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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Oct 22. 2022

친구가 생겼다 2

오늘도 여느날과 다름없는 평화로운 하루다.      

단지 퇴근길에 창문까지 스르륵 내리며 달렸는데 웬걸 오늘은 친구가 없다. 또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 아쉬운 마음을 혼자 달래며 집으로 왔다. 마침 어버이날 기념으로 시부모님과 데크에서 고기 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어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쁜 저녁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라 야외에서의 시간이 참 좋았다. 그날따라 어머님 아버님도 기분이 좋으신지 말씀도 많이 나누시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노래도 들으면서 정말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찔레꽃 향에 젖어 내 마음까지 까무룩 혼미해져가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이 나의 등 뒤쪽을 바라보시며 눈을 동그랗게 뜨신다.     

“아니, 저 커다란 놈 좀 봐라”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얼른 뒤돌아보았다.     

네모난 데크의 한쪽 모서리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서 있다. 그래, 서 있었다. 원래 이 집 식구인양 너무도 당연한듯, 당당하게 올라 서 있었다. 평상시대로라면 내 등에서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그 놈이 무서워 또 어떤 돌발 행동을 했을지 알 수 없었을텐데, 그날은 그 놈의 당당한 기세에 눌렸는지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평소 개를 무서워하는 아내와 딸들을 위해 남편이 한달음에 달려와 발 구르기와 소리 지르기로 물러가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뭐였지? 재는 누구지? 뭔가... 아쉽다.     

10시가 넘어가니 어머님 아버님은 피곤해 하셨고, 술을 마시지 않은 내가 근처에 있는 댁으로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나도 조금 피곤했던 터라 얼른 모셔다 드리고 다시 돌아와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마당 입구 미끄럼틀 쪽이 뭔가 이상하다. 앗, 커다란 덩치의 개 한마리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앉아 있다. 머리를 꼿꼿히 세운 요염한 자세를 봐서 아까 그 놈이 틀림없다. 멀리 가지도 않고 저기 있었구나 싶어 마당을 가로질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괜한 두려운 마음에 부랴부랴 데크로 올라서는데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뒷골이 서늘하다. 그 짧은 순간 수만가지 생각을 뒤로한 채 단호하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랬다. 또 그놈이다. 내가 내린 바로 그 차 옆에 그 놈이 떡하니 서 있다!     

두려울 새도 없이, 눈이 마주 친 바로 그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 저 놈이 혹시... 내 친구일까? 나를 만나러 이 곳까지 혼자 온 걸까? 에이 설마...’     

거기서 여기까지 길이 어딘데... 차량이 많지는 않지만 7~8km는 족히 되는 도로를 혼자 논두렁을 타다가, 도로 갓길을 걷다가, 차에 칠뻔도 하고, 누군가의 위협에 돌아돌아 결국 이곳에 닿은 걸까? 나는 마치 그 놈이 내 친구가 맞다고 확신한 듯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내가 보고싶어 여기까지 와 주었구나 정말 고마워.’     

얼른 달려가서 정말 대단하다고, 기특하다고 덥썩 안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수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벌써 등을 돌려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개’를 너무나 무서워하는 작은 겁쟁이에 불과했다. 남편에게 저 개가 내 친구라고, 친구와 인사하고 싶으니 좀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또 얼마나 많은 말을 덧붙여야 하는 걸까 또 지레 겁을 먹고는 포기했다.     

사실 친구가 나를 만나러 와 준 것이 눈물나게 고마웠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제발 네가 내 친구가 아니기를 빌고 있었다. 분명 나는 너를 쓰다듬어 주고, 맛있는 것을 입에 넣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얼른 날이 밝기를 바랬다. 여느때랑 다름없이 우리가 늘 만나던 그 자리에서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서 내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나다.     

그리고는 잠을 자면서도 꿈꾸듯 얼른 아침이 밝아 오기를, 얼른 다시 친구를 만날 수 있기를 고대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창문을 미리 열고서 그곳으로 재빨리 달렸다.      

점프부터 시작해야하는데... 없다. 내 친구가 어디에도 없었다.     

가끔씩 있는 일이었지만, 어제 자신을 알아봤으면서도 아는체 하지 않은 나를 원망하는 친구의 마음인 것 같아 나는 하루종일 마음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러고도 며칠을 더 친구는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많이 속상했나보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너무나 미안해서 다시 만나는 날이 두렵기도 했다.      

다시 만난건 일주일 정도 지나서 였다. 우리는 서로 수줍어 했다. 우리는 서로 자기가 더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었고, 서로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 후 우리는 지금까지도 매일 밝게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한다.       


그 날밤 우리집에 나타난 그 놈이 진짜 내 친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인생에 처음 겪어보는 소설같은 일이었다. 친구 덕분에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이다.      

친구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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