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언제 뜰지도 모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저녁은 뭘먹지 그리고 내일은 또뭐하지 하여간 내가 뭘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도 모르는 무의미한 시간 속에 서성이다 보니 하릴없이 지난 일들을 들춰가며 하나둘 곱씹어 보고있었나보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해질 무렵 들려오는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그런 내 맘이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하는 가사의 이런노래 들이 오래전 추억들을 불러오게 만들었다. 결국 청양고추를 넣고 끓인 번데기 접시 앞에 놓고 술잔에 기대어 지나간 시절을 되돌아보며 과연 내가 만난 여자 친구 중 진실된 사랑을 나눈 사람은 몇이나 될까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어 보는 나, 죽을 때가 되니 별짓 다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민망한 웃음을 짓게 된다. 그러면서도 남아있는 기억을 되살려 짚어보니 그래도 서로의 추억이 남아 있고 이름이 생각나는 친구는 열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그저 스쳐 가는 바람처럼 쉽게 만나고 헤어진 그야말로 바람이라 생각 됐다. 그들과의 이런저런 애틋한 사연은 소설을 쓸 정도라서 생략하고 첫 번과 마지막으로 나눈 사랑을 떠올려 봤다. 그런데 그들 나이가 나보다 두 살 연상이었다는 사실 참 남다른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방학 때 놀러 간 친구 시골집 동네에서 알게 된 그에게 호적 탓으로 내 나이를 속이며 사귀게 된 종순이를 떠올렸고 나와는 몇번의 만남을 가진후 고3 올라가던 어느 추운 겨울날 추수가 끝나 쌓아둔 낟가리 안에서나의 머리를 올려 주었던 여자다. 처음 그녀에게 순정을 바친 나는 갑자기 어른이 다된 양 친구들에게 무용담처럼 자랑스레 얘기하곤 했다. 그러나 나중에 학교까지 찾아오는 그녀에게 뭔가 두려움을 느껴 연락을 끊고 말았지만 발그스레한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나이 들어 미국에서 알게 된 사람은 몇 년 동안 만나는 날이 마지막인 듯 서로 격정적인 많은 사랑을 나누었고 그는 내게 속궁합의 의미를 새삼 느끼게 만들어준 사람이다. 12 시간 비행의 피곤함도 무릅쓰고 오작교를 건너듯 오가는 애틋한 만남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지금은 서로 안부를 묻는 정도로 지내게 되었고 그게 나의 끝 사랑이 되었다. 지금 세태와 비교해 본다면 고전과 같은 러브 스토리일지는 몰라도 순수한 사랑이었기에 그 느낌과 설렘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 같다. 오래전 영화"별들의 고향"에 나 오는 대사처럼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 보는군 하는 그 말이 얼마나 짜릿했던지 나도 군복무 중 면회온 내 여자 친구에게 써먹은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나 서먹한 여자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기가 쑥스러워하던 중 해본 말이었는데 그 친구도 영화 속의 그대 사가 기억나는지 서로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서로를 그리워하던 시절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밤을 보내던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행복해진다. 여자 친구와 짧았던 밤을 보내고 헤어질 때면 늘 뭔가 허하고 아쉬운 마음에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뿜던 내 모습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알랭들롱의 영화에서 보았던 한 장면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경험한 불륜과 외도라는 단어를 굳이 지우라면 그러겠지만 그 밖의 사랑에 대한 기억은 지우기 아쉬워 마음 한구석 몰래 담아두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미련은 남아 있을 수 있겠지만 후회하기 싫은 나의 자화상이라 말하고 싶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을 나누었던 그런 시간을 다시 가질 수는 없겠지만 나와 함께 사라질 잔상이기에 거리낌 없이 써본 글이며 서로가 누구 것도 될 수 없다며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소리치는 어느 광고의 멘트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아있다. 추억만 남기고 모든 게 거의 바닥난 지금이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그때를 되돌아보며 한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안부를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