도, 맞아는 드리오리다.’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이후 조금은 수월하게 넘겼다.
10일의 기적으로 열흘만 힘들면 좋으련만, 집으로 돌아온 뒤 나타나는 소소한 부작용들에 예민해졌다. 아마도 항암 차수가 쌓일수록 몸에 더 강하게, 오랫동안 데미지를 주는 것 같다. 피부 발진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고, 얼굴에는 열감의 흔적이 검게 곳곳에 남았다. 날이 더워질수록 두피의 발진은 심해졌고, 결정적으로 잘 버텨주던 손톱에 변색과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건을 집거나, 살짝 닿기만 해도 아프다 보니 손톱이 훅 빠져버릴까 봐 일상의 순간마다 겁이 났다. 이제 몇 주만 더 버텨주면 되는데. 불량 주부라 살림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최소한은 해야 하는 집안일. 면장갑이나 실리콘 장갑을 끼어보지만, 손끝의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한 번 떠오른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괜스레 머리카락에 대한 불안함도 서서히 생겼다. 치료를 마치면 당연히 예전처럼 머리카락이 나는 줄 알았다. 직모에서 곱슬머리로 모질이 바뀔 수 있는 건 알았지만, 안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환료 이후 탈모로 고민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원래도 머리숱이 많지 않고, 가는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머리카락이 빠졌었다.
샤프심 놀이한다고 일부러 머리카락을 너무 털어낸 건 아닌지, 이제 제법 반들반들해진 머리에서 다시 머리카락이 나지 않는 건 아닌지, 난생 처음 곱슬머리가 되는 건 아닌지. 다시 예전처럼 생기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항암 치료만 잘 견뎌내자고 굳은 결심을 했건만, 막상 치료가 끝나갈 무렵이 되니 마음이 복잡하다. 얼마 전 회사의 친한 동기의 암진단 소식도 들렸다. 예전에 수술 후 이어질 치료에 대해 걱정할 때, 표준치료 막바지의 환우들이 치료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던 게 생각난다. 그때는 막연히 치료만 마치면 엄청나게 신날 텐데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었다. 막상 치료의 중반을 넘기고 보니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세상에 걱정이 하나도 없겠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에 빠져서 에너지를 쓰지 말고,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 타일러 본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나를 그리워했을 가족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안아주기. 내가 좋아서 벌여 놓은 일들을 잘 마무리하기. 아직 한 차례 남은 항암.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는 방사선 치료 잘 받기.
무엇보다 좋은 생각 하면서 잘 먹고, 잘 자고, 충분히 운동하면서 날 사랑하기!
* 이 글은 22년 출간된 책 <유방암이지만 괜찮아>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