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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Mar 08. 2023

시어머니와 연락이 끊긴 이유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어. 해가 저물어가는데 아기는 자지 않고 울었어. 크면서 몸무게도 늘고 힘이 세져서 울면서 떼를 쓰면 안고 있기가 점점 벅찼어. 그날은 둘이서 실랑이를 하다가 힘들고 지쳐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 스피커폰 상태로 통화 연결음은 갔지만 아기는 계속 울어댔고 아기를 안고 있느라 손을 가눌 수가 없었어.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한 건지 아니면 그저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어. 아기랑 단둘이 남겨진 뒤 내 정신은 깨지고 부서지는 것 같았어. 내가 어떻게 망가지든 탈출구는 없는 것 같았지. 내일이 오긴 할 거야.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나는 쳇바퀴 속에서 지칠 때까지 뛰고 또 뛰는 실험용 생쥐 같았어.


마침내 전화를 받았을 때,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수화기에서는 “미진아, 미진아.” 하는 소리만 들려왔지. 겨우 입을 열어서 울면서 말을 했어. 어머님은 소리만 듣고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고 바로 운전해서 오신다고 했지. 시댁은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였어.


전화를 끊은 뒤, 아기는 제멋대로 몇 분을 더 울고 지쳐서 잠이 들었어. 얼굴은 팅팅 부었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 굽은 등을 펼 힘도 없었어. 해는 어느새 저물어 캄캄한 밤이 됐는데 불도 켜져 있지 않은 거실에서 혼자 울음을 삼켰어.




어머님은 얼마나 급하게 오셨는지 밖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다가 딩동 초인종을 눌렀어. 현관문까지 가서 문을 열 힘도 없었어. 초인종 소리가 집안에 우렁차게 울렸지만 다행히도 아기는 그 소리에 깨지 않았어. 가서 문을 열어드리자 어머니는 아기부터 찾으셨지.     


“아가야, 아가 어딨니?”      


조용히 죽어가는 목소리로 모든 상황이 끝나고 아기는 잠들었다고 말했어. 어머님과 나는 지뢰를 피하듯 거실에서 자는 아기를 두고 조심조심 안방 침대에 걸터앉아 문을 꼭 닫았지. 어머님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랐다고 나를 꼭 안아주셨어.


언제부터 힘이 들었지. 기억이 나질 않았어. 분명 집에 처음 왔을 때 아기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힘들지 않았었거든. 아기를 낳아본 친구들이 ‘너는 괜찮아?’하고 연락했을 때, 그때마다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했었어.


산후 마사지사가 둘째를 낳고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고객 이야기를 할 때도, 아기가 너무 예쁜 나머지 “괜찮아요.” 하고 웃으며 대답을 했어.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고 말았지?


뼈저리게 혼자라는 걸 느끼면서 괜찮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 그 순간은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다가오지 않았어. 수채화에 검붉은 물감을 쏟아버린 것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왔지. 나는 숨을 쉬기 위해 물 위에 입을 내놓고 겨우 뻐끔거리고 있었던 거야.




어머님이 뭐 힘든 게 있냐고 나에게 물어보셨어. 가장 힘든 건 이 시간을 모두 혼자 겪어내야 하는 것이었지.


왜 우리 신랑은 저녁에 퇴근하는 일 없이 늘 밤에 오는가. 왜 혼자서 아기를 재우고 모든 역할을 다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당연히 위로를 받겠거니 생각했어.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지.    


“야근이 많은 걸 어쩌겠니. 네가 이해를 해야지.”      


그 뒤로도 어머니는 구구절절 자기 아들이 바쁜 걸 이해해야 한다고 말을 이어갔어. 그냥 말 뿐이라도 ‘힘들겠다. 남편이 너무 늦게 들어와서 네가 혼자 아기를 키우는구나.’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던 나는 억울하고 슬프고 화가 났어.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어.     


“어머니, 그렇게 말하시려면 왜 오셨어요? 오지 마세요.”      


울먹이며 그렇게 말했어. 사실 눈앞에 보이는 것도 없었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무서울 것도 하나 없었지. 내 말에 말문이 막힌 시어머니는 이렇게 답했어.     


“그래, 그럼 나 간다.”     


어머님은 가려고 몸을 일으키셨어. 나는 가지 말라고 잡지도 않았어. 이미 땅바닥으로 너덜너덜하게 떨어졌는데 여기에서 또 떨어져 봤자 뭐가 있겠어. 어머님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서 나에게 왜 그러냐고 여러 번 물어보셨어.




지쳐있었어. 하지만 지쳤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지. 시어머니는 주 5일 출근하는 직장이 있었고 생각처럼 와서 아이를 봐주시지 않았어. 그래도 가까이에 계셔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어.


그날이 지나고 시어머니는 정말 다시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어. 나도 시어머니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아기는 어찌 됐건 나 혼자 키워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지. 아기와 나 단 둘 뿐이었어.


* 사진: Unsplashtabitha tu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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