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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Dec 17. 2022

졸음운전한 임산부의 변명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사실 그 사고가 나기 전에도 몇 번 졸았다. 그래서 졸음 껌을 가지고 다녔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마다 그냥 시트를 눕혀놓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날은 추웠지만 시트에 열선을 틀어놓으면 엉덩이가 따끈해서 졸음이 절로 쏟아졌다. 나는 꾸역꾸역 학교에 나갔다. 딱히 방법이 없었다. 방과 후 수업도 마무리해야 했고 어떻게든 겨울 방학 전까지는 학교에 가야 집에서 쉴 수 있었다.    

 



신랑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이제 여기를 떠날 수 있겠구나. 신랑이 보험사와 이야기를 하고 운전자들에게 대신 사과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보통 사고가 나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지만 나는 영상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내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확인하는 게 너무 창피했다. 다 부서진 차를 뒤로하고 신랑의 옆자리에 올라앉았다. 우리는 곧바로 진료받던 산부인과로 향했다.      


최악의 경우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것 역시 대비해야 하는 경우인 것은 분명했다. 만약에 아이가 잘못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아이가 사고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은 말아야지 하면서도 머릿속에 불쑥불쑥 떠올랐다.




병원에 차를 대고 내리는데 그사이에 통증이 더 심해져서 잘 걸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간호사의 “어떻게 오셨어요?” 하는 의례적인 질문에 “교통사고가 났어요.”라고 대답하는 순간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의사 선생님은 사고가 났다고 하자 제일 먼저 사고의 잔해가 차 안까지 밀고 들어왔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차 앞부분이 박살 나기는 했어도 신기하게 차 안은 멀쩡했다. 멍은 들었지만 상처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아, 그래요? 누워보세요.”


의사 선생님은 배의 여기저기를 초음파기로 눌러보며 한참을 살펴본 뒤 다행히 아이는 차분하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흑백으로 윤곽만 겨우 보이는 초음파를 보고 어떻게 아이가 괜찮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어쨌든 첫 번째 관문은 넘긴 셈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집으로 갈 건지 입원할 건지를 물었다. 일단 정형외과에서 가서 허벅지와 다리가 괜찮은지 진료를 받겠다고 했다.


정형외과에 왔지만 임신 중에는 어떤 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엑스레이는 물론이고 멍이나 타박상에 바르는 파스 같은 약도 안 된다고 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초음파로 뼈를 살펴보는 거라고 했다. 다행히 뼈는 괜찮았고 그대로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서 침대에 누우니 온몸이 팅팅 부어올랐다. 아기도 걱정이 됐고 배가 땅기는 느낌도 났다. 너무 아파서 일어나서 한 발짝 떼는 것도 불가능했다.


산부인과에서 바로 입원해야 했는데 무슨 정신으로 집에 온 건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왜 나에게 입원할지 말지 선택하라고 했을까. 바로 입원하라고 좀 말해주지. 다시 병원으로 가려는데 지하 주차장까지 걸어갈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모서리에 걸터앉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때 아파트 복도에 세워져 있던 휠체어가 생각났다. 옆집에서 치매 걸린 할머니가 쓰시는 휠체어였다.


어느 날 밤 집에 남동생과 둘이 있을 때 할머니가 벼락같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남동생 보고 밖에 나가보라고 떠밀었었고 남동생은 큰 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보다 더 겁을 먹은 채로 현관문을 열었었다.


나는 그 휠체어를 쓰자고 했다. 남편이 휘갈겨 쓴 쪽지를 옆집에 붙여 놓고 복도에 있던 휠체어를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휠체어에 탄 채로 지하 주차장까지 움직였고 겨우 산부인과에 가서 무사히 입원할 수 있었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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