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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Sep 05. 2022

정신과 2 - 엉겁결에 정신과

(신경정신과가 뭐에요)

나라믹정을 위하여 - 신경과 찾기



지도 앱을 켜서 신경과를 검색했다. 찾아보니 의외로 집 근처에 신경과가 많았다. 한 곳을 정하지 않고 우선 크고 작은 메디컬 빌딩이 여럿 있는 병원 밀집 지역에 가보기로 했다. 신경과만이 아닌 다른 여러 병원이 모여있는 큰 사거리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웠고, 걸어갈 만했다.

사거리에 도착해서 다시 한번 지도 앱을 켰다. 현 위치에서 가까운 거리 순으로 뜨는 신경정신과 목록 중 한 곳을 골라 전화를 걸었다. 


병원은 대학병원에 계속 다닐 생각이어서 그때 나는 새로운 신경과 의사선생님을 만나 내 두통 증상을 설명하고 도움을 얻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시 복용하고 있던 편두통용 진통제(나라믹정, 트립탄 제제)를 처방받는데 내 온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전화를 걸자마자 트립탄 처방이 가능한 지부터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병원에서 곧잘 듣곤 하는 익숙한 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했나.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와 몇 차례 문답을 주고받다가 '처방은 의사선생님이 한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평소 먼저 말을 거는데 그리 열성적이지 않는 나지만, 약을 얻겠다는 일념 하에 질문을 바꿔 재차 물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행동한 결과 원하는 답을 얻었다. 실은 이 또한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라믹정이, 그러니까 간호사는 트립탄이 어떤 약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신경과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편두통약인 트립탄 제제를 모를 수 있나?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니기에 설핏 든 생각을 그대로 무시했다.


나는 이 병원에서는 '트립탄을 처방 낸 적이 없다'라는 말로 알아듣고 전화를 끊었다. (간호사가 모르는 것으로 보아 그러하리라 예상됐다)  













나라믹정을 위하여 - 약국 전화



나라믹정을 얻기 위한 가장 첫 단계인 '신경과 가기'부터 벽에 막히자 어찌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무 수확 없이는 못 간다) 잠시간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길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자리에 서서 천천히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낮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사람, 사람, 사람들이 보였다. 어딜 그리 가는지 건물 사이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틈으로 병원이 보였다. 일부로 병원이 많은 곳을 찾아왔지만 병원이 참 많았다. 병원, 병원, 병원, 그리고 약국이 보였다. 내 눈에 유독 잘 보이는 약국이 하나 있었다. 


약국이 눈에 들어오자 (당연한 말이지만) 약국에 약이 있어야 약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근처 병원에서 나오지 않는 처방이거나, 환자가 지정하여 특정 약을 받는 경우 (평소 쓰지 않는 약이라면) 약국에 약이 없을 수도 있었다. 

시중에 나오는 모든 약을 공간이 한정된 조그만 약국에 다 구비해 둘 순 없다. 그러니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진료가 아닌 '약'이라면, 약국에 전화하는 게 먼저였다. 두 번째 전화는 병원이 아닌 약국에 걸기로 했다. 


병원이 많은 만큼 약국도 많았다. 나는 가장 먼저 내 눈에 띄었던 대로변 1층에 있는 약국에 전화를 걸었다.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라믹정 있는지 물었다. 앞서 연락한 병원의 간호사가 트립탄을 못 알아들었던 터라 이번엔 내가 받고자 하는 나라믹 편두통 약이고, 성분은 나라트립탄이라 미리 설명했다. 


약국에서는 나라믹 없지만 졸믹은 있다고 했다. 졸믹은 졸미트립탄 성분의 편두통용 진통제이다. 이 약국에서 나라믹과 같은 트립탄 계열의 졸믹을 취급한다면, 나라믹도 충분히 구해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 당장은 없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전화한 약국과 같은 건물에 있는 신경정신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라믹정을 얻기 위해서였다.













엉겁결에 정신과



나는 분명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신경과를 찾았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이게 웬걸, 신경과가 아닌 정신과였다.

아니 '신경정신과'라며! '신경정신과'는 신경과와 정신과가 합쳐진 거 아니야? 당연히 이름 그대로의 의미라 생각하고 병원 문턱을 넘었는데, 정작 내가 만난 의사는 정신과 선생님이었다. 


처음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넓지 않지만 깔끔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병원 치고 고층에 있어 바깥과의 소음이 차단돼 조용했고, 대기 환자는 없었다. 딱히 특별할 게 없었음에도 이때껏 병원에서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을 느꼈다. 약간은 낮은 조도와 일정하게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긴장이 풀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정신과인가?) 

병원 인테리어에 삐까뻔쩍 과하게 신경 쏟을 필요는 없지만, 그 공간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면 (정신과의 경우 특히나) 플러스 요인이 되겠다는 의외의 부수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들어가서 데스크에 내 인적 사항을 말하고 기다렸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 잠시지만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평온함이 깃들었다. (이후 방문할 때마다 사람이 많았는데, 이날만 유독 사람이 없었다) 처음 온 장소가 낯설었음에도 금세 익숙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여전히 몸은 아프고 고단했지만, 나만의 비밀 장소를 찾은 듯한 느낌에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초조함도 잦아드는 기분이었다.


사실 병원 문턱을 넘자마자 알진 못했다. 내가 온 곳이 정신과라는 것을.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선생님을 만나고, 대화하고 나서야 알아챘다. 

그러니까 내 첫 정신과 방문은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신경과를 잘못 찾아가면 정신과에 갈 수가 있는데, 내가 그렇게 (병원을 잘못 찾아서) 정신과에 간 경우였다. 













'신경정신과'가 뭡니까



신경과를 가려다 의도치 않게 정신과를 가게 됐으니 심히 당황스러웠다. 정신과는 '정신건강의학과'라 써놔야지 왜 사람 헷갈리게 신경정신과로 써 놓은 거야? 

'신경정신과'라는 단어는 정말이지 혼동하기 쉬운 명칭이다. '신경정신과'라 하면 신경과 정신과 진료를 같이 보는 줄 알기 딱 좋지 않은가. 굳이 굳이 신경과를 찾은 나마저도 정신과에 오게 만들다니,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방문한 병원은 그냥 신경이라는 말만 붙은 정신과였다.  






신경정신과
= 정신과
= 정신건강의학과






'신경정신과'라 하면 보통 정신과를 말한다. 예전엔 같이 했는지 모르겠는데, 진작에 (1982년) 신경과 정신과로 분리됐다. 


두 과를 분리한 이후, 정신과 진료를 봐야 할 사람이 신경과로 잘못 찾아가는 경우가 잦았던 듯하다. 

또 정신병이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정신과에서는 정신 앞에 신경을 붙여 '신경정신과'로 스스로를 지칭하곤 했다. 정신과의 40%가량이 진료과목 명칭을 정신과가 아닌 '신경정신과'로 하고 있었다고 하니 대략 상황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신경정신과'가 신경과와 정신과가 분리된 이후에도 정신과에서는 '신경정신과'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이름은 명확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해는 한다만) 괜히 나처럼 길을 잃는 자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애매모호한 명칭 때문에 신경과를 가야 할 사람이 정신과에 가게 되지 않았나.


정신과 명칭이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된 건 2010년대 이후이다. 정신과에서는 정신병이 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개명을 원했다. 또 신경과학회에서는 '신경과와 정신과는 독립된 진료영역인데, 정신과가 신경정신과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라며 시정을 요구했다. (정말 옳은 말이다) 


그 결과 2010년 정신과에서 사용하던 '신경정신과'의 명칭이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됐다.














나 같은 사람 또 있을 거야



아무리 그러더라도 병원을 찾을 때 추가적으로 한 번 더 확인을 거쳤다면, 정신과가 아닌 신경과라는 걸 미리 알았을지도 모른다. 지도 앱에서 찾은 병원 정보에 '신경정신과'라고 쓰여 있기에 다소 오해할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자세한 진료정보를 확인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1명 있음을 미리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신경정신과 의사라고 나와서 소용없으려나? 지금 와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신경과가 아닌 정신과 전문의가 있다는 걸 미리 확인했다면,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정신과였다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또 거기까지 알아보진 않았지) 

이토록 손쉬운 방법 이건만, 이런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나름 찾아보고 갔음에도 이런 결과라니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이 꽤나 있었을 거 같다.













신경과 찾기 쉬워졌어요



과거 나는 지도 앱에 신경과를 검색했고, 검색 결과 '신경정신과'가 나왔다. 그땐 분명 그랬다. 그러나 최근 이 글을 쓰며 다시 신경과를 검색하자 그때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검색 결과, 대부분 '정신건강의학과'가 나온다. 이제 '신경정신과'라는 말을 찾아보기 쉽지 않아 진 듯하여 속이 다 시원하다.






과거) 신경과 검색 → '신경정신과' 나옴 


현재) 신경과 검색 → '정신건강의학과' 나옴





그러나 과거에나 지금이나 신경과를 찾았음에도 검색 결과에는 (여전히) 정신과가 많이 나온다. '신경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단어만 바뀌었을 뿐이다. 

왜 그런진 알 수 없지만, (아마 신경과 수가 적어서가 아닐까?) 2010년 이후 정신과를 부르는 명칭이 '신경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내가 찾은 병원이 신경과인지 아닌지 한눈에 판별할 수 있게 된 점은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과거) 신경정신과 
→ 신경과야? 정신과야? 헷갈리네.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 정신과네? → 잘못 검색했군!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전화 걸었던 '신경정신과'도 신경과가 아닌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간호사 입장에서 트립탄 제제가 생소하게 다가왔던 게 아닐까 뒤늦게 생각해 본다.


물론 현재도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하지 않고) '신경정신과'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있는) 정신과 병원이 있다. 

또, 신경과와 정신과 진료를 다 보는 진실로 이름 그대로의 '신경정신과'도 있다. 과거에는 신경과와 정신과 함께 다루었기 때문에 과거에 전문의 자격을 딴 의사이지 않나 싶다. (현재는 신경과와 정신과를 구분하고 있지만, 1982년 의료법상 두 과가 분리되기 전까지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있었다)


그러나 보통 '신경정신과'는 정신과를 말하니 '신경정신과'를 신경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두통이 있다면,

신경과(신경내과)나 신경외과를 가자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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