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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Dec 15. 2022

선생님이 줌 수업에서 튕길 줄은 몰랐지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5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영어 뮤지컬 동아리 계획서를 올렸다. 350만 원짜리 계획서였고 그걸 한 해 동안 진행하는 게 내 업무 중 하나였다. 그때의 나는 코로나가 수그러들어서 끝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조명과 마이크 대여 업체에 전화해서 예산을 잡았고 2학기에는 동아리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코로나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나에게는 여전히 써야 하는 350만 원이 있었다. 학교에서 한번 책정한 예산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해가 가기 전에 0원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줌으로 진행되는 영어 읽기 동아리를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이 동아리에 20명 가까운 아이들이 신청했다. 수업은 집에서 접속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어떤 용기로 그런 걸 진행했는지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예산을 털어버리고 계획을 마무리할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오후에는 모성 보호 시간을 사용했기에 집에서 수업을 했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책상을 돌려서 뒷배경을 깔끔하게 만든 다음 스탠드 조명도 켰다. 처음엔 약속 시간에 접속하는 연습부터 했다. 아이들은 예상외로 잘 들어왔다. 첫 원격수업을 마치고 나니 흥분과 함께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수업 중에 내가 두 번이나 튕겼다. 처음 줌에서 버벅거리다가 퇴장이 되고 나서 부리나케 다시 방에 입장했으나 다시 튕기고 말았다.


채팅방에서는 선생님이 나갔다며 이미 난리가 난 뒤였다. 애들이 수업 중에 튕길 수는 있어도 교사인 나는 튕기지 않을 줄 알았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수업은 중간에 엉망으로 중단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인터넷 AS를 신청했는데 이상하게 그 뒤에는 인터넷이 너무나도 잘 돼서 사람을 부를 필요가 없었다. 노트북이 와이파이를 사용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유선으로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랜선을 구매했다. 그러고 나니 진이 빠져서 멍했다.      


Photo by Kenrick Mills on Unsplash


그날 하루는 완전히 망한 것 같았다. 뭔가 간절히 쓰고는 싶었지만 공책을 들고 돌아다니면서도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침대에서라도 쓰고 싶었지만 핸드폰만 하다가 그마저도 포기해버렸다. 침대에 누웠고 하릴없이 핸드폰을 봤고 어두워진 후에야 아주 늦은 저녁을 해 먹었다. 새로 한 간장 장아찌 때문에 코가 들큰 했다. 그리고 밤새 유튜브를 보다가 잠이 안 와서 새벽 1시에 산책을 했다.


누워서 핸드폰을 하면 공허함만 가득하다. 네이버 뉴스건 거기에 달린 댓글이건 다른 사람들이 올린 SNS나 유튜브를 보아도 거기에서는 어떤 충만함이나 감동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바깥 바람을 쐬며 달이 구름에 가렸다가 천천히 나오는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 봤다. 자전거 안장에 남겨진 작은 빗방울. 드물게 지나가며 정적을 깨는 자동차 소리. 그리고 아직도 집에 올 생각이 없는 신랑을 생각했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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