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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면서 배우기

코라가 가르쳐준 기다림과 머무름의 감

by 두치

며칠째 제대로 레슨을 받지 못했다. 선생님이 아팠기 때문이다. 삶을 사는 공간에서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의 24시간을 보며 일과 삶(쉼)이 분리돼야 하지 않을까 느낀다.


며칠 전 선생님 가족과 마당에 앉아 있는데, 백인 스텝이 바쁜 걸음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다른 학생)가 수업 시작하고 3분 동안 튜닝하는 것에 대해 말했어. 1시간 수업 시간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아" 수업을 시작하고 처음 코라를 튜닝하는데 걸린 3분의 시간을 낭비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시간을 분, 초단위로 세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말소"라고 불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몸이 제일 중요하다. 시간에 삶을 맞춰 넣는 것은 백인의 삶이다. 나는 당신이 아플 때 레슨을 받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째 정작 일본 학생만 수업을 해주고 나는 수업을 안 해주니 슬프기 그지없다. 며칠 전 마지막 수업도 딱 5분 정도 배운 게 다다. 그날은 선생님이 수업을 마무리하는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그 전날에도, 그 이후에도 내게는 수업을 해주지 않았다.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이곳에 머물고 있는데, 수업을 아예 받지 못하니 슬프다.




배움의 길은 아프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산잘리가 처음으로 아침 일찍 내게 찾아왔다. "수업을 하자"라고 한다. 일주일째 이런 내 상황이 마음에 쓰였나 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지난 레퍼토리들을 마스터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일주일 만에 시작한 수업인데도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했다.


지난 일주일간 아침에 눈뜨고 자기 전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내내 연습만 했다. 횟수를 대충 계산해 보니 10만 번은 쳤다. 근데 아직도 이 리듬이 몸에 들어오지 않았다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매일 조금이라도 배워야 내가 이곳에 있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다. 단순한 것 하나를 배우는 것도 이렇게나 힘들어야 하는 걸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같은 것을 연습하는데 서글픈 마음이 든다.


틈만 나면 내 방을 찾아와 자리를 차지하던 검은 고양이 네로


그렇게 또 며칠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고 같은 것을 붙잡고만 있는데 이토록 많은 돈을 내야 하다니.. 도대체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배움은 언제나 아프다. 나는 왜 다시 이 고통의 리듬 속으로 몸을 던졌을까. 편안함을 벗고 말이다.




돈을 낸 만큼이라는 함정


10년 넘게 일하고 번아웃이 왔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근근이 생활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이 아니니 춤과 악기 수업을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감비아에 오기 전 인터넷을 뒤져가며 혼자 코라를 공부했다.


그러다가 어떤 백인 오타쿠가 만든 무료 앱을 발견했다. 코라를 배우기 쉬운 길이었다. 그런데 나는 기계처럼 코라를 치고 싶지 않았다. 사람에게서 코라를 배우고 싶었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돈을 아끼려면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백인이 만든 기계로 배워야 한다. 삶과 선생님이 말하는 '진짜 코라'를 배우기 위해서는 큰돈을 들이고 갖은 고생을 해야 한다. 정작 돈을 들이고 고생해도 코라 치는 법 하나를 이토록 배우기가 어렵다.



선생님에게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큰 소리를 치고 '시간은 흐르는 거'라 했지만, 이젠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게 야속하다. 배우는데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한 건데, 돈이 없는 만큼 속상한 것 같다. 적지 않은 돈을 낸 만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올라온다. 도대체 나는 여기서 돈 낭비만 하고 맨날 똑같은 레퍼토리, 배워도 하나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조각들을 가져가는 것일 뿐인 걸까.


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 같다. 시간 안에 해내야 한다는 마음과, 틀리지 않아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선생님 앞에 가면 더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선생님 앞에 가면 안 된다.


여전히 리듬이 몸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10만 번 넘게 쳐도 제대로 칠 수가 없다면 100만 번 쳐야 몸에 들어오는 것이다. 원래 시간이 흘러야 되는 것을 돈을 낸 만큼 앞당겨서 하려고 하는 것이다.


돈이 정말 나를 무너뜨린다. 매일 내가 밟는 이 과정들이 소중한 것인데, 이 돈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내가 이 돈을 벌기 위해서 해왔던 노력들이 너무 힘들었어서,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 잣대로 판단하고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해결책이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야.
죽음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문제라 할 수 없다.


코라를 치는 틈틈이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어쩌면 돈을 낸 만큼 가져가려는 것 자체가 배움의 길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지금은 솔직히 이 길에 어떤 배움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매일 비틀거리며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 너머에 배움이 있을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돌아보고 나면 다 삶과 코라와 선생님이 내게 주는 큰 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어야겠다.



코라가 너를 시험할 것이다
네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만 연습해야 한다
코라는 다른 악기들과 다르다
코라는 그렇지 않다


코라는 내게 특별한 기다림과 인내를 가르친다 느낀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기다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너무 빨리 모든 것이 다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도 불도 쉽게 쓸 수 있고, 전기도 끊김 없이 나온다. 과자도 알바 조금만 하면 사 먹을 수 있고 택배도 심지어 하루 만에 도착하기도 한다. 모든 게 빠르게 기적처럼 이뤄지는 것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니, 그 속도가 당연한 것이 되고 기다림의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이곳과 한국에서의 삶에서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생각해 보면 기다림이 아닐까.


이곳의 삶은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아침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두 시간이 지나서야 재료를 받아 요리를 하는 과정이나, 수업을 듣기 위해 속절없이 일~이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과정이나 그냥 일상이 모두 기다림이다. 대체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게 하는 것처럼, 상대도 나를 당연하게 기다려주는 것 같다.


코라라는 악기 자체의 속성도 그렇다. 선생님은 기타는 한번 튜닝하면 되지만 코라는 공연 전에 최소 한, 두 시간은 계속 튜닝을 해야 한다 했다.


내가 이 길을 걷게 된 것도 고통의 삶을 잘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기 때문이다. 코라가 나를 시험하는 만큼 나는 코라가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삶의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밤이면 낮에 활동하던 많은 생명들이 잠들어 코라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산잘리도 아버지와 새벽까지 연습을 하곤 했다고 한다.


거의 열흘째 수업시간에 새로운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억울한 마음으로 불을 켜지도 않고 계속 연습을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선생님이 달려와 "노래를 느끼면서 쳐라" 말한다. 지금은 내가 너무 빠르고, 쏟아내듯이 치고 있다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다시 코라 앞에 앉아 연습했다. 선생님이 또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와 "하나의 패턴을 느끼고 그것이 어느 정도 정착되고 나서 다음 패턴을 쳐라" 한다. 본인도 예전에 방에서 코라를 치고 있으면 아버지가 달려와 “산잘리, 너 무슨 일이냐. 개구리도 아니고! 여기 뛰었다 저기 뛰었다가!”라고 했다 한다.


산잘리의 말을 들으니, 마치 아마두 반상 조바르떼가 내게 와서 그 말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산잘리와 아마두의 말을 듣고 노래에 머물며 연주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창문 너머 바람에 살랑이는 초록들이 보인다.


여느 날 다름없이 완벽한 하루다. 아침 햇살이 정원의 모든 초록들을 그늘 없이 비추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바삐 하늘을 채운다. 아마두 반상 조바르떼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나와 산잘리의 시간도 어느새 이 노래만 남긴 채 흘러가 사라지겠지. 그래서 살아 있는 지금이 아름답고 소중하다.


연주를 하며 멜로디에 담긴 것들을 느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의 불안과 사념에 사로잡혀 연습할 때 느껴지지 않았던 많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나를 벗어나 내 앞에 살아 있는 나무들을 보고, 그들의 생을 느끼고 지금 함께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살아있는 감각이다. 그렇게 코라는 노래와 지금의 삶에 머무는 법을 알려주는구나.




지금 연습하는 카이라라는 곡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기본 반주 사이사이에 들어가서 맬로디 전체를 풍성하게 해주는 두 개의 노트다. 배로 치면 노를 저어주는 것 같은 리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그 두 개의 노트(음과 리듬)는 모든 것에 고요히 머물러 있기를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해 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게 계속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정말로, 나의 환상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 멜로디와 박자가 내게 "힘든 삶이어도 괜찮다, 계속 흘러가도 괜찮다" 말해주는 것 같다.


하나의 멜로디, 소리와 박자 안에서 산잘리의 조상들이 남긴 몸과 삶의 흔적을 느낀다. 카이라는 저항의 노래였다. 백인들의 압제에 맞서 젊은 젤리들이 채택한 노래였다. 이토록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저항이 있을까. 우리는 부드러운 공기처럼 존재하지만 계속 나아가고 살아갈 것이라는 삶의 의지가 느껴진다.


슬픔도, 고통도, 살아 있기에 모두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여전히 이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 모든 것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고 단단한 저항이며, 생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다.



# 코라의 몸
· 반토 Banto (코라를 가로지르는 나무)
· 쿨라랑Kula Raon (코라의 빨간색 부분, 만딩카어로 배게라는 뜻)
· 불로 칼로 Bulu kalo, 이불루칼라 (코라의 손잡이, 만딩카어로 데게(손)라고도 함)
· 팔로 Falo (코라의 목, 코라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나무)
· 줄로 Dioulo (신의 줄이라는 뜻의 코라의 현)

코라(Kora)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은 신화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 박(gourd) = 대지(earth)
· 나무(wood) = 식물(plants)
· 가죽(hide) = 동물(animals)
· 철(iron) = 마법(ma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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