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야, 삶을 잇는 음악
다카르 대극장(Grand Théâtre)에서 열린 유수은두르(Youssou N’Dour)의 그랑 발(Grand Bal) 콘서트에 다녀왔다. 감비아에 있을 때 우연히 그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콘서트 소식을 알게 되어, 바로 예매했었다. 유수은두르는 서아프리카 전통 음악을 접하면서 알게 된 아티스트다.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1990년 일본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 영상을 보게 되었고, 나는 단번에 빠져들었다.
공연은 저녁 7시에 시작된다고 되어 있었지만, 나는 여섯 시 사십 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느낌상 본공연은 9시쯤 시작될 것 같아 우선 배를 채우기로 했다. 경찰 단속에 허겁지겁 짐을 싸는 노점상들 사이에서 양파볶음과 감자튀김을 넣은 바게트, 그리고 콜라를 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줄 끝에 서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주색으로 물든 저녁 하늘 위로 샛별 하나가 가장 먼저 떠 있었다. ‘바게트빵 하나만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줄은 점점 길어지고, 인파는 계속 밀려왔다. '그랑 발(대무도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은 옷장에서 가장 멋진 옷을 꺼내 입은 듯했다. 짙은 속눈썹 아래,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뱅글이 가득한 드레스들이 흔들리며 걸어 들어왔다. 멋진 타이와 브로치를 단 슈트 차림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 사이로 암표상, 길거리 상인, 굶주린 개와 고양이까지 오갔다. 다카르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한데 엉켜 하나의 축제를 이루는 듯했다.
늦은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했던 마음과는 달리, 9시 가까이가 되어서야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7시에 시작한다는 공연 홍보와는 다른 시간이었지만, 이곳의 여유로운 시간 문화가 그때까진 참 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꺼운 후리스를 껴입었음에도 추운 1월의 밤공기를 버티며 공연을 기다리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결국 본공연은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1시쯤 시작됐다. 우리가 공연장에 도착한 시점으로부터 거의 6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을 밤새도록 축하하고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연에도 스며 있다. 내 짧은 생각으론 10시쯤 공연이 시작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본 공연을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필요했다. 추위와 몰려든 인파에 화장실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런 공연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12시가 넘어서야 서서히 공연장에 입장을 했다.
자정을 넘겨 드디어 유수 은두르가 무대에 올랐고, 객석 전체에 환호가 터졌다. 그는 무대 구석구석을 돌며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그가 첫 노래를 시작하자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고 드론쇼가 시작됐다. 유튜브로만 듣던 목소리를 직접 실물로 듣게 되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노래는 많지 않았지만, 공연장의 수천 명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그 춤들이 하나하나 모여 커다란 파도를 만들었다. 옆자리 사람의 엉덩이가 계속해서 부딪혔지만, 나도 그 파도에 몸을 맡겼다.
사바르북과 타마니의 연주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지고, 음발락(mbalax)의 에너지는 강렬했다. 밴드의 모든 연주자가 눈부셨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기 위해 열심히 호응했다. 그 호응에 응답하듯, 유수은두르가 내 앞까지 와서 사바르를 쳐줬다.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나는 그가 공연에서 불렀던 〈New Africa, 새로운 아프리카〉의 가사를 찾아보았다.
나는 Youssou N'Dour다! Mane Youssou Ndour!
아프리카 사람들이여, 모여라! Ma ngi wo! bépeu domi Africaaaa!
같이 생각하자 Gnou bokeu khalate!
같이 바라보자 Bokeu guiss guiss!
같이 소망하자 Bokou yénéééééé!
국경 없이 Sans frontières
우리의 것을 함께 모으자 Bolé sounouy ame ame
그리고 함께 일하자 Té liguééééy!
고통을 참아야 한다 Wara tougnou
누구든 배척하지 말자 Nangou kéne nieuw
서로를 닮아가자 Dignou féwaléééééééééé!
이 땅의 주인은 바로 당신 Yaw ya ko mome!
그리고 도움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Té sakou ndimbeul
진심으로 돕자 Ndimbeul na sa fek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몫 Lokhoy boroooom!
노래하라, 아프리카여! Woy Africa!
조상들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라 Bo doul nopé khalate la niou défone Mameuuuu ya!
마음을 닫지 말고 Sa khol do toul nekh
거짓된 길을 따르지 마라 Té dotou khame lou doul féyane to!
아프리카는 한 사람이 아닌 모두의 것이다 Souma sagnone Africa, béne niit mo koy djité!
우리의 생각과 힘을 모아 Niou bolé sounouy khalate ak sounouy dolé
그것을 하나로 쏟아붓자 Diokh ko!
국경을 열고 Naniou oubi frontiers yi!
길을 정비하자 Ratakhale yone yi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도록 Ba nieupeu guissé
생각을 바꾸자! Changes your thinking!
함께 일하라! Té liguééééy!
계속 전진하라! Keep on working!
조상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 나지만 Bo doul nopé khalate, Sa khol do toul nekh
과거에 갇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Té dotou khame lou doul féyane to
우리는 아프리카! All you people! Africa!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견디고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노랫말 하나에 내 삶이 위로받는 것 같다. 그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고무하고 연결하며 사랑을 노래하는 이 시대의 역사 전승자다.
그는 단지 음악가가 아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하고, 침묵하지 않는다. 그래미 수상 소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음악으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합니다.” 더불어 그는 전한다. “우선 서양인들은 아프리카가 단순히 비참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배워야합니다.”
그 말에, 감비아에서 만난 만딩카 젤리, 산잘리 조바르떼가 떠올랐다. 그는 말했었다. “음악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다.” 감비아에서 함께 지냈던 백인 스태프의 폭력적인 언행을 두고 그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상호작용은 가장 어려운 일이야.
사막의 모래알보다 작은 존재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해.
모든 걸 내려놓고 겸손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상대하기 쉬워.
아무렇지 않게 대하면 되니까.
정말 어려운 건, 서로를 존중하며 마주하는 일이야."
하지만 나는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식민지배를 통해 이미 백인들이 흑인들을 충분히 착취해 왔는데, 그들이 여전히 감비아까지 와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배하려는 모습을 보는 건 참기 힘들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듯 산잘리는 조용히 코라를 연주해 줬다.
한국에서 처음 코라를 알아가던 초기에, 나는 젤리나 코라 음악을 단지 왕을 찬양하는 도구로만 여겼다. 권력과 왕 중심의 이야기는 내게 낯설고, 심지어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때는 '이 음악을 과연 배울 가치가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내 오만한 판단이었다.
젤리야. 그냥 노래 부르는 사람이 아니야.
삶을 치열하게 말하던 사람들이야.
불의에 침묵하지 않던 사람들이야.
감비아의 독재 정권 시절, 코라로 저항하다 가족이 납치될 뻔한 친구의 형제 이야기가 떠오른다. 투마니 디아바테가 산잘리를 ‘사자를 죽이는 사자’라 부른 이유도, 그의 음악 속에 깃든 저항의 영혼 때문이었다. 젤리는 단지 음악가가 아니다. 그들은 음악으로 세상의 불의에 맞섰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산잘리는 내게 말했다. “젤리는 머리가 좋아야 해. 누가 어떻게 고문당했는지, 다 기억하고 노래로 전해야 하거든.”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유수 은두르의 가사가, 그날 밤 더 깊게 다가왔다. 그의 노래에는 단단한 영혼이 담겨있다. 고통과 함께 건네는 말 한마디에는 큰 힘이 있다. 삶을 향한 굳센 의지가 담겨 있다. 유수은두르의 가사 한 줄 한 줄은 살아온 모든 과정을 돌아보게 할 만큼 깊은 위로와 힘을 품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이 노래들은 제 것이 아니라, 세네갈의 것입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강한 연대의식을 느꼈다. 삶이 던지는 시련과 고통보다 더 믿고 싶은 것, 서로를 돕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느꼈다.
유수은두르의 어머니는 세네갈 전통 음악가인 젤리(djeli)였고, 그는 그 유산을 이어받았다. 어머니를 통해 배운 음악에는 사랑이, 역사와 기억이, 공동체가 담겨 있다. 그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고무하고, 연결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든 순간이 이 문화의 고귀함을 새삼 일깨운다.
젤리야. 그냥 노래하는 사람들이 아니야
삶을 노래했던 사람들이야
침묵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야
이런 문화를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 대륙의 신으로부터 지켜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별 말링케의 이름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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