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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Aug 03. 2023

논쟁하기보다 토론하기

논쟁은 반목을 낳고 토론은 협업을 낳는다

소피스트의 궤변과 소크라테스의 대화, 태종의 논쟁과 세종의 토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는 토론이 활성화된 사회였다.  입법 정치활동의 중심인 민회에 진출하여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세속적인 성공의 잣대였다.  사회적인 출세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변론술과 수사학을 공부했고, 이들의 스승이 소피스트(Sophist,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소피스트들은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고, 타인의 주장을 공격할 수 있는 능수 능란한 언변을 가르쳤다.  본질적인 문제해결이나 진리의 추구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궤변'을 통해서라도 관철시키고 타인의 주장을 무력화시켜 토론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토론을 제로섬 게임으로 정의하고 논쟁에서 승리하는 논리에 집중한 것이다.  질문은 없고 지적 만이 난무하며, 대화는 없고 주장만이 존재하며, 이해는 없고 승복만 강요한다.  


최근 정치인들의 '말'을 보면 소피스트의 전형적인 궤변처럼 보인다.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질문과 답변, 그리고 토론이 이어지지만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논점 만을 일방적이고 자극적으로 부각한다.  첫째, 질문과 답변의 수준을 의도적으로 맞추지 않는다.  구체적인 모순점에 대해 질문을 하면 원론적인 답변을 하고, 원칙이나 가치와 같은 질문을 하면 구체적이지만 일반화할 수 없는 하나의 사례를 들어 답변을 한다.  둘째, 메시지에 대해서 질문하기보다 메신저를 비난하고 공격하며 승복을 강요한다.  셋째, 난처한 질문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넷째, 상호이해와 건설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질문은 없고 상대가 한 '말'의 모순 만을 지적한다.  


소피스트들이 활약했던 시기에 소크라테스도 존재했다.  소피스트들이 정치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비싼 수업료를 받고 소위 학원이라는 곳에서 논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가르칠 때, 소크라테스는 시장에서 질문을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과 토론하며 '무지에 대한 자각'이라는 본질적 진리 탐구에 집중했다.  묻고 답변하고 답변에 대해서 '다시 묻는 끝없이 질문하기(Drill Down)'를 근간으로 한 토론을 통해서 말하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는 '무지의 지'를 깨우치게 했다.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현명한 이유를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무지의 지를 진정한 앎의 출발로 여겼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승패를 결정짓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참석자들의 생각을 키우는 건설적 토론의 매개체였다.


조선의 4대 왕인 세종은 토론의 달인이다.  아버지 태종이 위계를 기초로 논쟁을 통해서 신하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면, 세종은 신하들과 동등함을 기초로 이슈에 대한 갑론을박과 개개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을 즐겼다.  타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연결시켜 문제를 해결하고, 충돌하는 이해를 조정하며, 협업으로 집단지성을 유도함으로써 과학,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분야에서 번영의 꽃을 피웠다.  대개의 임금들이 싫어했던 경연과 윤대 등 신하들과 토론을 주고받는 자리는 활성화되고 신하들은 자유스럽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배운 자들이 '모르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경계했던 세종은 창의적 사고와 질문, 그리고 경청을 통해 집단지성의 힘을 극대화 한 임금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화하고, 토론을 기반으로 합의하고, 소통을 기반으로 연결해야 


이익을 내고 긍정적 그룹 다이내믹스를 가진 조직의 리더는 비정상적으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해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대화하면서, 질문과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주요한 역할이다.  반면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사업이나 조직에 처한 리더는 구성원들이 구조적 문제라고 치부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들을 '문제, 이상상황'이라고 정의하고 공유하는 것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양적으로도 많고 질적으로도 밀도 있는 질문, 대화, 토론이 수반된다.  리더의 소통 능력이 턴어라운드 프로젝트의 핵심 성공요인인 것이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이성과 감성, 공식 회의와 비공식 만남, 현장과 사무실, 상하의 계층을 넘나 들며 변화의지를 한 방향으로 모아야 한다.


턴어라운드 리더의 대화는 객관적이고 직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우리의 시장점유율은 직전 3년간 30% 하락했고, 이 추세가 유지되면 3년 안에 우리는 시장에서 퇴출된다.'  '불량으로 인해 지난 한 해 발생한 품질비용은 우리 회사 영업손실의 50%를 차지한다.'  '현재 우리 공장은 하루 8시간의 조업시간 중 실제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시간은 5시간 30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한 해 우리 회사의 이직률은 30%에 이르고 전년대비 두 배 이상 상승하였다.'  '현재의 적자상태가 유지되면 매월 5억 원의 현금이 사라지고 공장을 가동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조직과 사업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간명하고 설득력 있는 핵심 메시지로 만들고 구성원들과 대화해야 한다.


기업활동에서 숫자만큼 정직하고 설득력 있는 것은 없다.  숫자를 통해 과거를 분석하여 현재의 상태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기획업무의 기본이다.  숫자와 숫자를 시계열적으로 분석하고 X축과 Y축을 바꾸어 보면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인사이트가 생겨난다.  리더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  리더는 현장의 구성원들과 질문과 대화를 통해서 파악된 문제들에 대해서 원인과 해결을 위한 가설을 수립할 수 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질문하고 생산현장을 관찰해 보니 기계고장, 품목교체, 작업자 태만, 불량 부자재 등 다양한 원인이 보인다.  1개월 생산량을 분당 속도나 투입인원으로 나누어 보면, 그리고 원인별 기계 정지 시간을 숫자로 계산해 보면 희미한 현실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위기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전략적 방향과 수량적 목표를 구성원들과 토론을 통해서 같이 만들어 내야 한다.  구성원들과 대화와 토론, 객관적 데이터 분석으로 위기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의'를 만들어 내고, 위기상황을 전파하여 변화의지를 모았다면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우는 것은 구성원들과 함께해야 한다.  참여를 통해서 만들어진 목표는 구성원들의 목표 달성 의지를 높이고 부문별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 과정에서는 팀빌딩 활동과 병행한 워크숍, 끝장토론 등을 가져 질문, 대화, 토론 등 공론의 장을 조성해야 한다.  체육활동이나 게임 등 팀빌딩 활동도 대화와 토론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워크숍은 전문적인 퍼실리테이션 역량을 갖춘 리더가 내부 구성원을 활용한 보조 퍼실리테이터를 사전 교육하여 공동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리더가 퍼실리테이션 역량이 부족하다면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진행할 수 있다.  다만 리더는 오프닝에서 정확히 문제를 제기하고 클로징에서 합의된 내용에 대해 전사 목표로 연결시키는 과정을 담당해야 한다.  리더는 워크숍을 준비하는 과정도 조직 내에 질문, 대화, 토론이 활성화되고 턴어라운드 리더의 지원군을 만드는 유용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해야 한다.  정교한 계획이 철저한 실행을 담보할 수 있다.  하루의 생산적인 워크숍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이상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 하단은 워크숍 계획 예시          

리더의 소통은 본사와 현장을 연결하고부서와 부서를 연결하고, 팀장과 팀원을 연결하고, 경영진과 구성원을 연결하고, 사업과 사업을 연결하여 팀워크의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조직이나 사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내외부 이해 관계자들 간의 연결이 끊어졌거나 매우 약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과 소통의 양은 줄어들고, 소통의 질도 약화되어 발생한 문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으로 분리되어 방치된다.  리더는 구성원들과 질문과 대화, 토론을 통해 끊어진 곳을 이어주고 약해진 연결을 강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연결이 복원되면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오고, 팀워크는 발휘된다.  질문, 그리고 대화와 토론이 문화로 정착된다.


현대 경영에서 개인과 팀의 역할과 책임은 명확하게 분화되고, 의사 결정자의 의지 보다 데이터에 의거한 의사결정이 주를 이루며, 온라인 비대면 소통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질문, 대화, 토론은 자연스레 줄어들고 개인과 팀은 고립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회의를 하고, 해결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  팀워크의 마법, 강한 팀에 대한 소속감, 협업을 통한 문제해결의 희열은 희석되고 있다.  하지만 위기상황에 봉착한 조직이나 사업이 시한 내에 턴어라운드 하기 위해서는 강한 연결에 기초한 팀워크를 필요로 한다.  시간에 대한 압박, 자원투입의 효율성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부 운영 프로세스를 정상화하고, 제품과 서비스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구성원들은 논쟁하기보다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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