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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현대화된 코라

젤리의 집, 이어지는 삶

by 두치

2025.1.13.


세네갈 다카르(Dakar)에 있는 마마두 쿠야테(Mamadou Kouyate)의 집에 왔다. 마마두는 이전에 제주도에 10년 이상 살며 한국에서 만딩카 음악을 연주했었다.


이어질 인연은 어쩐지 이어진다. 마마두가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지만, 감비아에서 산잘리 집에 머무는 동안 알게 된 비에를 통해 그를 소개받게 되었다.


마마두 집으로 향할 때 나는 조금 긴장했다.

카사망스에서 쟈바떼(Diabate) 대가족을 만나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가족들 사이에서 정신이 없겠지.. 물은 나올까, 화장실은 어떨까, 모기는 괜찮을까..'

그런 잡다한 생각들을 늘어놓는 사이, 차는 어느새 마마두의 집 앞에 다다랐다.





마마두 집은 적막이 흐를 만큼 조용했다.

알고 보니 가족들은 각자 생계를 위해 다 흩어져 살고 있었고, 지금은 마마두와 그의 동생 빠삐스만 함께 지내고 있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쨉(세네갈식 볶음밥)을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빠삐쓰의 코라를 쓰게 되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코라였다.

솔직히, 코라를 보자마자 놀랐다.

쳐보지도 않았는데 단번에 좋은 악기라는 걸 느꼈다.

세네갈에서 가장 유능한 제작자가 만든 코라라 했다.

확실히 그래보였다. 코라의 손잡이와 기둥의 나뭇결이 예사롭지 않았다.


코라를 당장치고 싶었지만, 혹시나 실례가 될까 싶어 한참을 서성이며 망설였다.

빠삐쓰는 그런 나를 보며 "언제든, 어디서든 넌 코라를 쳐도 괜찮아"라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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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쓰의 코라는 정말 가볍고, 손이 살짝만 스쳐도 큰 소리가 났다.

아주 예민하고 정교하게 연주해야 하는 성질의 코라였다.

감비아에서 투박한 코라를 한 달 내내 붙잡고 있다가 세네갈 코라를 만지니,

완전히 다른 악기를 대하는 듯해 충격적이었다.


코라의 코 크기(현이 엮여있는 나무대)도 달라, 손가락 위치가 전혀 맞지 않았다.

손은 기억을 잃은 듯 허공을 더듬었다.

감비아에서 수십만 번 연습하며 익혔던 기본 반주조차 나오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마치 새로운 악기를 처음 배우는 것 같았다.


기타처럼 전 세계 어디서나 규격이 정해진 악기와 달리,

코라는 지역에 따라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손이 점점 감을 찾아갔다.

연주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지만, 마음 한켠이 여전히 씁쓸했다.

감비아의 크고 투박한 코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산잘리 집에서 그 큰 코라와 씨름하던 시간들이 스친다.

감비아에서 팔이 부서질 것처럼 연습했던 것에 비해 너무 쉽게 연주가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매끄러운 세네갈의 코라 소리에서 산잘리의 거친 손이 자꾸만 떠올라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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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마두 집에 오기 전 쿠야테(Kouyate) 가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쿠야테는 서아프리카 음악 세습 가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첫 번째 젤리 집안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감비아처럼, 전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마마두가 조용히 말했다.

"이미 1960-70년 그 이전부터 젤리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졌어"


아마두 반상 조바르떼(Amadou Bansang Jobarteh)가 산잘리와 그의 자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마두의 아버지도 아마두와 사촌 관계였는데, 코라를 연주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식들이 교육을 받고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럼 언제 전통적인 코라를 연주하냐"라고 물어보니, "이제 그런 자리는 거의 사라졌다"라고 했다.

감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코라가 연주되던 맥락 자체가 왕과 역사, 계보를 잇기 위한 문화 의식이었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네갈에서도 레스토랑이나 호텔 공연에서는 코라가 울리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코라 연주는 이미 사라졌다고 했다. 다만 말리는 아직 다른 형태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빠삐스는 말했다.

"음악가로서 살아남기 쉽지 않아.

90년대까지만 해도 서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사람들이 세네갈로 왔지.

여긴 대사관도 많고 외국으로 나갈 다양한 기회가 있었거든"


그의 말을 들으며 문득 내가 좋아하는 세네갈 밴드 오케스트라 바오밥(Orchestra Baobab)이 떠올랐다.

아프로-큐반과 월드 팝, 전통적인 만데 Mande와 월로프 Wolof 젤리 음악을 절묘하게 섞은 세네갈 대표 밴드다.

밴드 멤버들이 기니비사우, 말리, 토고 등 다양한 곳에서 왔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스크린샷 2025-11-01 232033.png 서아프리카 음악은 파면 팔수록 무궁무진하다. 다카르의 레코드샵에서-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이후로,

세네갈에서든 어디에서든 아티스트 비자를 받기 어려워졌다.

9·11 사태의 여파였을 것이다.

빠삐스는 "코로나 이후에는 더 어려워졌어"라고 했다.

그래서 젤리들이 더욱 살아남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또 말했다.

"세네갈 전통 음악은 정말 다양해.

월로프(Wolof)의 사바르(Sabar) 뿐만 아니라, 카사망스로 가면

만딩카식 사바르 버전인 부가라부(Bougarabou)나 사루바(seuroba)를 볼 수 있지"


스크린샷 2025-11-01 232354.png 세네갈은 단지 한 나라가 아니라, 서아프리카의 수많은 전통이 교차하고 공존하는 장소였다


빠삐스는 말했다.


코라 전통도 점점 더 현대적으로 바뀌고 있지.
사실 그건 코라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래.
그래서 더욱 전통을 지켜야 해.
지키지 않으면, 정말 사라질 거야

열심히 코라를 치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자정이 다 되었다.

오늘 배운 코라를 복습하고 싶었지만,

11시에 잔다는 빠삐쓰에게 폐가 될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젤리의 집이야. 신경 쓰지 마"


그 말이 달처럼 오늘 하루의 이야기들을 조용히 비췄다.


나는 젤리의 집에서 살고 있구나.

전통은 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여긴 젤리의 집이다.

젤리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전통도 이어지고 있다.


쿠야테 이야기 (The Story of the Kouyaté Lineage)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만딩카의 첫 번째 왕이 있었다. (8세기, 만데 제국 이전 시기)

수망구루 칸테(Sumanguru Kanté)는 발라폰(balafon)의 주인이자 마법적인 힘을 지닌 왕이었다.
그의 곁에는 아직 이름 없는 한 연주자, 냥코 만도(Nyanko mandó)가 있었다.

발라폰은 단순한 오락이나 유흥을 위한 악기가 아니라,
왕이 전쟁에 나서기 전 미래를 점치는 예언의 도구였다.

어느 날, 수망구루의 비밀스러운 악기였던 발라폰을 냥코 만도가 우연히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음이 울려 퍼지자, 수망구루는 놀라움과 기쁨에 젖었다.
그는 냥코 만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는 너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겠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쿠야테(Kouyaté)다.
너는 나의 첫 번째 젤리이자 음악가가 되었다.”

그날 이후, 쿠야테 가문은 왕과 역사, 구전 전승을 이어가는 젤리 가문의 시초가 되었다.
그로부터 만딩카 음악은 세대를 거듭하며 발라폰 → 은고니(ngoni) → 코라(Kora)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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