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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Jan 09. 2022

나 홀로 서울 : 서울 상경 일기

Movie : 나홀로 집에

    안녕, 서울. 


서울에 대한 나의 기억은 열일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도 존경했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사흘째 되던 날, 학교에선 현장학습이 있었다. 서울 대학로 연극을 관람하고 그 근처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날 나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것에 대한 감각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이었던 것이어서 그런지 활동에 대한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로 극장 한 구석에 앉아 코미디 연극을 봤다.      


아니 ― 정말 본 게 맞나? 솔직히 말하면 기억나지 않는다. 연극의 내용도, 연극을 본 후 들렀던 곳곳의 장소들도. 그렇게 나의 첫 서울은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다. 무엇을 하는 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정신없는 시간과 장소들에 쫓기면서. 만약 그때 나에게 누군가가 ‘서울은 어떤 곳이야’라고 물었다면, 나는 차갑고도 황량한 곳이었다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것이 서울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아니다. 다만, 기록하고 싶은 첫 기억일 뿐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고양시 일산서구, 그중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논과 밭 밖에 없는 휑한 곳이어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10분 이상 나가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서울은 꽤나 멀고 특별한 장소처럼 느껴지곤 했다. 새로운 문화가 있고, 거대한 건물이 즐비한 곳. 엄마가 종종 듣던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도 그런 느낌에 가까웠다.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그 노래를 흥얼거릴 때마다, 서울은 여전히 멀리 있는 미지의 도시처럼 느껴지곤 했다. 어딘가 상상 속에서만, 로망 속에서만 있을 것 같은 도시. 서울에 대한 그런 감상은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유효했다. 하지만 대학을 서울로 다니게 되면서, 그런 로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꿈이 직업이 되면 그것 또한 그리 즐겁지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일상 속으로 들어온 아름다운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1호선을 타고 회기동에 가는 게 익숙해질 때즘, 나에게 서울은 먹고사는 일을 연명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그저 공부를 하고, 이따금씩 동기들과 밥을 먹으며, 몇 시간 뒤에 있을 수업을 걱정하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까 걱정하는 곳. 나에게 이제 서울은 ‘상상 속’의 도시가 아니라, ‘일상 속’의 도시가 된 것이다. 그때 나는 경기도 평택에서 서울까지 등하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평택역에서 1호선을 타고 회기역에 내리기까지는 약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아침 10시 반 수업을 들으려면 집에서 최소 7시에는 나서야 했던 것이다. 그런 생활 속에서 '서울의 로망'을 찾기는 어려웠다. 전공 공부에 치이고, 등하교 시간에 치이고, 지하철 속 사람들에게 치이고, 그렇게 치이고 치이다 보니 서울에서의 삶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밤이 되면 거리를 비추는 수많은 불빛들과 여전히 붐비는 거리, 그리고 오늘이 끝이라도 되는 듯 젊음에 가득 찬 사람들. 대학 1학년 기말고사를 마칠 때쯤, 서울에 사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함께 기말 과제를 했던 적이 있다. 새벽 1-2시까지 정신없이 각자의 과제를 하다가,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우리는 친구의 제안으로 집 밖을 나서서 걷기 시작했다. 편의점에 들러 각자의 음료를 한잔씩 사고, 그대로 쭉 걸어 학교 캠퍼스까지 향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학교 안은 여전히 밝았다.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우리처럼 바람을 쐬러 나온 학생들이 그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보던 도시의 젊음이 이런 건가!' (오글거린다) 아무튼, 무언가 알 수 없는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그날 학교 캠퍼스를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공부와 각자의 고민, 그리고 미래에 대한 사소하고도 거창한 이야기들. 그날, 새벽의 학교는 우리의 위태로운 청춘을 품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일상과 로망을 넘나들며 서울 속에 살았다. 일상에 지쳤다가도, 어느 순간 로망에 빠져드는, 돌아보면 참으로 이상하고도 기이한 삶이었다. 그해 회기동의 골목은 따스했고, 때로는 시끌벅적했으며, 가끔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스무 살의 나는 그곳에 있었다. 


스물 하고도 4년이 더 지난 오늘. 서울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서울은

1. 아름답고도

2. 일상적이지만

3. 나에게는 여전히 외로운 곳이다.      


아마 나의 가족이 그곳에 없기 때문일 것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분이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서울에서 살아가야 한다. 내가 동경하는 꿈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고, 나를 위로하는 친구가 그곳에 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으나, 나의 삶을 담아낸 서울이 지금보다는 더욱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의 삶도 그만큼 아름답게 펼쳐졌다는 의미일 테니까.


서울. 그리고

수정.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두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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