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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Feb 09. 2022

겨울은 간다

영화 <봄날은 간다>

나는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 겨울이 사계절 중에선 그나마 나은 것이다. 봄이나 가을도 썩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겨울만이 가지고 있는 '온정'을 특히 좋아한다.


겨울은 춥다, 그래서 더 두껍게 입어야 한다. 제각기 떨어져 있던 손도, 추위를 이기려면 맞붙잡아야 하고, 제각기 떨어져 걷던 발도, 추위를 견디려면 붙어 걸어야 한다. 각각의 손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00원어치의 붕어빵이 들린 채로, 하얀 눈 위를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겨울이 그리 춥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올해 SNS에서 한창 유행이었던 '눈오리 만들기'는 우리를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그 시절, 우리는 한겨울에 바깥 놀이를 하면서도, 왜 추운 것을 알지 못했을까? 아마도 함께하는 친구들의 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놀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겨울은 여러모로 좋은 계절이다.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고, 즐겁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겨울이 좋다. 이토록 강한 추위가 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10마리의 눈오리들


이번 겨울은 유독 더 추웠던 듯싶다. 코로나19가 함께하는 세 번째 겨울이었기 때문일까. 나아지지 않는 상황과 거센 추위가 함께 들이닥치면서, 우리 사회를 더 꽁꽁 얼게 만들었던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이제 막 사회로 내던져지려는 시점에서 겨울은 더욱 혹독하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져 있을 수도 없었기에 무엇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높은 벽 앞에서 나는 무참히 깨질 수밖에 없었다. 겨울의 바람은 차가웠고, 내가 마주한 시간은 더더욱 차가웠다. 나는 나의 모자람을 인정해야 했다.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크게 상심했다고는 하지 않겠다. 아직 겨울이고, 나에게는 수많은 봄이 남아있음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로의 몸을 껴안고, 각자의 손에 붕어빵을 드는 것처럼, 나는 나의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겨울이 겨울이라 좋은 점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가 있고,  고난을 함께 이겨낼 온기가 있기 때문에, 나는  겨울이 좋다.




'하얀 눈'도 마찬가지다. 폭신하고, 무해한 그 눈을 바라볼 때면,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고,

언제 있었냐는 듯이 다시 사라지는 눈.


아무리 크고 넓은 발자국을 남겨도, 아무리 그 위에서 구르고 놀아도, 눈은 모든 것을 깨끗이 지우고 사라져 버린다. 이보다 더 순수한 것이 있을까. 눈이 오고, 다시 사라지는, 그 모든 순간을 볼 때마다 이 세상의 원리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과의 고리타분한 설명은 듣지 않겠다)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된 날에는, 괜히 오늘이 특별한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든다. 수많은 날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눈이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순백의 눈이 내리고, 다시 녹고,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이 땅에는 다시금 봄이 온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저렇게 눈 녹듯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좋지 않은 일도, 좋은 일도 일어나겠지만, 그 모든 일은 결국 눈 녹듯 사라지니, 그 모든 일에 큰 의미를 두고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삶을 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다. 눈은 결국 사라진다. 나의 아픈 순간순간도, 눈처럼 그렇게 사라진다. 겨울은, 그렇게 지나간다.




이제 곧 봄이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봄을 살아내겠지.


돌고 돌아, 다시 겨울이 왔을 때, 나의 '낮'은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다. 그 겨울엔 해가 조금 더 높이 떠있기를 바라본다.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열한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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