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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Mar 01. 2023

사두증이 전에는 뭔지 몰랐지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처음 태어났을 때 아기 머리는 옥수수처럼 삐죽 튀어나온 모양이었어. 좁은 자궁문을 지나면서 길쭉해졌던 머리모양은 집에 올 때쯤 점점 동그래졌지. 가운데가 오목하게 꺼진 짱구 베개가 있었지만 소아과 선생님이 짱구 베개는 권하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 않았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눕히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 어려운 거라는 걸 몰랐던 거야. 


아기 머리는 자꾸만 오른쪽으로 돌아갔어. 조리원 선생님들이 말하길 엄마 뱃속에서도 편한 방향이 있었을 거래. 반대로 눕혀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산후도우미가 와서야 수건을 네모나게 말아 머리가 돌아가지 않게 고정을 했어. 그건 치밀한 과정이었지. 아기 침대 양쪽으로 블록쌓기를 하듯이 빼곡히 채워야 아기는 비로소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니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아기의 의지는 정말이지 대단했어. 그 뒤로는 나도 계속 도우미를 따라 했는데 어떻게든 고정해 놔도 아기는 귀신같이 알고 자기가 편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손가락을 빨기 시작하고 나서는 한쪽으로 눕는 게 더 심해졌어. 하필이면 마음에 들었던 손가락이 오른손 엄지손가락이었던 거야. 아기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오른손을 빨았어. 뒤늦게 손을 못 빨게 해보려고 속싸개로 묶어보기도 했지만, 자유의 맛을 본 아기를 다시 묶어둘 수 없었지. 왼손에 말랑말랑한 실리콘 치아 발육기를 쥐여주고 그걸 물게 해보려 해도 잘 안 됐어. 





그렇게 80일쯤 됐을 때야. 아기가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번쩍 드는 터미타임을 하면서 두상이 분명하게 보였어. 오른쪽이 납작하게 눌린 건 물론이고 뒤통수가 납작하더라고. 그때까지 침대 대신으로 사용했던 역류방지 쿠션이 눌러놓은 거야. 역류방지 쿠션은 수유한 후에 소화하기 편하도록 기대어 놓는 쿠션인데 거기에서 잠을 재운 적이 많았거든. 그게 뒤통수를 납작하게 눌러놓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뒤통수가 납작해지는 걸 ‘단두’라고 부르고, 한쪽으로만 누워서 머리가 비대칭이 되는 걸 ‘사두’라고 불러. 그런 병명도 처음 들어봤지. 사두가 심해지만 후천적으로 ‘사경’이 오기도 하는데 후천적 사경은 목을 한쪽으로만 돌리다 보니 반대쪽이 근육이 경직돼서 목이 잘 돌아가지 않게 되는 거야. 이렇게 되면 아기를 안고 큰 병원에 다니면서 운동치료를 해주어야 한 대. 심한 아기는 헬멧을 써서 두상을 교정하기도 하는데 이 헬멧은 300만 원이야. 아기가 답답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름이면 땀이 나서 두피가 짓무르기도 하는데 말이야. 




사진: Unsplash의Jimmy Conover 아기 머리 교정 헬멧


당장 역류방지 쿠션부터 처분했어. 그리고 아기를 절대 맨바닥에 두지 않으려 짱구 베개를 사용했지. 또 터미타임도 많이 시키려고 했고 어떻게든 머리를 반대로 고정해 보려고 했어. 머리가 눌린 반대로 눕혀 재우기 위해 도움이 되는 베게들을 당근 마켓에서 샀어. 


인터넷에 사두 사경 카페가 있어. 카페에서 사두증과 싸우는 엄마들의 글을 읽고 밤에 깨서 몇 시간에 한 번씩 아기 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려놨어. 푹 잘 수 없었지만 머리가 아직 말랑한 지금이 아니면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을 머금고 일어나야 했어. 




결국 누워서 생활하는 아기는 내려놓으면 어떻게든 자기가 편한 방향으로 돌아누웠어. 아기를 안고 있는 방법이 머리를 닿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 하지만 얼마나 팔이 아파. 누가 아기를 대신 안아줄 사람도 없었어. 집에 전화해서 당장 올 수도 없는 엄마를 찾으며 울었어. 엄마는 애를 셋이나 키웠으면서 왜 나한테 머리를 돌려가면서 재우라고 말을 안 해준 거야. 아기를 안아 들고 괜히 엄마를 탓했어. 


“아기를 내려놓으면 자꾸 머리가 찌그러질 것 같고 안고 있으면 너무 팔아 아파. 근데 내려놓을 수는 없어. 어떻게.”


엄마는 내 하소연에 지금 당장 갈 수 없다고 미안하다는 말뿐이었어. 아이 머리 때문에 미칠 것 같았지. 내가 울면 아기도 같이 울었지만 아기를 안고 꺼이꺼이 울었어. 




  새벽에 일부로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날 때면 뭐 하는 짓인가 싶었어. 곤히 자는 아이 머리를 돌릴 때는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지. 잘못 건드려서 잠이 깨면 또 그때부터 울음바다가 될 거니까. 하지만 사두 카페 사람들은 깨는 걸 무서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어.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좀비 같은 모습으로 머리를 돌리러 갔지. 엄마와 아기 둘만의 싸움이었어. 신랑마저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고 고통스러운지 알지 못해.


몇 주 동안 사두증과 치열하게 싸우고 어느 정도 포기를 했어. 할머니는 내가 아무리 찌그러진 뒤통수 사진을 보내도 ‘왜 그러니, 예쁘기만 한데. 괜찮다 다 돌아온다.’라고 말했어. 어른들은 아기 머리야 크면 저절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나는 못난 엄마 때문에 몸이 삐뚤어지거나 안면 비대칭이 올까 봐 전전긍긍했어.              



*사진: UnsplashL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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