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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Mar 17. 2023

한밤중, 달과 아기와 요가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백일의 기적을 기다렸지만 막상 백일이 지나도 큰 변화는 없었어. 진짜 통잠을 잔다고 느낀 건 120일쯤 되었을 때야. 비로소 아기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새벽에 딱 한 번만 깨게 되었어. 9시에 잠이 들면 새벽 4시까지는 잤지. 그리고 새벽 수유를 한 뒤 다시 7시까지 잤어.


아기가 자고 나면 거실을 치우고 조용히 요가 매트를 꺼냈어. 어느 날 밤엔 창밖으로 커다란 보름달이 빛나고 있었지. 오늘은 끝났지만 아직 내일은 시작되지도 않았어. 달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듯 손을 모았어. 그 어느 때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요가를 하지는 않았지. ‘수리야 나마스카라 A’ 기본 중의 기본인 쉬운 자세들을 반복하면서 속으로 기도를 했어.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 이 끝을 알 수 없는 육아의 시간은. 정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 나 자신을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았고 예전의 나를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어. 눈물이 또르르 뺨을 타고 흘렀지.

      



아기를 낳고 조리원에서 쉬는 동안 몸이 다 회복된 줄 알았어. 하지만 진짜 시작은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였지. 아기를 안으면 손목에 무리가 갔고 수유를 하는 동안 어깨를 제대로 펼 수도 없었어. 아기를 들고 내리고 기저귀를 갈고 씻기는 동안 마른 장작처럼 퍽퍽하게 메말라 갔어. 생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지. 이렇게 한 사람을 갈아 넣어서 아기를 키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


요가를 하고 있으면 어깨와 골반의 근육이 얼마나 뒤틀렸고 딱딱한지를 느낄 수 있었어. 기억나는 동작을 더듬더듬해내며 하루를 마무리했지. 그럴 때면 검은 밤, 아기와 나와 보름달밖에 없는 것 같았고 달이라도 떠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 요가를 꾸준히 다녔는데 2년째 다니면서도 그 누구와 말을 섞지 않았어.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지금에서야 후회가 됐어. 요가학원에서 친구를 사귀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원장님께 메시지로 연락을 했어. 아기를 낳아서 열심히 키우고 있다고 요가원으로 꼭 돌아가고 싶다고. 그 시기에 나는 밤이면 핸드폰을 뒤적여서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연락했어. 학교를 같이 다녔던 옆 반 선생님, 보건 선생님, 교사 동아리에서 일찌감치 아기를 낳고 활동했던 언니, 내용은 비슷했어. 정말로 아기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들지 몰랐다고.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아기를 키워낸 걸까, 하는 내용이었어.      


요가원은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다시 수업하는 것 같았어. 인스타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요가 회원들과 선생님들이 뭘 하고 지내는지 구경했어. 그러다가 원장님이 최근에 만든 유튜브를 발견했지. 나에게는 그 유튜브가 빛이요 소금이요 생명과 같았어. 요가를 안 하면 하루 이틀 만에 온몸이 틀어지고 아팠는데 유튜브에는 요가 수업 영상 전체가 올라와 있던 거야.




어두운 거실에 요가 매트를 깔면 원장님이 익숙한 목소리로 수업을 시작했어. 이미 수업을 많이 들어서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지. 혼자 되지도 않는 요가 동작을 했던 것보다 훨씬 나았어. 우리 집이 요가 스튜디오가 되는 순간이었어.


요가는 몸만 움직이는 운동이 결코 아니었어. 그동안 어깨가 아프고 골반이 아파서 체형교정을 하려고 다녔거든. 간절함과 기도가 합쳐지자 자연스레 명상이 됐고 수련이 됐어.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호흡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게 되었지. 거지 같은 몸뚱이라고 깎아내리기만 했었는데 마음을 내려놓자 안 되던 동작들이 조금씩 됐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매트를 깔았어.


그렇게 요가를 하고 나면 다음 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힘이 생겼어. 요가가 없었다면, 이 육아의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          


*사진: UnsplashJavardh

                     

이 이야기는 완결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완결까지 월, 수, 금 발행 도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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