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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Mar 12. 2023

이 와중에 회식이라고?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신랑은 꾸준히 야근을 했어. 임신했을 때부터 안 바빴던 날이 거의 없었지. 신랑이 늦게 들어오는 건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어. 야근을 없앨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바로 ‘회식’이었어.


신랑은 둘 사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일한다고 조금 있다 들어온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사실은 술을 먹고 있었던 경우가 다반사였지. 왜 야근한다고 했는데 술을 먹고 있는 거냐고 따져 물으면, 신랑은 한잔만 하자고 나가서 그렇게 됐다고 대답했어. 그게 뭐야 도대체.


코로나 때문에 회식이 줄어들고 회식 시간도 앞으로 당겨지고 있었지만,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술을 먹었어. 야외에서 간단하게 먹는가 하면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서라도 술을 먹었지. 그 늦은 시간에 부인에게 술상을 봐달라고 하는 거야. 어느 날은 팀장님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일찌감치 들어왔어. 자던 아이가 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나.     




초등교사로만 일해본 나는 매일 같은 신랑의 야근을 이해할 수 없었어.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무리 야근해 봤자 7시 아니면 8시. 해가 저물어서 퇴근하면 일 좀 했구나 싶었지.


그런데 신랑은 저녁을 먹고 나면 기본으로 8시 30분까지는 일을 해야 하더라고. 그러니 조금 더 일하면 11시 12시도 되고, 진짜로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새벽에도 들어오는 거야. 하도 늦게 오니까, 정시퇴근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조차 헷갈릴 정도야.


그래서 처음에는 왜 야근하냐며 신랑과 다투기까지 했어. 신랑이 일을 너무 좋아해서 남아서 하는 줄 알았지 뭐야. 주말에도 이틀을 쉬는 법이 없었어. 토요일 일요일 중에 하루는 출근했으니 주 6일을 일한 셈이야.


아기를 보면서 간절히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주말에도 하루는 아이를 혼자 봐야 했어. 숨통이 트이는 휴식 시간이라기보다는 그저 육아의 연장이었지. 오히려 주말은 희망 고문이었어.


주말이 되어도 신랑은 아침을 먹고 출근해서 저녁때가 다 되어 돌아오거나, 피곤에 절어 누워있거나 졸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답답하기만 했어. 그래도 주말이 가고 월요일이면 아기와 단둘이 남는 게 두렵고 무서웠지.      




결혼 3주년을 앞둔 날이었어. 아이가 태어나고 맞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었지. 결혼기념일마다 사진을 찍었는데 올해는 두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이 찍는 첫 가족사진이었어. 집 근처 사진관에 예약도 해 놨건만 신랑은 그 전날에도 회식이 있었어.


신랑의 고질병이 있으니 대리를 불러 집으로 오면서 잠들어버리는 거야. 직장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걸렸고 기사님이 운전해 집으로 오는 동안 신랑은 대부분 잠들어 있었어. 대리기사는 차를 아파트 주차장 아무 곳에나 세우고 가버렸지. 신랑은 차에서 새벽까지 자다가 들어오곤 했어. 자는 동안 연락도 끊겨버렸고.


밤 12시가 다 되도록 들어오지 않자 신랑을 찾아보겠다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어. 아기는 침대에 카메라가 있어서 자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 슬리퍼를 신고 지하 주차장을 뛰다시피 걸으면서 신랑이 잠들어 있을 차를 찾았어.


주차장은 생각보다 더 넓었고 대리기사의 마음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어. 도대체 차는 어디에 세워 놓은 거야. 헐떡거리는 슬리퍼를 맨발로 신어서 자꾸 엄지발가락이 까지고 있었어. 지하 주차장을 돌수록 왜 이러고 있는지 화만 날 뿐이었지.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눈을 붙였어. 신랑은 그날도 새벽쯤에 들어와 자더라고. 그래도 들어온 게 어디야. 그날 오전, 얼굴이 팅팅 부은 신랑과 투닥거린 뒤에 겨우 사진을 찍으러 갔어. 5월 5일 어린이날이었지.




온종일 아기와 시달리느라 벅찬 하루를 보냈고 신랑과의 대화는 점점 뒷전으로 밀렸어. 신랑은 옷방에서 따로 잤는데 하루는 혼자 자는 게 외롭고 서운하다고 나에게 말하더라. 배려한답시고 아기와 신랑의 잠자리를 분리했는데, 그마저도 외롭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어. 나에게는 따스하게 말을 건넬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어.


모든 신랑들이 그렇게 야근하며 일하는 건 아니더라. 사기업에 다니면서도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차를 자유롭게 써서 평일에 놀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어. 다른 사람과 비교하자면 끝도 없지. 부부 교사들은 5시 전에 퇴근하니까. 이 모든 걸 받아들여야 했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과제였어.      




그래도 우리 신랑은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집안일을 도우니까. 본인이 힘들게 퇴근한 후에도 다 못 치운 거실을 치우기도 하고, 일주일 동안 쌓여있던 쓰레기도 싹 버리고 밀린 빨래도 돌리니까.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미워하면 사는 게 너무 힘들어져서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어.


신랑은 아기랑도 가끔만 볼 수 있었어. 한집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고작 하루 정도 볼 수 있었을까. 평일 아침에는 잠깐 인사하고 나가는 게 전부였고 주말 중에 딱 하루만 볼 수 있었어. 그래서 우리 신랑이 아기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가야, 내가 아빠야.” 하는 말이야.


마치 자기가 아빠인 걸 까먹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신랑은 아기를 보면 끊임없이 자기가 아빠라고 말했어. 일 년에 두 번이나 들어올까 하는 아버지를 두고 자랐기에 그 마음이 더 컸을 거야. 신랑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겠지. 어떤 아빠의 마음이 그렇지 않겠어. 소중한 첫아기인데 말이야.      




우리의 소중한 아기이고 세 가족이 되는 일인데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아기를 낳기 전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었어. 아이와 단둘이 남겨지는 오늘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일이 너무나 무서웠어. 책임져야 하는 한 생명을 안고 오롯이 집에 남겨지면 어떻게든 즐거운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힘든 건 어쩔 수가 없었어.     



*사진: UnsplashJoshua Reddeko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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