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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Dec 08. 2022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도 벚꽃은 피고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우리는 5월 5일에 결혼했다. 한겨울에 꽁꽁 코트로 싸매고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식장이 마음에 들어서 상담실에 들어갔다. 결혼식을 같이 다니면서 예행연습을 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지만 상담은 처음이었다.     


“3개월 전에만 취소하시면 예약금을 전부 반환해 드려요. 날짜 한번 보시고 가세요.”     


달력을 보다 보니 글쎄 5월 5일이 토요일이었다. 그 날짜를 보자마자 이날이 내가 결혼을 해야 하는 날임을 직감했다.


교대에서는 어린이날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행사를 한다. 그때의 따뜻한 공기와 빛나는 색감과 초록의 잎사귀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평생 서로 잘 챙기기만 한다면 어린이날에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올해도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직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어린이날을 맞아서 봄 체육대회를 열었을 것이다. 청팀 백팀으로 나누어서 공 굴리기도 하고 계주도 했을 텐데. 운동장에는 휘날리는 만국기 대신 텅 빈 고요만 감돈다.      


우리 학교는 아라뱃길 아래쪽의 번잡한 도시 학교들과는 달리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것만 같은 오래된 학교이다. 결혼하고 인천으로 파견을 신청해 이 학교에 도착했을 때 첫 발령을 받았던 경기도 양평에 다시 돌아왔다는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교실은 낡아서 앞뒤 문짝이 틀어져 잘 닫히지 않았다.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개교는 1932년이었다. 설마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건물을 사용한 건 아니겠지. 나는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얘들아, 여기에서 뛰면 진짜로 교실이 무너질지도 몰라.”     


낡고 수리가 되지 않은 건물은 충격적이었지만 이 학교의 좋은 점은 뒤뜰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뒤뜰엔 앙상한 나무들만 우거져 있었다. 흙바닥에는 낙엽이 켜켜이 쌓여있었고 가장자리에 놓인 벤치마저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봄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나뭇가지마다 분홍 꽃망울을 터뜨렸다. 벚나무였다.


Photo by Joel Neff on Unsplash


벚나무는 하늘 위 멀찌감치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까르르 웃었고 바람이 불어오면 사르르 꽃비를 내렸다. 키가 높디높아서 여름이면 뒤뜰을 감싸 안으며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면 뒤뜰에 나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학년이고 고학년이 고를 떠나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뛰어노는지 서로 뛰어가다가 부딪힐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올해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으니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뛰는 아이도 없이 학교가 적막하다. 급식도 중단이 되어버려서 선생님들은 도시락을 시켜 먹었다.


반찬이 반복돼 나오다 보니 도시락은 곧 질리고 말았다.  동학년에 교무부장 선생님이 계셔서 점심을 먹을 때 교무실에 내려가서 교감 선생님과 함께 먹는 것도 불편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대충 이야기를 얼버무리고 나오면 체할 것 같았다.


그 뒤로는 도시락을 신청하지 않았고 점심때면 밖에 나가서 김밥을 한 줄 사서 혼자 빈 교실에서 먹었다.


Photo by Masaaki Komori on Unsplash


따뜻한 봄이 되니 답답한 교실에서 먹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뒤뜰 벤치에 앉아서 편의점에서 산 작은 오렌지 주스를 깠다. 벚나무는 올해도 꽃을 피웠고 큼직한 꽃망울을 달고 있다가 어느새 우수수 꽃잎을 뿌려주었다.


혼자 김밥을 먹으면서 벚꽃 구경을 했다. 혼자 이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게 너무 아쉬워서 핸드폰으로 어떻게든 동영상을 남겨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찍어도 하늘하늘 내려오는 꽃잎들을 실감 나게 남길 수 없었다.


갓 입학해서 신나게 학교를 탐구하고 있을 1학년이 아직도 집에 있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었다. 겨울부터 새 책가방에 실내화 필통을 준비해 놓고 학교 가는 날만 기다렸을 텐데. 벚나무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지 여전히 아름답기만 했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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