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41주에 10킬로를 걷다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임신 40주가 되었지만 아기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내 자궁경부는 튼튼했다.


조기 진통은 커녕 예정일이 지나도록 자궁문이 열리지도 않았다. 학교 부장님이 초산은 원래 진통이 늦으니 여유를 가지라고 했는데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아기를 낳았냐는 안부 전화에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도 슬슬 짜증이 났다. 40주부터는 글 쓰는 걸 아예 놓아버렸다.


아기가 자연분만으로 나오느냐 수술을 하느냐가 나의 인생에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큰 강을 건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통이 무서워서 예정일보다 먼저 수술 날짜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칼로 배를 째고 아기를 꺼내는 게 더 무서웠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까다롭게 굴었던 산모는 갑자기 하혈을 하고 당장 아기는 꺼내야 하는데 담당 교수님은 없다.


레지던트 2년 차 민하가 교수님과 연결된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해놓고 칼을 드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


겨우 산모의 배를 갈랐을 때 다행히 교수님이 도착했다. 그 뒤로 아이를 꺼내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수술은 못 하겠다 싶었다.


배로 칼이 들어가는 장면이며 좁은 절제 부위를 벌리고 아기 머리를 꺼내는 장면까지 순식간이었지만 충격 또 충격이었다.

저렇게 배가 두껍게 잘린단 말인가. 그냥 아기가 편하게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수술하고 난 후 아플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1 8화




아기는 41주를 앞두고도 영 소식이 없었다. 아기가 뱃속에서 더 크기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이슬 비슷한 건 있었지만 가진통은 없었고 배가 축 꺼지지도 않았다. 계단 오르기도 해 봤다. 무거운 몸으로 계단을 오르면서 이러다 무릎이 먼저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지막 진료를 다녀온 뒤에도 증상이 없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남편의 남색 경량 패딩을 전투복 입듯이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 걸을 생각이었다. 인절미를 간식으로 사 먹었고 떡볶이와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집에 돌아올 때가 되니 10km를 걸었더라.



배가 단단히 뭉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이야말로 배가 뭉치고 가진통이 와야 하는 때였다. 힘들면 벤치에서 쉬고 쌀쌀한 저녁에는 영화관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영화관에는 광고 영상만 틀어져 있을 뿐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밤 집에 와서 거울에 비춰보니 비로소 배가 아래로 축 처진 게 보였다. 내일이면 유도분만을 하러 산부인과에 입원하기로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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