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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가 알려준 사랑

그들은 고통의 무한함을 응시하며 나아갔다

by 두치

이곳에 온 후로 매일 코라 꿈을 꿨다. 코라 맬로디가 밤새 꿈속에서 뱅뱅 돌다가 아침에 일어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코라 꿈을 꾸고 나면 내 몸 안에 리듬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벌써 여기 온 지 며칠째인지 까먹을 정도로 이곳 생활이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만큼 연습도 게을러졌다. 점심때 네이밍 세리머니를 다녀온 이후로 선생님이 나간 틈을 타 오후 내내 낮잠을 잤다. 어제 배웠던 것들이 어느 정도 내 몸에 들어왔다고 자만했던 것이다. 역시나 선생님은 그걸 알아채고선 집에 돌아오자마자 고강도 훈련을 시켰다. 그동안 배운 두 곡을 오가며, 내 몸이 이 리듬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를 확인하셨다.





짧은 훈련 과정에서 여전히 이 음악이 온전히 내 몸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느낀다.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걸까? 거의 매일 코라를 붙잡고 꿈을 꾸고, 굳은살이 베여도 한참 갈길이 남았다. 내가 좀 쉬고 싶고 게을렀던 것들이 다시금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제자리에 앉힌다. 선생님이 섣불리 더 많은 진도를 나가지 않는 이유도 아직 내가 때가 안 됐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쉬지 않고 한 세트에 네 시간 정도를 연습하는데, 이 이상을 연습하면 계속 연주하기가 힘들다. 아팠다 조금 좋아진 손목이 다시 아프다. 어느 정도 갔다 싶은 지점들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의 반복이다.


그래.. 계속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하는구나. 단 하루라도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거구나. 내 몸에 완전히 이 음악이 들어올 때까지.. 나는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


선생님이 길에서 괴롭힘 당하던 강아지를 구조했다. 그 강아지를 위해 사준 강아지 인형



그들이 코라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그건 코라가 아니다
백인들이 연주하는 바보 같은 방식에 불과해

코라를 전통적으로 배운다는 것은
무조건 선생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하라는 것만 해야 한다
나는 너에게 전통 코라를 알려주는 것이다


선생님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배우지 않으면 그것은 코라가 아니라 한다. 그럼 도대체 진짜 코라는 뭐란 말인가. 선생님 말씀이 다 맞는데, 때론 이 전통이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하루에 7만 원 가까이의 큰돈을 내고 선생님이 하라는 기본 반주 두 가지만 한 달 내내 연주하는 게 쉽지 않다. 여기에 있는 단 하루라도, 한 번이라도 더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야 집에 돌아가서 혼자라도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한 달간 내게 같은 것만 아주 조금 알려 주는 것 같다.


정말....... 음악의 길은 나를 너무나 시험한다. 이 기초적인 반주 하나를 배우기 위해 이렇게나 큰 돈을 한 달 동안 써야 하는 건가? 애초에 다른 나라의 전통을 배운다는 것이 제국주의적인 발상이었던 걸까. 큰돈이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현실에서 초연해져야 하는데 내 온몸은 이미 힘이 다 빠져서 방으로 돌아와 코라를 칠 기운조차 없다.


그렇게 며칠간 힘이 빠져있는 내게 산잘리는 물었다. "여기서 코라 배우는 게 어때?" 이어서 그는 말했다.


너의 인내가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오게 했어
너는 삶을 배우고 있는 거야

나는 람방을 2년이나 쳤어
정말 지긋지긋했어
2년이나 같은 걸 치게 하다니
나중에야 알았어
아버지가 나를 왜 그렇게 가르쳤는지

너는 그냥 악기를 치는 걸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배우는 것이다
음악적인 것(musical thing)은 그냥 악기 치는 거랑은 달라.

나는 학생들에게 코라의 환상을 가르칠 수 있어
근데 진짜 코라는 다르다. 그런 게 아냐



산잘리의 말을 듣는데 눈물이 다. 나는 같은 반주를 한 달 밖에 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나 힘든데 선생님은 2년이나 쳤다니..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은 내게, 내가 인내했던 방식으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을 알려줬다고 했다.


나는 음악을 배우고 있는 거구나.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백인이 만든 앱으로 연주를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만 노력을 기울여 이곳까지 온 이유는 삶과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시간은 삶이다.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 리듬이다. 리듬 안에는 모든 것이 있다. 만딩카 사람들이 음악을 짓고 실행하는 데 있어 냐마(초자연적인 힘)를 믿는 것처럼, 리듬 안에는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신념과 행동, 세상 만물과 관계 맺는 방식이 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내게 리듬은 심장박동과 같은거라 덧붙였다. 뛰고 멈추며 흘러가는 모든 움직임은 리듬이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작년에 둔둔연주를 시작하며 봤던 한 영상이 생각났다. 우리가 말하는 것, 걷는 것, 일하는 것 모든 것이 리듬이라는 아름다운 영상이다.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내 심장박동을 느껴봤다.


영상: FOLI (there is no movement without rhythm) original version by Thomas Roebers and Floris Leeuwen






본숭은 뿌리, 고향이란 뜻이야
코라에도 본숭이 있다.
본숭이 잘 엮여 있어야 튜닝이 유지가 되지


내 음악의 본숭은 어디에 있을까. 내 음악의 본숭은 이들의 영혼과 삶의 태도에 있다 느낀다. 이 세상을 살았던 이들의 조상, 아니 내 조상이기도 한 사람들. 그들이 남긴 삶의 리듬에 나의 본숭이 있다.


삶을 배우는 것은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린다. 삶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절대적으로 사는 것(living)이다. 그렇게 나는 코라를 통해 삶의 리듬을 몸에 새기는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다. 한 곡을 치기 위해 오롯이 바쳤던 2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리듬이 결국 몸 안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지나며, 문득 젤리들(서아프리카 음악 세습가)의 삶을 가늠해 본다.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견디고, 오래 기다렸을까. 선생님은 모든 존재가 모래알 같다 했다. 모래알 같은 자신의 운명을 끝없이 받아들인 것이 코라폴라(코라연주자)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래. 선생님 말처럼 죽음만 아니라면, 살아가는 일들은 모두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인내가 나를 음악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내가 이 길을 걷게 된 것도 고통의 삶을 잘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코라는 나를 계속해서 시험할 것이다.






뮤트가 잘 안 될수록 코라에 몸을 더 기대 본다. 코라의 몸이 내 몸에 더 깊이 기대어지니, 불현듯 아침 켐부제 시장 인파 속에서 느꼈던 사람들의 몸이 생각났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좁은 시장 골목 사이로 사람들이 참 많았다. 다들 각자의 용무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속으로 내 몸이 들어갈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연말 서울 지하철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에 껴서 계단 하나하나를 오를 때의 감각과는 다른 편안함이다. 켐부제 시장 인파 속에서는 내 몸이 닿거나 기대져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몸이 닿아도 되고, 서로 기대도 괜찮다는 감각이 내 안에 항상 있던 어떤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다. 긴장이 내려가니 내 몸의 감각이 더 잘 느껴졌다. 호흡과 발걸음이 살랑임을 느꼈다.


코라는 너를 사랑해

코라는 왜 이런 감각을 내게 알려주려고 할까? 선생님은 “코라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코라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선생님과 그의 조상들이 내게 그리 말해준 것 같아 그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코라가 내 삶에 들어온 이유가, 결국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살면서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로 인해 세상을 더 이상 믿기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코라는 힘을 빼고 다시 이 삶에 기대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게 도와준다.


과거엔 삶의 많은 것을 내 힘으로 해내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꿈이 있었고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왔다 믿었다. 그만큼 원하는 대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지만, 반면 삶이 내게 주는 시련들에 부러지기 쉬웠다. 내가 원했던 어떤 면만큼, 원치 않았던 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살아갈수록 고통이 흘러넘치는 이 삶과 어떻게 조우하며 살지 참 어렵게 느껴진다. 국가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당연하고, 두려움과 돈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서는 게 만연한 이 사회에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느낀다.


앞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이 삶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코라가 내게 온걸까. 코라의 일부가 된 나무나 동물을 보며 종종 생각한다. 너에게 닥치는 모든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도 다 받아들이고 기대 보라고. 그것이 삶이라고. 다 자연히 우주의 법칙에 따라 모든 것들이 흘러갈 것이라고


산잘리가 알려준 리듬을 연주하다 보면, 이들이 얼마나 삶을 믿고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기며 살아왔는지 느껴진다. 고통이 범람하는 삶 속에서도, 그들은 온몸으로 춤추며 살아냈다. 눈물이 나도록 절절히 다가온다. 글이나 말로 담을 수 없는 감각이다. 몸으로만 느낄 수 있는, 삶의 리듬이자 그들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 리듬을 수만 번 반복해 연주하면서, 나는 이전까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보이지 않는 시간의 틈새를 경험한다. 수많은 공간 중에서 하필이면 그곳, 그 지점에 멜로디를 쳤다는 사실—그 사이를 느낄 수 있는 여유는 결국 삶을 끌어안는 사랑으로부터 나왔다고 느낀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코라를 통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깊고도 한없는 사랑을 느낀다.



“이 문을 지나,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는 그들은, 고통의 무한함을 응시하며 나아갔다”

De cette porte pour un voyage sans retour lls allaient les yeux fives sur l'infini de Na sousfrance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세네갈 고레섬 마지막 문에 쓰인 글귀라고 한다. 노예가 되고 내 몸이 팔려나가도, 살아 있는 한 고통을 응시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던 모든 삶을 느낀다.



코라를 노래하게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잇는 사이에 온갖 모습과 빛깔의 새들이 모링가와 라임 나무 가지에 앉았다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코라와 마주 보는 일상이 좋다.



Tip. 부바카 Boubacar가 하는 '님바Nimba'라는 그룹의 연습에 다녀왔다. 님바는 매일 오후 콜롤리 kololi해변에서 만데 둔둔과 젬베, 춤 연습을 한다. 누구든 원하면 합주를 할 수 있다.

#브리카마에서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
켐부제에서 세네감비아까지 셰어 택시를 이용하면 짧은 거리를 자주 환승해야 한다. 편도로 5번 정도의 환승을 하면 세네감비아까지 갈 수 있다. 셰어택시는 한번 탈 때 거리에 따라 5-15달라시 정도의 가격이다. 켐부제에서 세네감비아까지 편도 총비용은 65달라시.
#세네감비아에서 브리카마 다이렉트 셰어버스는 50 달라시다. 가능하면 셰어버스를 타면 좋지만 셰어버스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거의 한 시간가량을 기다려야 하고, 버스가 도착해도 서바이벌로 자리를 구해야 한다.
#주로 브리카마에서 세네감비아나 반줄 근처의 각 지역으로 가는 셰어 버스들은 아래의 게러지에서 다 구할 수 있다. "Going to garage"라고 하면 대부분 셰어택시 기사들이 알아듣는다.
# 브리카마 게러지 위치: https://maps.app.goo.gl/L2QoFhUTMNi9uknC9?g_st=ic


핸드폰을 도난당했습니다. 여러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고 보니 지난 한 달간 연재 일정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서아프리카에서 지내며 정확한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삶이 주는 만큼 흐르며 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의 연재도 그렇게 흘러가겠습니다. 이 여정을 계속하는 한 계속 연재해 나갈 거니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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