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줄에서 다카르로, 환대의 땅 세네갈 다카르
어제 감비아 켐부제에서 세네갈 다카르로 넘어왔다. 산잘리집의 비에가 알려준 경로대로 왔으면 자동차와 배를 4번이나 갈아탔어야 했을 텐데, 교통편을 잘 아는 사조에게 잘 물어봐서 직행 버스를 타고 한 번에 올 수 있었다.
감비아와 세네갈은 거리상 멀지 않아 12시간 정도 걸려 도착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장거리 버스를 타니 몸이 무겁다. 버스는 크고 튼튼해 보였지만, 내부는 동·남부 아프리카 종단 여행 때와 비슷했다. 좌석이 좁고, 세 명이 나란히 붙어 앉아야 했다.
느지막한 오후 5시경, 버스는 종점에 도착했다. 다카르 정보를 잘 찾지 않은 데다가 어디에 도착할지도 몰라 약간 긴장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짐수레꾼과 택시 기사들이 큰 소리로 다가와 서로 흥정하기 시작했다. 짐이 많지 않아 흥정꾼들을 따돌릴 수 있었지만,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환경은 나를 긴장시켰다.
육로로 이동할 땐 국경에서 통신사 심카드를 개통하고 인터넷도 충전하는 편인데, 짧은 거리라 정차 시간이 짧아 그러지 못했다. 정보 없이 혼자 택시를 타야 하는 상황은 부담스러웠다. 그런 나의 사정을 눈치챘는지,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바바가 선뜻 도와주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바바는 아낌없는 친절을 베풀었다. 택시를 잡아준 것도 모자라, 숙소까지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 한사코 거절하는 내게 "당연한 일”이라며 웃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호스트가 주소 안내를 명확히 하지 않은 터라, 바바가 없었다면 꽤 고생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감비아에서 세네갈까지 12시간을 달려와 피곤할 텐데도, 마다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함께 숙소를 찾아다녔다. 무려 두 시간 가까이를 내 곁에 있어주었다.
바바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내게 말했다. "세네갈에 있는 동안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가." 그 말이 그냥 하는 인사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졌다. 내게도 저렇게 누군가를 도울 여유가 있을까? 시간과 마음이 아무리 넉넉해도 나는 낯선 이에게 그렇게까지 다가갈 수 없다.
바바의 뒷모습을 보며 감비아에서 산잘리가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성! 인간성이 중요해!" 나는 문득 바바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도울 수 있어요?"
그게 내가 자란 방식이야
너를 혼자 보내는 게 마음이 내키지 않았어
그 말이 툭, 하고 내 안에 내려앉았다. 문득 오늘 하루동안 마주친 친절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세네갈행 버스에서, 내 옆에 앉은 아람이 멀미로 구토를 하며 힘들어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동 출신 승객이 조용히 약과 물을 건넸다. 서울에서였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까? 문득 내가 지나쳐온 무심함과 냉담함이 떠오른다.
감비아에서부터 다카르까지, 하루 동안 많은 얼굴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서로를 살폈던 작은 순간들이 오래 남는다. 친절은 어쩌면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행동 하나가 어떤 날의 기억을 통째로 바꿔버리기도 한다.
며칠 후, 아침에 일어나니 바깥이 시끌시끌하다. 집 앞 사원 앞에 천막 하나가 쳐져있다. 뭔가 행사를 하는 것 같다. 아침을 먹으러 가는 길, 무슨 일인지 궁금해 천막 앞에 멈춰 섰을 때, 한 청년이 다가왔다.
안녕, 나는 제네프야
혹시 이게 무슨 행사인지 궁금해?
아기가 태어나서 축하하는 거야
라를 먹어볼래?
그는 자기가 먹던 접시와 숟가락을 건넸다. 나는 달콤한 맛에 정신없이 세 숟갈을 떠먹었다.
“째부젠도 있어. 줄까?”
미안한 마음에 바로 대답을 못했다.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그는 "어디 가야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마리아마의 집으로 아침 먹으러 가고 있었어"라고 답하고 돌아서 그곳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문득, 눈물이 났다. 내가 처한 상황을 먼저 살펴주고 다가와준 제네프에게 감사했다. 내겐 익숙하지 않은 큰 친절함이다.
이곳에서는 지나가던 낯선 사람도 자신이 먹던 것을 내밀며 묻는다. "먹을래?"
너무 당연하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득 이 골목의, 이 마을의,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내 친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지 말이다. 부르키나파소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인생의 조언을 진지하게 구할 수 있어. 모두가 친구이기 때문이야." 만약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훨씬 덜 외로웠을 것이다.
오후가 되어 집 근처 시장에 들렀다. 세네갈의 여러 아티스트들이 만든 작품들과 소품들이 있었다.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멀리서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곳에서 나는 시디 소를 만났다. 놀랍게도 시디 소는 2005년도에 제주 박물관에 머무르며 방문객들에게 전통 노래를 불러줬다고 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판매한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멀리서도 단숨에 시선을 끌었다. 작업실엔 세네갈에서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색깔과 풍경을 그의 방식으로 풀어낸 그림들이 가득했다. 그는 여기저기를 많이 여행한 듯 보였다.
나는 그에게 "이곳에서 많은 걸 배우고 친절한 배려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삶이 그렇다"며, "어디든, 좋은 것이 있는 반면에 나쁜 것도 있다"했다. 맞는 말이었다. 세네갈이라고 해서 좋은 것만 있는 것도,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도 '아프리카는 이렇다'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었다. 노예무역의 유산, 탈식민 이후에도 이어지는 식민화로 인해 여전히 세네갈을 포함한 서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있다.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삶이 절절히 푸른빛으로 전해졌다.
며칠 뒤, 순베디움(soumbedioune) 체크아웃을 하며 그동안 도와준 친구 아지즈와 인사를 나눴다. 그간 서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덕담(베네딕션 benediction, blessing, 은총)을 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나는 아지즈에게 덕담을 하며, "코라를 배우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할아버지도 코라를 치며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라고 했다. 아지즈는 "넌 끝없이 빛나는 태양의 에너지 같아"라고 말했다. 그건 아마도 세네갈 다카르의 태양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준 에너지였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 빛을 거울처럼 반사했을 뿐이다.
다카르에 머무는 동안 많은 덕담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안부를 묻고 서로를 위한 말을 건넸다. 잠시 스치듯 연결되었어도 그 짧은 순간이 마음에 잔상처럼 남는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살아 있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느꼈던 단절과는 사뭇 다른 감각이다.
2025.1.11.
며칠 사이 더 저렴한 숙소를 찾아 순베디움에서 메르모즈(mermoz)와 마멜레(Mamelles)로 이사를 했다. 숨베디움을 벗어나니 거리에서 사람들의 온기가 사라졌다. 숨베디움은 새, 양, 고양이, 바다, 태양, 사람과 탈것이 뒤엉켜, 삶의 소리로 동네가 가득한 곳이었다. 반면, 메르모즈와 마멜레는 높은 건물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빠르게 지나갔다. 건물은 더 튼튼하고 높아졌지만, 돈이 삶에서 무엇을 빼앗는지를 알게 해주는 풍경이었다.
새로운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길거리 음식점에서 쩨부젠을 시켰다. 자리에 앉아 밥을 기다리는데, 숨베디움에서 보지 못했던 어린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들고 다녔다. 적게는 두 명에서 많게는 15명까지 무리를 지어 다녔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다른 나라와 달리 먼저 다가와 밥을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게 바깥쪽 의자에 앉아 숟갈을 드는데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식당에서 식사 중인 사람 곁에 곁에 어린이 두 명이 조용히 서 있다. 그 사람은 한참을 있다가 자리를 떴고, 남긴 밥을 어린이들이 허겁지겁 자기 그릇에 담았다.
왜 이 동네에는 이런 어린이들이 많은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들은 '탈리베(Talibe)'라고 불린다고 한다. 탈리베는 무언가를 찾거나 배우는 사람(seeker, student)의 의미로 주로 세네갈,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차드, 말리, 모리타니아 등의 서아프리카에서 다아라(daara- 주로 이슬람 국가에서는 마드리사라 불리지만, 서아프리카에서는 이렇게 불림)라 하는 이슬람 학교에서 코란을 배우며 '마라봇(marabout)'이라 불리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다고 했다. 그들은 배움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낯선 도시를 살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탈리베가 세네갈 문화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세네갈 문화에는 테라냐(teranga, 환영/환대)라는 핵심 가치가 있다. 단순히 손님을 반갑게 맞는 환대를 넘어, 공동체 정신과 나눔, 존중, 배려가 어우러진 존재의 방식이자 일상의 근간이다. 누구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떤 종교나 계층에 속해 있든 차별 없이 편안하게 맞이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떼라냐다.
역사학자 이브라 셴은 떼라냐를 "타인을 가족처럼 여기고, 조언하고 돌보는 마음"이라 했다. 이 정신은 특히 음식 문화에 스며 있다. 혹시 누가 올지 몰라 항상 한 접시를 더 준비하고, 가장 좋은 몫은 손님에게 건넨다. 이 환대는 종교를 넘어선다. 서로 다른 정체성은 갈등이 아닌 공존의 바탕이 된다.(1)
한국에서 난민 인권 활동을 할 때, 세네갈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다른 종교와 신념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엔 분쟁보다는 서로를 품는 사랑과 연대가 더 많았던 게 아닐까. 비록 사회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탈리베도 단순한 ‘거리의 아이들’이 아니라 이 공동체 문화 속에 존중받고 관계를 맺는 존재로 살아가는 듯했다.
세네갈의 음악가 유수 은두르(Youssou N'Dour)가 부른 ‘테라냐’의 노래가 있다. 비리마(Birima)라는 제목의 곡이다. 그는 이 노래에서, 브리마라는 인물이 어떻게 타인을 환대하며 살아왔는지를 노래한다. 유수 은두르의 목소리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다카르에 머무는 동안 매일 같이 덕담과 은총을 나누며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became well-known for his festive reign
축제로 가득한 그의 통치는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네
Where every occasion was reason for
어느 하루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고
Celebration in great style
언제나 근사한 잔치로 채워졌지
Having inherited a rich oral tradition
풍성한 구전의 전통을 물려받은 그는
He encouraged local musicians
지역 음악가들을 아낌없이 품었네
Ah! Birima!
아, 비리마!
A day spent in your presence
당신 곁에서 보낸 하루는
Was the picture of hospitality!
환대의 풍경이었네
#감비아에서 세네갈로 버스로 오는 방법
· 감비아 버스 출발 시간: 아침 6:30, 9:30, 12:00
· 가격: 1,150달러 시
· 버스 정류장 위치: GTSC 버스 스테이션, Gambia Transport Service Company
https://maps.app.goo.gl/Aksp1VS62rav8W6g8
# 유스은두르의 Birima https://www.youtube.com/watch?v=6eAoQIXVi6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