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꿈 - 될성부른 새싹

글쓰기의 꿈 1

by 김약

책과 나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생 때 나는 몇몇 아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종종 문학소녀라고 불리곤 했다. 그러나 실상 내가 책과 가장 가까웠던 시기는 중학생 때가 아니었나 싶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고2 때까지는 그럭저럭 도서관을 찾은 걸로 기억하지만) 공부를 이유로 점점 책과 멀어졌고,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면서는 활자와 정말이지 동떨어진 생활이었다. 20대 초입의 나는 익숙한 종이 속 세계가 아닌 실제로 맞이한 낯설고도 새로운 현실 세계를 탐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도서관을 소개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시절이 이젠 까마득하게 느껴질 때쯤 친구가 말했다. 순하고 무던한 성정의 친구는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제일 먼저 사귄 친구였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책을 좋아했다. 아직도 고등학교 친구하면 바로 이 아이가 떠오르는 걸 보면 여러모로 나에게 각별한 친구였음이 틀림없다. 그런 나름 내 친구계의 한 획을 그은 친구가 말한 것이다. 자기가 나를 제일 처음 인식한 순간이 바로 이 자기소개 시간이었다고 말이다.


솔직히 나는 고등학교 입학 후 가진 첫 자기소개 시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친구에게 말을 전해 들으면서도 그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자기소개라니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가. 그러나 친구는 단순히 옛이야기를 가볍게 꺼낸 것 뿐인지 어리둥절한 내 반응과 상관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나는 간략히 자기소개를 한 후 엉뚱하게도 학교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자기소개 그리고 도서관. 두 단어가 합쳐지니 무언가 반짝 생각이 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내 입으로 나를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게 쑥스럽고, 말도 잘 나올 것 같지 않아서 간략히 내 이름을 말한 다음 대뜸 주제를 도서관으로 돌렸던 것 같다. 새 학기 초라, 학교 내 건물 위치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긴 좀 이른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반 아이들에게 내가 일찌감치 도서관 위치를 알고 있음을 어필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고 싶다면 같이 가자고, 나를 찾으라고 말했다.


누군가 한 명을 특정한 것이 아닌 반 전체를 향한 메시지였다. 나는 마음이 활짝 열려있으니 나를 찾는다면 언제든지 친목을 도모할 의향이 있다는 완곡한 표현이기도 했고, 또 사소할지라도 자기소개 시간에 도서관을 언급한 것에서 나를 어느 정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 상대가 책에 관심이 있다면 대화의 물꼬를 트기 어려움이 없을 테고, 내 제안에 제안으로 답한 결과로 행해질 도서관 동행은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그만일 터였다. (친구 사귀기 참 쉽죠잉~)

그러나 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 것과 함께 당시의 황당함을 여실히 간직하고 있는 친구의 반응을 보면, 자기소개와 도서관에 가자는 내 말 사이에 적절한 연결고리는 영 부족했던 것 같다.


친구의 사소한 말 한마디로 나는 내가 고등학생 때도 익숙하게 도서관을 찾다 못해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꽤 자주 이루어진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자기소개에 써먹을 정도로 심적으로 가깝고 편히 여겼다는 걸 새삼 떠올렸다. 좋은 대학을 간다는 명목하에 책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생각했는데, 그리 많이 멀어졌던 건 또 아니었나 보다.


응달진 서가 앞에 서서 책을 고르고, 내 키보다 한층 높이 꽂혀있는 책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고요했던 그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도통 꺼낼 일이 없어 잊고 있었지만, 책 속의 한 페이지처럼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분명하게 말이다.













자기중심적 사고



친구는 나를 처음 본 순간을 짧지만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지 못했기에 그 애가 그 옛날 나를 처음 인식한 순간을 여즉 기억하고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신기하고, 고맙고, 내가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하기도 했다. 도서관에 가자는 내 말이 퍽 인상적이었던 걸 수도 있고, 자기소개 시간에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지만 나는 기뻤다.

그러나 그도 잠시, 웃기게도 나는 자기소개를 할 때까지 같은 반에 내가 있는 줄도 몰랐다는 사실이 무척 실망스럽게 다가왔다. 비대한 자아에 비해 터무니없이 희미한 내 존재감에 경악했으며,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실망을 넘어 충격이기까지 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나를 몰라볼 수 있는가?

친구의 한마디로 끌어올려진 기억에 따르면 10대 후반의 나는 뚝 떨어진 낯선 환경에 기민하게 주변을 살피고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하려 애쓴 결과, 자기소개 시간이 도래했을 땐 이미 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대충 다 꿰고 있었다. 그래, 분명 나는 자기소개 시간 이전부터 내 친구를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글쓰기를 마음에 품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단적으로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으로 보인다. 모두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살겠지만, 난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글'은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내 세상을 충만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명실상부하게 내가 주인공이었다.

어릴 때는 모르고 그런다지만, 성인이 돼서는 어느 정도 알면서도 그랬다. 실제 각자의 세계에서는 본인이 주인공이니 영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내가 정말 1차원적으로 그리 생각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 반 기질 반으로 형성된 투철한 자기애로 인해 나는 나로 가득 찬 좁은 세상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바뀔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중요한 내가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님을 몸소 체감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많이 아프고 머릿속 완고한 무엇이 강제적으로 많이 깨지고 물렁해지고 나서야 나는 내가 누군가에겐 주변인임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생일선물



때마다 돌아오는 친구의 생일이면 나는 작은 선물과 함께 짧은 편지를 동봉했다. 선물은 (특별히 당사자가 원하는 게 있지 않은 한) 대체로 학교 앞 서점에서 파는 책이었다. 다분히 내 취향이 반영된 결과였는데, 내가 읽은 후 정말 추천하지 않곤 배길 수 없어서 더 많은 사람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택한 책도 (정말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나 새로 나온 신간 소설을 개인적인 사심을 담아 고르곤 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남들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 여긴 건지. 모두가 나와 같지 않을 수 있다고 설핏 생각은 하면서도 영 마음에 닿지 않아 은연중에 놓쳐 버린 건지 모르겠다. 책에 대한 욕심에 눈이 멀어 머릿속 명제를 따라가지 벅찼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받는 이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선물이 얼마나 효용이 있었을까. 과연 그 책들이 한 번은 읽혀서 세상에 나온 자신의 소명을 이루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면, 글쎄 많이 늦었지만 생일자 본인에게 한순간 기쁨이라도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선물한 만큼이나 나 또한 고등학교 3년 동안 생일선물로 책을 제일 많이 받았는데, 그중 끝까지 다 읽은 책은 정말 손에 꼽는다. (몇 권이나 될까) 아직도 그저 책장을 장식할 뿐인 책을 바라보고 있자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적어도 지금의 나라면 상대를 위한 생일선물을 한 품목 안에서 일률적으로 택하진 않을 텐데 말이다.













문학소녀



취미랄까. 나는 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꽤나 자주 편지를 썼다. 내가 가진 생각과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더도 덜도 없이 내가 원하는 정도와 깊이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의미를 유지한 채 미묘한 뉘앙스까지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고심하다 마침내 딱 맞는 단어나 어휘를 찾을 때면,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과 함께 특유의 짜릿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생각하지만, 짧은 한순간일지라도 서로 이어질 수 있음에 안도한다. 비록 짧게 교차할 뿐이라 해도 진정 만났으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로 한정하자면, 당시 나에게 글이란 주로 친구에게 쓰는 생일 편지 용도였다. 신경 써서 편지지 여러 장에 걸쳐 각 잡고 쓴 긴 줄글 일 때도 있었고, 가끔은 정성 들여 직접 만든 편지지에 예쁜 글씨로 꾹꾹 눌러쓰기도 했으나, 많은 경우 책 앞쪽 색지에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의 짧은 편지를 쓰곤 했다.


내가 떠나보낸 글귀는 대부분 휘발되고 곧 잊혀졌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내 귀에 들려오곤 한다. 어릴 적 받은 감동적인 편지에 대해 아직도 이야기하는 걸 보면, 기억에 남길 바라는 의도를 담은 내 글이 생각보다 더 당사자에게 와닿았던 것 같다. 진실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에 상관없이 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긴 편지 특성상, 대상이 정해져 있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글이었다. 애정을 담아 말을 고르고, 상대를 향한 내 생각과 감상을 들려줄 수 있는 선 안에서 솔직하게 내보인 정성 어린 글이었다. 더불어 그 나이대 아이에게 (어른이 되어도 나는 여전하지만)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은 어찌할 바 없이 귀를 쫑긋하게 되는 법이니, 누구든 나를 생각해 준다는데 그 누가 좋지 않겠는가.


풍부한 표정, 즉각적인 행동(빠른 피드백), 몸짓/손짓 등 자연스러운 제스처, 음악, 노래, 몸으로 말하는 언어, 춤, 말, 글 등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나는 글이라는 도구를 가장 선호해왔다는 걸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시간을 곰곰이 반추하다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글을 통할 때 가장 만족도가 높으며 동시에 가장 나답다는 생각을 한다. 글은 나를 드러내는데 정도나 깊이를 따지지 않으며 시간제한도 없다. 특히 타인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내 뜻대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나는 한 번도 스스로를 문학소녀라 지칭하지 않았는데, 문학소녀라는 단어가 당시 정말 소녀였던 나에게 조금은 촌스럽기도 하고, 고색창연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왠지 7, 80년대에 사용할 법한 시대 언어 같은 느낌이랄까. 단어에 대한 낯섦과 함께 왜 날 그리 부르나 의아하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다들 이 정도는 좋아하지 않나? 어렴풋이 내가 좀 더 좋아하는 건 같긴 하다 싶었지만 나를 정의하기엔 불충분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10대의 나는 사람의 내면을 묘사한 글을 읽을 때면 다 내 얘기라 여겨졌다. 온 세상이 나로 가득 차 있었다. 나를 잘 알지 못해서 개인적 선호와 특성을 쉽게 일반화하여 생각했다.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였기에 세상 속의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다. 책 속 인물처럼 내가 정말 그런 말과 행동을 할 인물인지, 내가 어떤 류의 인간인지에 대해 생각할 새 없이 무방비하게 빠져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일방적인 수용은 쉬웠다.


나조차 잊어버린 내 글을 기억하고, 나를 보면 머쓱하지도 않은지 꾸준히 문학소녀라 부르는 친구가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나조차 잊은 내 옛 모습 중 특히 문학적 소양을 좋게 보았던 게 아닌가 싶다. 기억해줘서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리고 시간이 돌고 돌아 나를 알고, 과거를 돌이켜보니 그럴 법도 하다며 나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읽고 쓰는 것을 즐기던 나는 말 그대로 문학과 가까운 소녀였음이 틀림없다. 내가 인식하기 전부터 그보다 어렸을 때부터 쭉 그랬을 터였다.













작가라는 꿈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자니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더 있다. 수능이 끝나고 몇 없는 학생으로 교정이 한가한 어느 날이었다. 졸업이 얼마 안 남은 이 시기에 나는 뒤늦게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었는데, 이심전심인지 감격스럽게도 그 친구에게서 여러 장으로 된 긴 편지를 받았다. 그 친구는 3년 동안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도 별로 말을 섞을 일이 없었고, 그 아이에게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아서 빈말이라도 친하다 할 수 없었다. 말을 몇 번이나 섞어 봤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애의 어깨까지 오는 둥근 단발과 윤기나는 검은 머리칼, 하얗고 고운 가르마가 그리는 정갈한 선을 선명히 기억한다.


내가 좋아했던 그 친구가 나에게 편지를 썼다. 몇 겹의 편지지로 두꺼워진 봉투를 들고 홀로 지켜보기만 하던 남자애에게서 러브레터를 받은 것마냥 설레었다. 나를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적었을 편지가 나를 기쁘게 했다. 여러 장의 편지 속에서 가끔씩 떠올리게 되던 말은 언젠가 내가 쓴 책을 읽고 싶다는 말이었다. 내가 작가가 되면, 자신이 바로 1호 팬이니 기쁘게 그 책을 꼭 읽고 싶다는 말에 나는 '내가 무슨 작가가 돼' 싶으면서도 긴 시간이 지나도 나를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는 말로 들려서 마음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 이전에도 이후로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글을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쓰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더불어 작가라는 직업이 내 손에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과 책과 작가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기억 속 잊혀진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