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가 필요해)
두통이 잦은 사람은 두통이 올 것 같은 낌새가 있으면 약부터 찾는다. 아프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고 미리 약을 복용한다기보다 (그런 경우도 물론 있지만) 나의 경우, 필요할 때 가능한 한 빨리 약을 복용하기 위해서였다.
더는 참기 힘들어지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바로 약을 먹기 위해 스탠바이하고 있달까. 늦으면 늦을수록 홀로 통증을 견디는 괴로운 시간만 길어지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게 됐다. (편두통 전조증상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 전조증상이 없더라도 두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오기 때문에 두통 발작에 앞서 미리 약을 먹어도 괜찮다. 어차피 아플 거니까..)
진통제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된 지 오래였다.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 바로 지금, '참기 힘들다'를 넘어 '더는 참을 수 없는' 지점에 나름대로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외출 시 가장 먼저 약부터 챙겼다. 약을 먹는다 해서 통증이 만족스러울 만큼 완화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예전 같지 않다 해도 아예 효과가 없진 않았으니까. 약을 준비하는 것 외에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다.
약 없이 빈손으로 나가지 않았다. 두통이 내 생활 전반을 장악하고 있었으니, 하루 내내 함께하는 두통과 (그나마) 이를 줄여줄 수 있는 약에 집착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 터였다. 그러나 나는 아프기도 전에 앞서 걱정하고 초조해하며 비이성적일 만치 집착적으로 통증에 주의를 기울였다. 불안이 해일처럼 내 일상을 덮쳤다.
본능이 빨간 불빛을 깜빡이며 경고를 보낸다. 통증이 다시금 시작되리라는 내 우려가 단순히 걱정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된다.
언제 올지 모를 고통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급하게 진통제를 복용하기를 여러 번, 불안이 잦아들 길이 없었다. 통증을 견디는데 온 힘을 쏟느라 알아채지 못했을 뿐 그때 나는 항상 불안했던 것 같다.
당시엔 출퇴근 외에는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아서 기억의 대부분이 지하철로 한정된다. (일을 그만둔 이후는 더 외출을 하지 않았다) 운 좋게 빈자리가 나면, 힘없는 몸을 끌고서 용케 빈자리에 착석했다. 생존본능이었다.
휘청휘청 걷다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서 있는 것도 피곤했다. 의자 쿠션에 눕듯이 온 등을 기대앉았다. 널브러지듯 온몸을 맡긴 것도 잠시, 몸을 추슬러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고개를 푹 숙이면 무게중심이 절로 앞으로 옮겨졌다. 땅에 박을 것처럼 고개를 처박아서 남들이 보기에 조금 이상하게 보이겠다거나, 지금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티가 날 법한 자세라는 생각도 한순간 들었지만, 내 코가 석자라 오래 신경 쓸 수 없었다. 땅으로 파고들 것처럼 고개를 깊게 숙이고 눈을 감았다. 어둠 속으로 나를 인도했다.
까만 세상이 색색깔의 셀로판지 안경을 쓴 것처럼 반전된다. 감은 눈앞에서 빨강, 노랑, 초록 형광등을 차례로 껐다 켠 것처럼 검은 시야가 차례로 번쩍거린다. 까만 머릿속도 같이 깜빡거리는 기분. 눈을 감았는데 눈이 부신 것도 같다. 점멸하는 불빛이 뇌를 자극해서인지 혹 내 머릿속에 문제가 있어선 지도 모른다.
증상은 복합적이다. 머리가 조이고, 지끈거린다. 그러나 일반적인 통증과 결이 다른 불쾌감을 견디는 것이 가장 힘들다.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늘 참을 수 없는 순간이 도래한다.
이제는 익숙한 두통과 설명하기 힘든 거북한 느낌이 내 머릿속을 장악한다. 생각만으로 진저리 칠만큼 불쾌한 감각이다. 띵하다. 머리가 흔들린다. 울렁이는 것 같다. 어지러운 걸까? 아, 이제 더는 견딜 수가 없다.
주섬주섬 가방 속에 소중히 품고 다니는 약 파우치를 꺼낸다. 지퍼를 열어 편두통용 진통제(나라트립탄), 일반 진통제(나프록센, 이부프로펜), 마그네슘, 근육이완제, 속 쓰릴 때 먹는 위장약, 짜 먹는 위장약 등 내 전용 비상약 틈에서 편두통용 진통제를 찾는다.
이런, 물이 없다. 고심하다 침을 모아 약과 함께 삼키기로 한다. 입안이 말라 침이 잘 나오지 않는데 약이 넘어갈까 싶다. 그러나 알이 크지 않아서일까,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문득 목구멍에, 혹 식도에 약이 턱 들러붙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다행히 걱정이 무색한 상상으로 남는다.
만약 조금 더 참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혹 곧 내릴 거라면 손안에 약을 소중히 그러쥐고는 그다음 그다음 역을 지나 내가 내릴 역에 닿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손아귀 안의 땀과 습기로 인해 알약이 손바닥에 쩍쩍 달라붙는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사의 음료 자판기를 찾는다. 그렇게 생수 사 먹기를 여러 번, 언젠가부터 내 가방 속엔 작은 생수병 하나가 자리 잡게 됐다.
비록 큰 효과가 없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진통제 효과를 크게 체감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약을 챙기지 않고는 밖을 나서지 못했던 나처럼 말이다.
내가 약에 정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식한 것은 동네 신경과를 다니다 대학병원으로 병원을 옮기기로 마음먹었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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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서는 기존에 먹던 예방약 대신 (고작 열흘 먹었다) 토피라메이트로 예방약을 변경했다. 이때 편두통용 진통제는 따로 처방받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내 손에 남은 진통제는 이전에 방문했던 강남 신경과에서 처방받은 나라믹정(제일 처음 먹은 트립탄) 뿐이었다.
대학병원에서는 편두통 예방약 토피라메이트(Topiramate)를 37일분 처방받았으며, 다음 내원일은 대략 한 달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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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라메이트(Topiramate)를 복용한 후, 놀랍게도 나도 하루 만에 의미 있는 효과를 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그리 빨리 효과 보는 약이 아니라고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했지만 어쨌든) 편두통 예방약을 변경한 후 나는 훨씬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피라메이트(Topiramate)를 복용하고 2주가 지났을 때 즈음 나는 도저히 내가 예방약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진통제로는 전혀 두통에 효과를 볼 수 없었고, 그나마 효과가 있는 약은 편두통용 진통제(트립탄)인 나라믹정 뿐이었다. 아껴먹으려 애썼으나 빈번히 복용한 바, 결국 나라믹정마저도 얼마 남지 않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 얼마 남지 않은 약으로 다음 내원일까지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버텨야 했다.
위기감이 들었다. 얼마나 긴 시간이란 말인가! 이만으로 남은 기간을 버티기란 불가능했다. 불안했다. 두통을 위해서 아니,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나에겐 여분의 나라믹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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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토요일이었다. 가족들은 각자의 일정으로 집을 비워 나 혼자 남았다. 고요했다. 불 꺼진 거실 소파에 몸을 꾸깃꾸깃 구겨 누운 나는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힘겹게 관망하고 있었다. 아픈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견디던 와중, 익숙한 불안이 어김없이 나를 덮쳤다.
다음 내원일까지 남은 시간은 2주 정도였다. 하루에 한 알을 먹는다 치더라도 나라믹정은 고작 일주일 치 가량 남아있을 뿐이었다. 지금 내 상태로 보건대 남아있는 진통제는 턱없이 부족했다. 약을 다 먹으면, 남은 일주일은 그냥 생으로 버텨야 했다.
가능할까? 매일, 매시간, 매초 약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데,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순간에야 손을 뻗는 이 약마저 없어진다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고 일주일을 견디기에는 현재도 충분히 버거운 나날이었다. 나는 약 없이 버틸 수 없었다.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랬다. 하루하루가 느리게 흘러갔다.
심하게 아플 게 뻔히 보여서 겁이 났다. 약이 부족해질까 봐 걱정됐다. 언제 또 움직이지 못하게 될지 모르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약을 확보해놔야 되지 않을까?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통증을 가누지 못해 힘겨워하면서도 나는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계산을 마쳤다.
생각해 보니 가능한 날이 없었다. 퇴사 의사를 밝혔음에도 일을 그만두기까지 아직도 대략 2주의 기간이 남아있었고, (그냥 말하자마자 그만둘걸!) 남은 연차는 없는 고로 (평일에 쉴 수 있는 날이 없다는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내가 병원에 갈 수 있는 날은 일주일 중 단 하루, 토요일뿐이었다.
나는 나라믹을 더 확보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날이 흐렸다. 회색빛 하늘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무심코 옷장에서 검은 모자를 꺼냈다. 머리 깊숙이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시선 속에서 나를 멀리 떨어뜨리고 싶었다. 아니, 세상 속에서 나를 삭제하고 싶었다. 내가 사라지면 고통도 사라질 거라 생각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여러 자극이 버거웠고, 어떻게든 멀어지고 싶었다. 햇빛과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진실로 내가 피하고자 했던 건 두통이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를 원치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미미해서 고작 시야를 조금 가리는 모자를 눌러쓰는 것뿐이었다.
내 눈을 가린다 해서 타인이 나를 보지 못할 리 없다. 그런다고 나를 괴롭히는 두통이 없어질 거라 생각한 것 또한 아니다. 의미 없는 행동일지라도 나는 땅에 머리를 처박는 한 마리의 덩치 큰 새처럼 내 눈을 가렸다. 모양뿐일지언정 나에겐 나를 보호할 방어막이 필요했다.
내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천적도 사라질 거라 믿는 건 아니었지만, 세상과 자극과 고통 그리고 나 사이에 이어진 끈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그로부터 나를 차단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그 비슷한 행동이라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