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르에서 만난 사바르의 영혼
해변으로 가는 길
오후 4시, 사바르(Sabar) 춤을 배우기 위해 게쟈와이(Guédiawaye) 해변으로 향했다. 사바르는 전통적으로 세네갈 지역 월로프(Wolof)와 레부(Lebou) 여성들이 세례식, 결혼식, 출산, 성인식처럼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조직했던 의례다. 지금은 민족, 지역, 성별, 장르와 무관하게 세네갈의 대표적인 춤으로 자리 잡았다.
사바르 춤을 배우러 가는 길, 2023년 코트디부아르 그랑바삼에서 백사장 열기에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침 오후 4시는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 바짝 긴장한 채 이동하던 중, 감비아에서 함께 둔둔잼('둔둔'북을 함께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모임)을 했던 이들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해변에서 춤추고 연주해야 늘어. 실내는 너무 편안해서, 진짜 연주하거나 춤추는 감각이 생기기 어려워.”
그 말과 함께, 서울엔 야외에서 춤추거나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 한켠이 서글퍼졌다.
몸과 리듬의 수행
현장에는 댄서 네 명, 연주자 두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 모두(Modou)는 사바르 북 연주에 맞춰 워밍업을 이끌었다. 한국에서 부르키나파소 춤을 배웠던 <소금공장> 수업의 워밍업이랑 비슷해서 놀랐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여기선 계속 춤을 추며 구음으로 리듬을 외쳤다. 한 사람이 구음으로 리듬을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 외친다. 춤을 추며 리듬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놀이 같기도 하고, 마치 요가나 무술 같은 영성적인 실천 의식이자 수행 같기도 했다. 단순한 몸풀기를 넘어서, 정신을 집중하고 기운을 모으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사바르(Sabar) 무용수들의 다수가 무리드교(Murīdiyya) 소속이며, 많은 이들이 바이팔리즘(Baye Fallism)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카르에서는 바이팔리즘의 상징과 실천을 도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바이팔은 무리드(Mouride) 수피 교단의 한 분파로, 공동체, 노동, 헌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들의 복장과 외형, 노래와 춤은 사바르 무용수들의 레퍼토리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일부 사바르 공연단은 셰이크 이브라힘 파알(Sheikh Ibrahima Fall, 무리드 교단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을 찬양하는 발레 공연도 한다.
일부 서양의 사바르 애호가들은 이 춤의 종교적 뿌리에서 눈을 돌리려 하지만(1), 문화와 종교는 사실상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바르의 춤 세계는 종교적인 실천이 함께 있는 총체적인 경험이다.
워밍업 후, 우리는 파로자(Farodja)라는 춤을 배웠다. 사바르 리듬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어떻게 춤춰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만데 음악(서아프리카 만딩카 사람들의 음악)의 리듬은 둔둔북이 리듬의 기본 구조를 받쳐주고, 젬베가 춤의 동작을 따라 연주를 해주는 느낌이라면 사바르 리듬은 그렇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사바르 북소리 사이에 맞춰 리듬을 몸으로 연주해 내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함께 춤추는 조잘로(jojalo)가 구음을 하며 사바르 춤을 알려줬을 때, 보이지 않는 리듬의 마디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의 구음은 비밀의 문을 여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다. 내 리듬의 감각은 조잘로의 구음을 통해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완전히 재배치되었다.
음악은 복잡하지 않다.
복잡한 건 우리다.
음악은 늘 여기 있고, 언제나 같다.
오늘 나는 여기 있지만,
어쩌면 내일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baara mbaye* 리듬)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어느 사바르 댄서의 말
쉬는 시간에 하딤(hadim)과 바친쟈이(bachindiayi)의 연주를 들으며 모두(Modou)는 사바르 연주의 구조를 설명했다. 은데르(nder)는 엄마 북으로 솔리스트 역할을 하고, 춀(chor)은 아빠 북으로 베이스 역할을 한다. 다양한 북들이 가족처럼 기능하며 하나의 리듬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흥미로웠던 건 일부 리듬 이름이 '째부젠'(Thieboudienne)처럼 세네갈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이름과 같다는 점이었다. 이 음악과 춤이 일상과 얼마나 가까운지, 문득 실감이 났다.
원의 수치심과 치유
쉬는 시간 이후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한 사람씩 가운데로 들어가서 춤을 췄다. 나도 빠짐없이 원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무 동작도 기억나지 않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구조 안에서 나는 더 위축됐다. 그 시간이 원망스럽게까지 느껴졌다.
한국에서 서아프리카 전통 춤 학교인 <쿨레칸 스쿨>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국 사람들은 원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맞다. 나는 원 안에 들어가면 얼어붙고 만다.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춤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 앞에서 자유롭게 몸을 쓰는 경험이 없던 내게, 원은 큰 두려움이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어릴 때부터, 아니 태어날 때부터 가족과 이웃이 함께 원을 만들고 춤을 춘다. 그렇게 다 같이 모여 한 사람을 지켜 봐준다. 그래서 동그라미, 원의 형태가 익숙한 게 아닐까.
요즘 바마코의 대중교통 소트라마에서도 느낀다. 소트라마도 좌석이 원형 구조다. 처음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서로를 바라보는 구조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좌석을 일렬로 배치하지 않았을까.
근대에 들어서 서아프리카 전통 춤의 생존 방식이 변화하며, 대부분의 전통 춤을 공연 무대에서 접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본디는 그렇지 않다. 서아프리카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전통 춤이 원형으로 이루어진다. 연주자와 마을 사람들은 앉거나 서서 원을 형성한다. 연주가 점점 고조되면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원 안으로 들어가 춤을 춘다.
이런 춤의 역동성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모두 관객이면서 동시에 댄서가 된다. 사람들은 원형 춤을 통해 공동체의 유대감, 지속성, 그리고 안정감을 경험한다. 누구든지 댄서가 될 수 있는 원의 구조가 있기 때문에 춤은 사회를 결속시켰고, 역사를 보존하며, 문화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나의 춤을 사람들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지켜봐 준다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지, 아직 말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원 안의 춤은 죽고 싶을 만큼 커다란 수치심을 주지만, 동시에 깊은 치유를 준다. 춤을 추는데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그 원 안으로 들어가서 춤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한 걸음, 아름다운 춤
2차 수업에는 모두(Modou) 뿐 아니라 그랑(Grand), 조잘로(Jojalo), 보바(Boba) 세 명의 댄서가 차례 각자의 방식으로 사바르를 가르쳤다. 나는 그들을 수강생이라 생각했기에 놀랐다.
그들의 사바르는 다 같은 사바르였지만, 다 다른 사바르였다.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해석한 사바르를 알려주는 방식이 아름다웠다. 그들이 보여준 사바르는 어느 것 하나가 '틀리'지 않았고, 어색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의 춤은 모두의 걸음걸이가 다른 것처럼, 단순히 누군가의 동작을 로봇처럼 따라한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몸으로 만든 움직임이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진 않아도, 걸음걸이를 통해 누군가를 알아볼 때가 있다. 그만큼 몸의 움직임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걸음은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 몸의 구조, 습관과 감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움직임이다. 걸음걸이에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 상태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땅을 디디며 자랐는지도 담겨있다.
사바르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의 많은 전통 춤 모두 마찬가지다. 몸의 모든 움직임은, 그 사람이 걸어온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하나의 언어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 가장 본질적으로 지닌, 근원적인 리듬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그랑과 조잘로, 보바의 춤을 보았을 때, 나는 어릴 적 구슬 주머니를 열어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주머니를 열고 하나씩 꺼내 보던 그 구슬들, 각각의 색과 질감이 다르고 너무나 아름다워 마음이 설렜던 기억처럼, 그들의 춤은 하나하나 고유한 빛깔로 반짝이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수업이 끝난 뒤, 우리는 손을 모아 서로에게 사랑과 에너지를 나누었다. 두 손 가득 받은 따스한 기운을 몸 위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각자 자신의 몸을 사랑과 기쁨으로 채웠다. 함께 춤춘 다섯 명 모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자연스레 어깨를 맞대고 외쳤다. "We are together!"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 사바르 북 가족 소개
· Farodja 베이스 리듬
· Tcholle 춀 베이스 / 아빠 (판이 가죽으로 되어 있음)
· mbanban 음방방 (판이 두꺼운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음)
· toungouné 퉁구네 (플라스틱으로 된 북, 음방방보다 더 작은북, 더 높은 소리)
· nderr 은데르 엄마 (솔리스트)
# 무리드교는?
무리드교는 19세기말 아마두 밤바 음바케(Ahmadou Bamba Mbacké, 제자들 사이에서는 셰이크 아마두 밤바 또는 세렝 투바라고도 불림)에 의해 창립된 수피 이슬람 교단으로, 식민지 상황 속에서 이슬람 신앙을 되살리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Babou 2011). 프랑스 식민 행정부에 의해 가봉으로 유배된 이후, 아마두 밤바 음바케는 세네갈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다(De Jong 2016). 무리드교 교단은 점차 형제단의 영역을 넘어, 사회·경제·정치·농업·문화·이주·예술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 뿌리를 내리며 세네갈의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고, 월로프 사회 전반의 제도, 공공 공간, 정치적 영역에까지 스며들었다(Dozon 2010).
(1) https://rai.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1467-9655.14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