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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Dec 12. 2022

아기보다 내 책이 먼저 나왔으면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어렸을 적 부모님은 강원도의 산골짜기 땅을 농사짓는 농사꾼이었고 온 동네는 친척들이었다. 나는 그곳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며 자라다가 바깥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촌스러운 애였다.


자라면서 예술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 노래도 연기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하고 싶었으나 딱히 재능이나 끈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피아노 학원은 내가 다닌 유일한 학원이었는데 고학년이 되고 재미가 없어지면서 끊어버렸다. 노래를 잘하고 싶었지만 중학교 합창부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실력이었다. 미술은 배워 본 적도 없고 배우고 싶다고 말해본 적도 없었으나 그림 그리는 애들이 부러웠다. 그러다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 쓰는 일을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꿈들이 내가 이루기에는 너무 멀고 허황돼 보였기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찾은 것이었다. 글쓰기는 비싼 학원도 필요 없이 '연필'과 '공책'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었다. 연극 대본을 읽으며 운 적도 있었지만 어떻게 내가 연기자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만한 배짱도 없는 아이였다.




글 쓰는 일마저 돈벌이가 되기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꿈도 하나 챙겼다. 나는 하루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집에서 벗어나야 했다. 아빠 친구, 엄마 친구, 동네 주민들은 죄다 농사꾼 아니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시절 내가 접할 수 있었던 가장 괜찮은 직업이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오히려 재미있어 보였다. 한 학년이 겨우 한 반뿐이어서 이사 갈 일이 없는 나는 6년 내내 늘 그 자리였다. 가까운 곳에는 학원도 없어서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수업을 들었다. 가장 좋아했던 건 수요일 날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수업이었다. 수요일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컴퓨터를 연결해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곤 했다.


5학년이 된 어느 날 방과 후 수업을 글쓰기로 바꾼 건 작은 우연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상이라는 걸 탔다. 내가 직접 써냈다기보다는 글짓기 선생님이 잘 보듬고 고쳐서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지만 굉장히 커다란 일이었다. 글을 써서 문화상품권 몇 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나 짭짤한 일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Photo by Patrick Tomasso on Unsplash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을 가서도 기회가 있으면 종종 글을 써서 냈다. 대부분은 시였고 가끔은 산문이었다. 정말 감사한 것은 내가 이 글쓰기라는 것을 때려치우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결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놓고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작은 결과들이 나에게 계속 글을 쓰라는 말을 걸어온다고 느꼈다.      


교대에서 들었던 수업 중 하나가 아동문학교육이라는 수업이었다. 나는 그 수업을 들으면서 동화작가가 되기로 했다.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또 동화는 엄마들이 잘 사 줄 테니 소설보다는 잘 팔릴 거라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있던 진짜 마음은 소설이라는 거대하고 엄청난 테두리 안에서는 내 글이 경쟁이 안 될 거란 생각이었다.


 선생님이 되고 난 후 소설을 쓰기까지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다. 나는 계속 동화를 썼고 결말을 낸 글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결말을 낸 글들조차도 어디에 내놓기 창피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잠시 학교를 떠나 쉴 기회가 있었다. 그 시기에는 더욱 글쓰기에 집중했는데 학교를 떠나자 더는 동화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선을 넘고 나니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완성한 단편 소설이 해양문학상 대상에 운 좋게 당선된 이후에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바로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다. 짤막한 글을 써 모아 책으로 나오는 것보다는 긴 이야기 한편을 책으로 내는 게 더 쉬워 보였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였지만 나의 다음은 장편소설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임신 소식을 장편소설 스터디에 알리러 갔을 때 스터디 사람들은 출산 후에는 당분간 글을 쓸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아기 낳고 나면 아무것도 못 해요. 언니 집에서 조카 보는데도 진짜 힘들었어요.”

“임신 중에는 그래도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회사에 막달까지 다니면서 연구 보고서 쓰고 아이 낳으러 갔으니까.”


나는 그때도 희망에 넘쳐서 아기가 나오기 전에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들 힘들어서 못 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글을 다 써서 공모전에 낸 뒤에 아기를 낳으러 가는 걸 상상했다. 내 배로는 아기가 나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책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이지 뿌듯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별 노력을 들이지 않고 먹고 자고 하는 것만으로도 해피는 심장을 만들고 쿵쿵 뛰는 심장 소리를 들려줬다. 그에 비해 글을 쓰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틈만 나면 졸리고 먹을게 생각나다가도 메슥거려서 글을 쓰는 대신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는 날이 많았다. 한 생명이 자라나 내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동안 나도 소설을 끝낼 수 있을까.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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