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소리

by 정수TV

오늘도 역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아이들에게 같이 농구하는 기본기를 가르쳐 주려고 했으나 아이들이 거부하며 바로 경기를 임하려고 했다. 안된다고 얘기를 해도 막무가내여서 어쩔 수 없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화를 내니 여자 아이는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나도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다행인지 아이들 중 몇 명이 나를 말리는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게 문제이다. 화가 나는 상황도, 이유도 모두 이해가 된다. 하지만, 화를 내다보면 갑자기 순간적으로 나 자신을 잃는다.

예전에 TV에서 오은영 박사가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한 아이가 나처럼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화가 화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그 아이의 원인을 찾다 보니 먹는 것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너무 단것을 먹다 보니 그 에너지가 그날 모두 소진되어야 하는데 먹는 것은 많고 운동량은 적으니 몸의 평형을 이루기 위해 화를 낸다고 한다. 나도 그런가? 너무 잘 먹어서 그 에너지를 방출하기 위해 화가 났을 때 더욱 심하게 내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SF 영화 중에 스타트랙이라는 시리즈가 있다. 나는 항상 집에 가서 넷플릭스로 영화 시리즈로 본다. 하루에 한편씩 보는데 왜 그렇게 즐거운지. 그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우주선을 책임지는 함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에 휘둘려서는 절대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함장에게는 그만한 책임이 뒤따른다. 어느 날 함장이 개인적인 문제로 감정적으로 동요를 일으키게 된다. 그 후 감정적으로 동요된 함장은 규정에 의해 그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나의 상황과 같다. 상황이야 어떻든 내가 감정적으로 굴면 나도 나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오늘 나는 감정적으로 동요된 것이 맞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느꼈다. 나의 통제되지 않은 말과 행동을 나도 느꼈다. 영화에 의하면 나도 나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고 며칠이 지났다. 가정에서 직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제 감정적으로 동요도 심하고 그만 쉬고 싶다고 얘기했으나 역시 씨알도 안 먹히는 상황이었다.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게 느껴졌다. 다시 시작된 학교생활 '아~ 정말 너무 힘들다.' 아이들은 말 안 듣고 자기 멋대로 하고 나는 나 대로 계속 똑같은 말의 반복. 수업이 끝나고 힘이 하나도 없이 빈 교실에서 털썩 주저앉아 생각에 잠겼다.

대학교 때 같이 지내던 동기 모임에서 벌써 교장을 하며 정말 쉽게 학교생활하는 거 같은데 나는 이게 무슨 생고생이란 말인가? 나라고 노력 않고 산 게 아니다. 나도 욕먹을 거 먹고 고생할 거 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누구는 교장이 되고 나는 항상 평교사로 눈칫밥 먹고 있다. 도저히 불공평해서 못살겠다. 비참한 생각에 휩싸였다.

대학생 때 어느 국어과 교수님의 말씀 "너희들 세상에 직업이 몇 개인 줄 알아?", 모두들 다양한 답을 했다. 3만 가지?, 아니지 10만 가지? 이어지는 교수님 말씀 "세상에는 오직 한 가지 직업이 존재한다. 그 직업은 교직이고 다른 것은 없다." 무슨 말장난 같았는데 이 말씀을 학기 내내 잊을만하면 하셨다. 그때는 이게 무슨 괘변인가 싶어 이상했는데 지금 나의 모습을 보니 그 교수님 말씀에 딱 맞게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며 열심히 생활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둘 것인가? 타협같이 가운데는 없다. 그게 이번 문제의 핵심이었다. 대충 그냥 현직에 머무르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평교사로 직장에 열심히 다닐 것인가? 아니면 미련 없이 그만둘 것인가?'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간단한 문제였다.

동료 교사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거나하게 먹고 배가 너무 불러 집에 도착하여 다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였다. 그런데 저쪽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혀 생각지 않고 가다 보니 그중 한 명이 나의 친척이었다. 너무 반가워 이 저녁에 어딜 가냐고 물어보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어디를 간다고 하는데 3교대를 한다고 한다. 나는 저녁식사를 너무 많이 해서 배를 꺼뜨릴 겸 어두워지는 동네를 걷고 있는데 나의 친척은 지금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러 셔틀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그도 나와 같이 중학교를 같이 다닌 선후배 사이이고 자녀가 나이가 같아 서로 자녀교육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지금하고 있는 고민들은 그에 비해 보면 정말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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