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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Dec 10. 2022

한 줄에서 두 줄로 바뀌었을 뿐인데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신랑과 결혼기념일을 맞아 짧게 제주도에 다녀오기로 했다. 전담실을 같이 쓰는 동갑내기 아기 아빠도 돌을 기념해서 제주도에 갈 거라고 했다. 그 가족은 외가, 친가 모두 함께 가는 대규모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는 왠지 그 시기에 여행을 간다는 것조차도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른 선생님들이 없을 때만 쉬쉬하며 이야기하곤 했다. 괜히 어디에 갔다가 코로나에 걸리면 우리 학교 전체에 큰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있었다. SNS에도 여행 사진 한 장을 남기지 않았다.


여행 중에는 비가 추적이다가 개었다가 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없었고 또 관광지가 아니라 한적한 곳으로 가니 정말이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동네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작은 사진관에 가서 흑백으로 결혼기념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정말 기가 막히게도 그 여행 이후로 임신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되어봐야지 마음먹고 하는 테스트는 뭔가 달랐다. 전에는 생리일이 지나서 테스트기를 하더라도 지금 임신이 되면 곤란하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지난 몇 달 동안 한 줄이 떴을 때는 실망감마저 들었다.


첫 테스트기를 하고 나서 2주 동안 10개가 넘는 테스트기를 했다. 처음에는 두 줄이 진해지는지 보기 위해서였고, 다음엔 혹시나 다시 연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산부인과에 가서 내가 계속해서 테스트기를 했다고 했더니 간호사 선생님은 한 번만 하면 되지 뭐하러 그렇게 많이 하냐는 눈치였다.


두 줄이 나오고 나서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이유 없이 많아졌던 잠과 식욕에 대한 변명이 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밥 먹고 난 오후에 보건실에 가서 자고 도서관 그림책 보는 곳에 가서 몰래 누워 잤다. 요가학원도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 운동할 시간에도 잤고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온라인 강의만 만들어 올려놓고는 계속 자기만 했다.


Photo by Isabella and Zsa Fischer on Unsplash

세상에나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 줄은 몰랐다. 그동안은 내 의지와 컨디션대로 잠이 오고 깨고 했다면 이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배 속의 아기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 잠이 오는 것 같았다.      


'짠'하고 나타난 두 줄은 다시는 한 줄로 변하지 않았다. 생리 예정일로부터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너무 일찍 병원에 가면 아기집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생리 예정일로부터 2주를 더 기다린 후에 산부인과에 갔다.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가서 초음파를 보는 순간 동그랗고 명확한 아기집이 보였다. 이렇게 예쁜 콩알 같은 아기집을 만들려고 그랬던 것이었다. 피를 뽑아 여러 검사를 하고 거금을 들여서 영양제도 샀다. 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영양제를 사면서 왠지 영업을 당한 기분이긴 했지만 손에 들린 아기 수첩 앞에서 한없이 마음이 약해졌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니 거짓말처럼 입덧이 시작됐다. 그동안 밥도 진짜 잘 먹었는데 밥 짓는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슥거렸다. 돼지고기는 누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빈속은 느글느글하고 가만히 있어도 힘이 쭉쭉 빠졌다. 아랫배가 콕콕 아프기도 했고 그게 좀 심할 때면 아기가 괜찮은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내가 몸의 주인이 되어서 정신이 반짝 들고 뭔가를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신랑이 ‘해피’라는 태명을 지은 뒤 우리는 해피 패밀리가 되었다. 신랑이 배에 대고 말을 해주는 게 큰 힘이 되고 기분이 좋았다. 신랑이 꾼 태몽은 토마토였다. 신랑은 새빨갛고 곡선이 예쁜 커다란 토마토를 봤다고 했다. 나는 토마토라는 말에 딸이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남동생과 시어머니의 꿈은 달랐다.


남동생은 어느 날 호랑이가 덮치는 꿈을 꾸고 나서 가족들에게 자기가 태몽을 꾼 것 같다고 말했다. 임신 계획을 전혀 모르는 남동생이 그렇게 말했다니 진짜 태몽은 따로 있나 싶다. 시어머니도 꿈에서 호랑이가 다리를 스치고 쓱 지나갔다고 했다. 정작 태몽을 기대했던 나는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호랑이 태몽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모두 아들 꿈이었던 모양이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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