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스 프린트, 식민의 유산인가 서아프리카의 문화인가
며칠째 배가 아프다. 먹는 걸 조심하지 않아서일까. 말리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하고, 기분 전환도 할 겸 근처 쇼핑몰을 천천히 걸었다. 문득 작은 서점 하나가 눈에 들어와 별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우연히 왁스천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앙카라(Ankara), 혹은 ‘더치 왁스 프린트(Dutch Wax)’라고도 불리는 이 천은 서아프리카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이 녹아 있다. 서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화려한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집어든 책은 그런 천들의 패턴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이름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처음엔 각각의 색깔과 아름다운 패턴에 이끌렸지만, 책을 읽다 보니 이 천들이 단순한 옷감이 아니라, 입는 이의 마음을 담아내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아름다운 것만 취하려 한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삶은 견디기 힘든 비참함으로 가득하지만, 바로 그것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
천이 전하는 메시지들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가 살아오며 소중하게 여겼지만, 어느새 잊고 지냈던 어떤 가치를 이곳에서 다시 마주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검색을 했다. 그리고 곧 뜻밖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온 '서아프리카 천'
왁스천은 서아프리카 많은 지역의 일상복이자 의례복이며, 디아스포라 공동체에게는 정체성과 뿌리를 상징하는 옷이다. 그런데 이 천이 서아프리카가 아닌, 유럽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19세기 중반 네덜란드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자바(Java)의 전통 직물 바틱(Batik)을 모방해 천을 대량 생산하고 판매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계로 찍어낸 문양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이후 네덜란드는 서아프리카 출신 병사 3,000명을 고용해 서아프리카로 시장을 확장했다. 그렇게 그 실패작은 서아프리카에서 다른 운명을 만나게 된다.
면으로 된 왁스천은 더운 기후에 적합했고, 강렬한 색감과 디자인은 여성들의 눈길을 끌었다. 유럽 상인들은 지역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문양을 만들었고, 여성들은 이 천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에 걸쳐 “혈연의 검(sword of kinship)”, “배은망덕한 남편(the ungrateful husband)”, “네가 날면 나도 난다(you fly, I fly)” 같은 디자인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왁스천은 서아프리카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여성들은 천을 이용하여 의사소통했고, 특정 패턴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공유된 언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천을 자신의 정체성, 문화, 장소 또는 유산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겼지만, 그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경제적 이익이 없었다.*
왁스 프린트 회사들은 170년 동안 돈을 벌어 왔지만
그 돈은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아요
- 가나 디자이너 나나 콰메 아두세이(Nana Kwame Adusei)
이 천이 식민주의의 유산이라는 사실은 내게 오래도록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 괴로움을 통과하는 몇 주 동안, 이 천 뿐만 아니라 서아프리카의 수많은 것들이 식민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서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화폐인 프랑세파도,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가장 많이 쓰이는 Maggi 조미료를 비롯한 먹을 것들, 필수적인 통신망을 쥐고 있는 Orange 같은 통신사까지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여전히 프랑스나 초국적 자본의 구조 속에 있었다.
그 사실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감비아에서 코라를 가르쳐준 산잘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중국인들이 감비아까지 와서 물고기를 다 잡아다가 돼지를 먹여서 우리가 먹을 게 없어."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세네갈의 최대 참치 제조기업이 한국 기업인 '동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이 착취의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왁스 프린트가 아프리카다움을 상징하는 데
사용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말리 인디고 염색가 아부바카르 포파나(Aboubakar Fofana)
왁스 천은 서아프리카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언제나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이미지와 사물, 관습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새롭게 엮어 자기만의 언어와 문화를 만들어왔다. 충돌이든 동화든, 그들은 늘 그 사이를 살아냈다.*
그렇게 문화란 움직이는 것이다. 다른 지역이 그러했듯 서아프리카 역시 이동과 교류, 혼합과 창조의 땅이었다. 문화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채 순수하게 태어난 발명 따위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식민주의의 결과로 생긴 모든 것이 서아프리카의 문화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늘날 왁스 프린트는 서아프리카의 상징과 이야기, 공동의 기억을 직물에 정착시킨 기록이다- 한 연구자의 말*
하지만 역시나 그 출발 점은 네덜란드 제국이었다. 이 아이러니한 기원은 왁스천의 역사에 많은 것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식민 경험이 남긴 상처와 불신은 지금도 이 지역의 감각 속에 살아 있다. 말리 인디고 장인 아부바카르 포파나는 "왁스 프린트가 아프리카다움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왁스천은 서아프리카에서 재해석되어 사용되었지만, 단일한 문화 정체성의 기호로 여겨지기에는 여전히 복잡한 궤적을 지닌다.
오늘날 유통되는 왁스천을 비롯한 이른바 ‘아프리카풍’ 디자인들은 대개 서구적 감각 속에 갇혀 있다. 때로는 유럽 런웨이를 위한 무대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실제로 서아프리카의 시장과 거리, 사람들의 몸 위에서 살아 있는 문화적 요소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더구나 ‘토착성’이라는 이름 아래, 전통 안에 아프리카를 고정시키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어떤 여성이 왁스천을 입고 거리를 걷고 있다. 사람들은 ‘진짜 아프리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천은, 아프리카다움 그 자체는 아니다.
- 얀카 쇼니바레 (Yinka Shonibare)
어느 순간 ‘왁스천이 서아프리카 문화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전통이라는 말 아래 어떤 것은 ‘전통’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고 구분 짓는 기준이 내 안에서 너무 쉽게 만들어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왁스천은 식민주의의 유산인 동시에, 그 유산을 뒤틀어 새로운 의미를 덧입힌 직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재해석의 과정조차 하나의 단일한 '서아프리카'라는 이야기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이곳은 수많은 나라와 언어, 계층과 세대, 젠더와 종교로 구성된 다성적인 공간이다. 왁스천을 둘러싼 감각 또한 지역과 시간, 삶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진짜’라는 말은 본질을 가리키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위치와 시선을 드러낸다. 애초에 ‘진짜 서아프리카 문화’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천의 기원이나 브랜드, 문양이 아니라, 그 위에 새겨진 기억과 삶이 의미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동시에 ‘진짜는 없다’는 말 역시 경계해야 한다. 문화적 정체성을 둘러싼 실천은 공동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정치적 경계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서아프리카 문화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어떤 천이 전통인가를 묻기보다는, 그것이 지금 누구에게 어떤 목소리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논의의 중심에는 왁스천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왁스천을 입는 사람들, 그것을 사고파는 상인들, 패턴을 고르고 색을 정하는 장인들. 이들의 해석과 감각은 삶의 조건에 따라 다르며, 이 다양한 차이들이야말로 문화의 목소리다.
서아프리카 문화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변화 중이며,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왁스천 또한 제국주의적 기원을 가졌지만, 이곳에서 다시 살아나 의미를 얻고, 지금도 공동체와 개인의 기억을 짜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종종 ‘시노아(중국인)’ 혹은 ‘뚜바부(백인)’로 불린다. 이 땅에서 나는 거의 대부분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다. 이 위치는 내가 이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해석조차 또 다른 시선의 경계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왁스천은 오늘도 혼란과 자긍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천을 입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입는 이 왁스천은 서구가 소비하는 ‘아프리카스러움’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이곳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삶에 참여하며, 이 천 위에 새겨진 기억과 시간을 존중하고 있는가?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천을 입는 행위를 통해 '내가 무엇을 말하고,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이야기를 몸에 새기고 있는가' 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질문을 놓지 않고 싶다. 왁스천을 입는 이 행위가 누구를 향해 닿고자 하는 것인지.
각주 출처
* https://africasacountry.com/2019/11/the-identity-politics-of-wax-print
* https://www.bbc.co.uk/news/extra/4fq4hrgxvn/wax-print
* https://www.sunujournal.com/essays/post-colonial-fabrics-in-contemporary-african-art
* https://smarthistory.org/reframing-art-history/art-adornment-and-identity-in-africa/
* https://www.gzhenrytextile.com/blog/how-african-fabric-made-and-its-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