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Jan 30. 2024

추억의 물건,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추억의 물건 소환하기

추억의 물건 어떻게 정리하지?


정리를 하다 보면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추억의 물건'입니다. 과거가 담긴 내가 소중히 했던 물건, 바라보기만 해도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을 수 있는 물건들 말이죠.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추억의 물건은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이사 온 지 5년째인데 처음 들어올 때 정말 아무것도 없이 들어와서 시작했거든요.


그럼 추억의 물건들은 모두 어디에 있냐고요? 네. 잘 보관해 두었습니다.

바로 친정집에 말이죠.




어마어마한 친정집 창고


저희 친정은 강원도 시골에 있는 단독주택입니다. 시골에 있는 빨간 벽돌집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집 옆에 집만큼 커다란 무언가가 생겼으니. 저희 아빠가 큰돈을 들여 지으신 '창고' 되겠습니다.


이 창고로 말할 것 같으면 저희 집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다 집어넣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집입니다. 아버지는 탁구대를 넣으셨고, 어머니는 냉장고와 싱크대를 넣었으며 심지어는 작업복을 전용으로 빨 수 있는 세탁기까지 있습니다.


일 하다가 쉴 때면 아빠는 창고에 있는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핸드폰 보시는 걸 좋아하고 심심하면 커피도 한잔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창고의 역할은 거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저희 집이 농사를 짓다 보니 농작물을 수확해서 '묶는' 공간이 필요한데요. 그런 작업들을 모두 창고에서 해냅니다.


여름에는 옥수수작업을 하고, 김장철에는 대파, 갓, 배추, 열무 같은 것들을 작업합니다. 그러다 보니 창고 안에는 항상 흙먼지가 쌓여있습니다.


그리고 추억이 물건들도 바로 이 창고에 박스채로 쌓여있습니다.





결혼하고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추억의 물건들을 싹싹 모아서 엄마에게 보냈던 것이죠. 엄마는 그걸 박스채로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정리할 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덜덜..




박스를 열어보자!


정리를 한다고 했더니 엄마가 기겁을 하십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하려고 해."

"그러니까 지금 정리하러 온 거잖아."


실제로 자식의 물건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이 많다고 해요. 곤도마리에 시리즈에서도 커서 독립한 자녀들의 짐을 계속 가지고 있는 부모님들을 봤거든요. 그러니 효도한다 생각하고 박스를 하나씩 뜯어보았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저도 저희 엄마도 버리는 걸 정말 못해서 뭐든 다 모아놨다는 사실입니다. 대학교 수업 교재, 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노트, 문제집까지 그대로 박스에 담겨 있었단 사실!


버려야 하는 책들만 추려봤는데요. 이게 도대체 몇 박스인가요?


버려야 하는 책들. 문제집, 교과서, 공책들이 나왔다..




다음은 학생 시절 쓰던 물건들입니다. 저 분홍책 서랍장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 기념으로 샀던 책상 서랍이에요. 고등학교 때 쓰던 명찰도 나왔고요. 무려 중학교 하복이 나옵니다. (귀여워라..)




교생실습 나갔을 때 받았던 롤링페이퍼와, 제자들이 써준 편지를 모아놓은 파일입니다.






하하. 또 다른 추억의 물건. 제가 대학생 때 중고로 샀던 니콘 FM2 필름 카메라와, 무용 수업에서 신었던 슈즈도 발견했습니다. 카메라는 보관하고 슈즈는 미련 없이 버렸다는.




이건 제가 직접 그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 그리고 슬라이드폰 되시겠습니다. 슬라이드폰 예쁘죠? 지금도 한번 쓰고 싶은 생각이..




마스크에 목장갑 끼고 먼지를 헤쳐가며 정리하는 저를 한참 보시던 엄마가 나서서 박스 하나를 뜯기 시작했습니다. 그 박스에는 옷들이 들어있었는데요. 바로 저의 어린 시절 옷이었습니다. 오 마이갓...


저렇게 작은 옷이 제 옷이라니. 그런데 옷을 들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너무나 밝습니다. 분명 저걸 입었을 때의 제 모습을 생각하고 계시겠죠?


어린 시절의 내 옷을 들고 좋아하는 엄마





그렇게 해서 남길 것들만 탁구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정도가 보관할 것이 되겠군요. 시슬리 가방은 엄마 쓰라고  보냈는데 몇 년 동안 박스에 그대로 보관을 했더랍니다.. 하하하..


추억의 물건들은 서랍장 두 개 안으로 쏙쏙 들여보냈습니다. 위에는 먼지가 앉지 않도록 수건을 깔아놓았고요. 부디 무탈하게 잘 보관되기를.





정리를 하다 보니 저희 엄마가 저만큼이나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그래서 대신 버려준다는 생각으로 쓰레기를 한가득 담았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창고에 제가 쓰던 책상이 정체를 드러내더군요.


위에 짐이 너무 많이 올려져 있어서 사용할 수 없었던 책상인데 엄마가 책상을 보시더니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저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이게 치운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 걸까.


무지막지한.. 추억의 창고 어떠셨나요?


엄마는 제가 몸살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더라고요. 다행히 몸살은 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보관해야 하는지. 추억의 물건은 사람마다 보관 기준이 다른 부분이에요. 그래서 정리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하는 것을 추천하더라고요.


안 보는 책들, 안 맞는 옷들(제 어린 시절 옷포함) 전부 버렸고. 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물건들만 일부 남겨놓았습니다. 추억의 물건은 소중한 만큼 보물상자를 만들어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비록 시간이 없어서 서랍에 넣는 것으로 만족지만요.


다음번에 집에 갈 때 원상 복귀가 되어 있지 않기를 ㅋㅋ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사진: UnsplashRoman Kraft

이전 07화 당신의 서랍은 무사하신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