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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Dec 06. 2022

그날, 교통사고가 나기로 되어있던 걸까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매캐한 금속 탄내가 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에어백이 터진 뒤였다. 차 앞에서 뿌연 연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황급히 시동을 끄고 가방과 핸드폰을 챙겼다. 그리고 마스크도. 어떻게든 여기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임신 7개월인 배는 겉으로 볼 때도 티가 나게 불러 있었다. 정신이 없어서 어디가 아픈지 느끼지도 못한 채 절뚝거리며 보도블록에 쪼그리고 앉았다. 조그만 차는 앞부분이 박살 나 있었다. 순간 폐차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버스, 전철, 버스를 갈아타고 학교에 가다가 지쳐서 중고로 경차를 사서 운전을 한 지 1년 정도 되어가고 있었다. 출근길은 익숙한 길이었고 학교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을 찾아서 운전했기 때문에 차가 많거나 어려운 길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고가 난 건 내가 '졸았기 때문'이었다.


차도는 중앙선이 하나 그어져 있는 작은 길이었는데 졸면서도 중앙선을 넘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앞차가 신호등 빨간 불을 보고 정지한 뒤에 그 트렁크에 사정없이 부딪혔다. 트렁크는 박살이 났고 차가 떠밀려서 그 앞에 있던 차까지 박고 말았다. 삼중 추돌이었다. 앞차의 운전자는 나이가 지긋한 여자분이었는데 쪼그려 앉아있는 나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임신 중인데 졸았어요.”     


“어휴. 이렇게 크게 박을 일이 아닌데.”     


운전자는 사정없이 찌그러져 버린 트렁크를 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나는 멀쩡하게 출근하던 또 한 명의 출근길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그분께 진심으로 미안했지만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맨 앞의 운전자는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는 게 싫었는지 나와보지도 않았고 운전석에 앉아서 사고가 처리되기를 기다렸다.      




정확히 교통사고가 나기 2주 전, 나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쏟아지는 잠을 뚫고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 글을 쓴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무언가를 하는 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썼던 방법이었다.


시간은 금방 흘러 쌀쌀해진 11월이었고 완성한다던 소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임신 중 새벽 기상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성공해 어떤 가능성을 본 것이다.


다시 일찍 일어나기 시작하자 글도 술술 풀려서 임신하기 전만큼의 분량을 뽑을 수 있었다. 이렇게만 가면 아기가 나오기 전에 글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퇴근한 후에 일찌감치 잠들어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계속 이어가려 했다.


그런데 사고 바로 전날. 유난히 장난꾸러기가 많은 5학년 교실에서 드디어 영어 선생님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되었다. 그중 한 명이 물었다.      


“선생님 언제까지 학교 오실 거예요?”     


출산 예정일은 2월 초였고 나는 최대한 마지막까지 근무하다가 출산휴가를 쓸 예정이었다. 이제 11월로 접어들었으니 겨울 방학을 하기까지는 두 달 정도 남은 상태였다.      


“계속 나올 거야. 방학 때까지.”     


“선생님 그냥 안 오시면 안 돼요?”     


남자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그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고 그냥 웃고 넘어가는 농담처럼 들렸다. 그런데 뭘 알고 한 말인지 다음 날 출근길에 정말 사고가 났다.



Photo by BAILEY MAHON on Unsplash


평범했던 일상이 박살 난 틈으로 바람이 불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햇볕은 아직 따스했다. 나는 가장자리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곧 사설 레카 업체 사람이 보험사보다 먼저 나타나 귀찮은 똥파리 마냥 주변에서 윙윙거렸다.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화가 나서 더 입을 꽉 다물었다.  


운전하며 출퇴근을 하면서도 그때까지 ‘임신부 안전벨트’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다. 차가 흔들리는 동안 내 둥근 배는 안전벨트 허리 라인에 이리저리 눌려버리고 말았다. 배 속에 있는 아기가 괜찮은지 걱정됐지만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애써 심호흡을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난 게 문제였는지 태교 삼아 들었던 영어 라디오 방송이 문제였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너무나 졸렸고 그때 하필 매일 가지고 다니며 씹었던 졸음 껌이 떨어져서 없었다. 차가워진 가을바람을 맞으려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큰소리로 소리도 질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땐 앞에 있는 차를 박은 뒤였다.      




교감 선생님에게 사고 소식을 알리고 전화를 끊는데 나에게 학교를 그만 오라던 어제의 그 남자아이가 생각났다. 나름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비극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내 인생에서 이 순간에 사고가 나기로 되어있던 걸까.'


건강하게 잘 자라던 우리 아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우리 아기는 무사히 세상에 태어나야 하는데. 나는 운전한 내 두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고 쪼그려 앉아 있는 나 자신을 저 강둑 너머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코로나 중에도 지금까지 무사히 지켜낸 아기였다. 그러면 뭐하나 내가 다 망쳐버렸는데. 둥근 배의 아래쪽과 허벅지 안쪽이 걷지 못할 만큼 점점 부어올랐다. 자기 손으로 운전을 해서 사고를 낸 못나디 못난 엄마였다.


나는 꾹꾹 울음을 참았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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